어떤 악마는 프라다를 입지 않는다

by 헤이란

나에겐 말 못 할 콤플렉스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종아리다.


내가 열두 살이었던 어느 여름.

늘 그렇듯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복도를 뛰어다니던 한 남자애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저것 좀 봐, 완전 무다리네.


순간 나는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정말로 무가 떠올랐다. 나는 당황해서 뻣뻣하게 굳은 채 어쩔 줄 몰랐다. 신이 난 녀석들은 더 크게 외치며 나를 놀려댔고 그렇게 원초적인 '다리 콤플렉스'는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로 누가 나의 다리를 쳐다보면 불쾌했다.

불쾌할 뿐 아니라 화가 났다. 모두가 나를 보며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난 그저 계절에 맞게 반바지를 입는 것뿐인데 왜 멋대로 나에게 무다리네 어쩌네 하는 건지, 울컥했다. 그러나 그날부터 나는 반바지를 입지 않았다. 치마는 더더욱 입지 않으려 했다.


어릴 적부터 미의 기준으로 '다리'를 언급하는 걸 자주 보고 들었다.

'다리가 예뻐야 진짜 미인'.


아무리 아름다운 얼굴과 머릿결, 손을 가졌어도, 다리가 이쁘지 않으면 실패한 외모라고 믿었다. 길을 지나가는 여자를 쳐다볼 때도 가장 먼저 보는 부위는 다리였다. 다리가 가늘고 긴 여자야말로 이미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고, 절대적으로 부러운 존재였다.


나도 각선미 뽐내는 직선을 닮은 곡선을 가진 종아리를 갖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의 파마를 기다리러 쫓아간 미용실에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을 뻔했다.

손님용 의자 옆에 줄지어 서 있는 잡지는 잡학다식의 보고였다. 다리가 길어지는 법, 종아리가 예뻐지는 법 따위의 제목이 걸려 있었고, 그것은 가뭄의 단비처럼 나를 구원할 것 같았다.


잡지에서 언급한 방법은 다양했다. 맥주병으로 다리 마사지,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 채워서 다리 담그기, 누워서 자전거 타기, 추운 날 맨살로 돌아다니기, 등등.

무자본 막무가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결국 마르고 긴 종아리는 가져보지 못한 채 후덕하고 복스러운 사춘기를 보내게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처음 교복을 사러 간 날을 기억한다.


치마를 입고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절망했다. 부끄러워 내보일 수 없는 내 다리를 원망했다. 등교 길 누가 나를 쳐다보면 난 신발주머니로 다리를 가렸다. 치마는 가능한 한 길게 내려 입었고 치마를 입지 않는 학교가 있다면 전학을 가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다. 그러나 여학생을 위한 교복은 치마 교복뿐이었다.


고등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학창 시절에 꽤나 성실한 학생이었는데, 그것은 재수를 하지 않고 가능한 한 빨리 대학을 가기 위함이었다. 대학생이 되면 더 이상 남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데로 입고 다닐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십 대는 다리를 보는(듯한) 시선과의 냉전이고 다리를 마음 놓고 감추기 위한 자유의 갈망이었다.



드디어 어른이 되었고 억지로 교복을 입을 필요도, 치마를 입을 필요도 없었다. 야호.


치마를 영원히 입지 않았으면 했으나 간혹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치마를 입어야 하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서 옷장을 열었다. 치마를 고르기 위해 긴 시간을 쓰느라 평소보다 오랫동안 옷장 앞에 서 있어야 했다.


역설적이지만 내 옷장에는 입지 않는 치마가 상당히 걸려있다. 그것은 내가 치마를 좋아한다는 의미로 들릴 수 있겠으나, 오히려 어떤 상황에도 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할 법한 모든 치마를 준비했다는 설명이 더 적합하다. 그것들은 내 다리가 가장 비난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심하고 또 고심한 디자인과 색깔의 치마들이었다.


나는 치마를 보며 단 한 번도 이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치장하기 위한 의상이라기보다는, 어떤 통과의례 혹은 의식을 치르기 위한 도구처럼 느껴졌다. 결코 예쁘지 않았다. 그저 짠하고 안타까웠다.

내 다리가 그랬듯 치마들도 그랬다.



어쨌든 그날은 치마를 입고 나갔다.

