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선물 받다. (Feat. 오메기떡)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사수 에세이

by 헤이란

퇴사한 직장 동료가 웬일로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접니다. 지금 당장 주소 좀 알려주세요."


마침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려고 점잖게 앉아 있는데 갑작스러운 연락을 아무 준비 없이 전화를 받은 건 지금 생각해도 실수였다.


"갑자기? 주소? 왜? 근데 내가 지금 좀 바쁜데…?"

"그냥 주소 좀 바로 보내주세요. 제가 좀 보낼 게 있어서요. 지금 당장이요, 꼭이요."


어? 어. 어?

일단 빨리 통화를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대충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잠깐만, 가만있어 보자.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개인정보는 충분한 수집 목적과 활용처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진 뒤에 제공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짜고짜 주소를 부르라니, 혹시 이거 피싱인가.

잠시 의심을 했으나 통화 속 직장 후배의 목소리는 완벽했고 늘 다짜고짜 질문을 하여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특유의 화법을 떠올려보니 방금 그 발신인은 무조건 "진짜"가 확실했다.


"일단 알겠어요."

카톡에 주소를 남겼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문자를 받고 난 피식 웃었다. 대화를 다시 떠올려보니, 그가 말하기를, 본인이 지금 제주에 출장을 와있는데, 뭔가 괜찮은 게 있어서 보내주겠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 괜찮은 게 바로 오메기떡일 줄이야.


같이 직장을 다닐 때에도 그렇게 떡을 좋아해서 뭔 기념 거리가 있으면 떡을 사 먹고 사주던 사람이다.

그래도 그렇지, 오메기떡을 스무 개나 보내다니.

내가 얼마나 미우면 이렇게 떡을 스무 개나 줄까.

주소만 덜렁 보내고 떡을 보따리 채 받은 게 민망하여 괜히 혼자 중얼거렸다.


제주를 선물 받다


오메기떡.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막상 보니 친근하면서도 살짝 낯설다. 생김새는 둥근 시루떡인데 한 입 먹어 보니 앙금이 달콤한 찹쌀떡이다.


생김새는 그저 투박하다. 그런데 동그란 경단에 덕지덕지 붙은 팥이 고소하다. 딸에게 건네주니 못생겨서 먹기 싫다고 한다. 그래 봐야 입에 넣을 떡일 뿐인데 생긴 게 중요하다니. 곱게 먹히기도 쉽지 않은 요즘 취향이다.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떡을 먹을 때 느끼는 특유의 기분은 가만 보니 이름 탓이다. 다른 먹거리보다 이름을 더 곱씹게 된다. 순우리말 이름이 많아서 바로 검색하지 않고 혼자 유추하는 재미가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오메기는 좁쌀로 동그랗게 만들어 삶은 떡을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떡을 먹을 줄만 알지 만들 줄 몰라서 이름도 마냥 신기하다.

떡 하면 척하고 나타나는 남편에게도 하나 권하니, 이게 그 떡이냐고 어디서 들은 척을 한다. 그러나 이거 과메기떡 맞지? 하는 순간 온 식구가 한참 낄낄대며 떡을 신나게 집어 먹었다.

역시 떡 하면 척하고 나타나는 맛이 이런 건가 보다.





실컷 먹고 나서 다시 고민에 빠졌다.


선물을 주는 마음이 너무 고마운 게 문제다.

무엇으로 화답할지.

생일도 아니고 별 이유가 없는데 막상 이렇게 받아보니 갑자기 받는 선물은 일기를 쓰기에 딱 좋은 재료다.

떡 하나 입에 물고 쩝쩝 거리며 글도 좀 찰지게 써보자고 마음먹는다.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떡을 하나 더 먹는다. 글이 써질 때까지 떡을 먹게 될 것만 같다. 그래서 찰진 문장은 포기하도록 한다.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

그 선물이 내가 준 것이면 행복하다.

받든 주든 선물은 그냥 이쁘다. 특히 내가 아끼는 무언가를 담아 보낼 때, 가슴이 뛴다.


여유가 없는 시절에 마련한 선물은 더욱 그렇다.


대학 시절, 내가 과외 공부를 봐주는 학생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그 아이에게 진심으로 응원을 하고 싶었다. 하필 용돈을 거의 다 써서 하루살이가 빠듯했다.


헌책방에서 가장 상태가 좋은 시집을 골랐다.

그리고 단풍이 떨어진 어느 야외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뭔가를 적을 자리라곤 일기장뿐이라 한 장을 찢어 카드를 썼다.

최선을 다하고 시험장을 나올 때, 수고했다, 잘했다, 하고 크게 외치라고.

그날 거리를 가득 메운 메이플 시럽 같은 달콤함이 스며들었으면 했다.


몇천 원짜리 선물이지만 며칠을 고민하며 마련한 투박한 응원을 아이는 기쁜 마음으로 기억에 담아주었다.

난 그런 아이가 무척 고마웠다.

마음이 마음으로 담기는 순간은 황홀하다.

선물은 그 순간을 알고 또 누리고 싶은 사람들의 행복 회로처럼 돌아오고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한다.




행복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나는 그렇게 갑자기 받은 제주의 맛을 며칠 동안 듬뿍 즐겼다. 제주를 가본 지 수년이 지났기에 오메기떡이 뭐더라 하며 제주의 풍경을 열심히 찾아본 덕분이다.

그곳에 가지는 않았지만 잠시 머물렀다. 마음을 담느라.


출장 중에 떡을 보고 나를 떠올려준 그 마음이 이쁘다.

나도 어느 이쁜 계절의 맛을 보내줘야겠다 마음먹는다.

그렇게 나도 마음을 이쁜 맛을 담아보려 이쁜 계절, 이쁜 그곳들을 찾아 나선다.


오늘도 오메기떡을 하나 꺼내서 접시 놓는다.

여전히 생김새가 투박하다.

그러나 덕분에 나의 저녁은 이쁘다.

그대로 담아서 또 어디론가 선물이 될 나의 순간이다.



*출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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