대한민국의 인간관계는 예의를 중요시하고, 그래서인지 굳이 티를 내며 칭찬을 주고받는 경향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정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로는 그것이 낯설고 어색하다. 특히,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다리를 공개한 날은 더욱 그랬다.


함께 있던 사람들은 내 모습에 집중하였고 치마가 잘 어울린다며 환호했다. 그것은 분명 가까운 사이에서 주고받는 고마운 관심과 배려였으나, 난 오히려 술을 급히 마신 사람처럼 어지러웠다.

시선의 빛깔이 어떠하든 그저 내 다리에(만) 비추는 조명처럼 뜨겁고 따가웠다. 그 느낌이 너무도 생생하여 모든 몸가짐 하나하나가 어색하고 불편했다.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치마를 황급히 벗었다. 그리고 깊은 산속에 비밀을 숨기듯 옷장 깊숙이 넣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다리가 사람들에게 시선을 끌 정도의 심각한 무다리는 아니라는 걸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복도에서 나에게 외친 '무다리'공격은, 엄밀히 말하면 나를 포함한 여학생들을 향한 무차별 공격이었다. 그 공격은 별다른 악의도, 목적도 없는 단순한 장난이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치마 입기를 거부하는 것은 단순히 다리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거부가 아니었다. 오히려, 예쁜 여자가 되려면 치마를 입어야지라는 그 말에 단단히 삐져 있던 것 같다.


어느 날,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기업인을 인터뷰한 잡지를 보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그 여성의 옷차림을 살펴보았다. 일반적으로 곱게 차려입은 투피스 정장이 아닌, 청바지에 니트를 입은 여성이었다. 당당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말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능력으로 보여주고 싶었고, 그 방법은 철저히 본인의 방식과 취향이었다고. 만약 그녀를 제외한 주변의 모두가 정장 치마를 입고 인터뷰를 왔을지라도 그녀는 한 손을 청바지 주머니에 넣고 여유 있게 답변을 이어나갔을 것 같았다.

그녀의 견고한 미소는 결코 여성스럽지 않았다.

그냥 멋있었다.







콤플렉스와 취향, 더 나아가 나를 편안하게 존재하도록 하는 자유에 대하여.


다리가 예쁘든 어떻든 악마는 청바지를 입는다.
왜냐면 그 악마는 청바지를 좋아하니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무다리도 아닌데 그냥 치마를 입고 편안하게 이쁘게 하고 살면 안 되는 거냐고.

그래서 다시 되묻는다.

내가 만약 다리가 길고 늘씬하다면 과연 어땠을까.

나는 정말 다리가 이쁘지 않아서 치마를 입지 않은 걸까.


난 그동안 치마를 입지 않은 이유를 복도를 뛰어다니던 철부지 동급생에게 달아놓고 그 녀석만 탓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치마를 입지 않는 이유는

나를 놀려대던 남학생 때문이 아니라

남들이 예쁘다고 한 그 전형적인 여성스러움을 이유 없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내면의 불편함 때문이고

그저 난 치마보다 바지가 멋스럽고 내 취향이기 때문이다.


콤플렉스라는 불만족에서 시작한 치마 전쟁은 나에게 길고 긴 순례의 시간을 주었다.

콤플렉스가 무엇이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누가 그런 콤플렉스를 만들게 했는지도 별로 신경 쓸 거 없다.

그것은 내적 부산물이며 결국 해답을 쥔 사람도 나 자신이다.

그래서 순례의 끝은 늘 '나'였다.


진정 원하는 고지를 향해 내가 딛고, 도약하고, 기꺼이 밟고 일어서야 하는 것들은

스스로 만들어 낸 그럴싸한 고집과 편견들,

남들이 좋은 게 나에게도 좋은가 보다 하며 받아들인 불편한 학습물들일지도 모른다.



런웨이의 사람들은 프라다를 입고 냉정한 경쟁과 생존을 반복한다. 그들은 프라다라는 자신들의 지향점을 입는다.

나 또한 나만의 룩(look)을 입고 스스로의 한계,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를 얻는다.

콤플렉스가 되거나, 아니면 나만의 취향을 찾거나.

스스로 만든 자유가 그 차이를 만든다.


늘 그렇듯, 청바지를 입고 가장 맘에 드는 운동화를 신으면, 난 오늘도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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