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적으로 필사일기 - <도망가자>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괜찮아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자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거기서는 우리 아무 생각말자
너랑 있을게 이렇게
손 내밀면 내가 잡을게
있을까, 두려울 게
어디를 간다 해도
우린 서로를 꼭 붙잡고 있으니
너라서 나는 충분해
나를 봐 눈 맞춰줄래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가보자 지금 나랑
도망가자
멀리 안 가도 괜찮을 거야
너와 함께라면 난 다 좋아
너의 맘이 편할 수 있는 곳
그게 어디든지 얘기해줘
가보는 거야 달려도 볼까
어디로든 어떻게든
내가 옆에 있을게 마음껏 울어도 돼
그다음에
돌아오자 씩씩하게
지쳐도 돼 내가 안아줄게
괜찮아 좀 느려도 천천히 걸어도
나만은 너랑 갈 거야 어디든
당연해 가자 손잡고
사랑해 눈 맞춰줄래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가보자 지금 나랑
도망가자
<도망가자> 작사 선우정아 곽은정
산후우울감으로 힘들어하던 친구가 있다. 나와 친구는 비슷한 시기에 육아를 시작했다. 친구가 힘들어할 때마다 나는 조언을 하겠다며 내 경험담을 늘어놓거나 새로운 취미를 권했다. 효과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경험한 것만 둘러보며 그 안에서만 찾아 위로를 했다. 진정으로 그 친구의 마음속에 들어가지 못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 우울에 같이 빠져 죽을까 봐 내가 헤엄쳐 나올 수 있는 수심에서, 딱 그 정도 곁에 섰다. 속으로 생각했다. 우정에 기술이 있다면 위로는 가장 최상급의 레벨일 거라고.
친구는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왈칵 쏟아내면 좀 나아진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노래를 같이 듣는 것, 그것뿐이었다. 우리는 듣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수많은 대화를 주고받은 것처럼 앉아있었다. 그 이후에도 친구와 같이, 때로는 나 혼자 한 없이 감정에 짓눌려 가라앉을 때마다, 노래를 들었다. 우리 사이에 노래가 쌓일수록 친구는 새벽을 끝내는 하늘처럼 밝아졌다. 노래가 있어 다행이다.
선우정아 님의 <도망가자>. 이 노래의 뮤비를 보며 나의 우울과 아끼는 이들의 우울을 다시 들여다본다. 뮤비의 첫 장면은 세탁기 알림음, 전화벨 소리, TV소리, 그리고 일상의 명령음에 저항하지 못한 채 주저앉은 한 사람이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우울은 어쩌면 감정 덩어리가 아니라, '뮤비 속 여인'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반복되는 고통과 무기력함이 만든 저마다의 분신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울'이라는 녀석에게 말을 걸어볼까. "괜찮다, 좀 느려도, 천천히 걸어도 나만은 너랑 갈 거라고."
흑백인 듯 잔잔한 빛이 가득한 이 노래를 나는 아낀다. 기꺼이 연차 휴가를 써서 말없이 있어 줄 것 같은 츤데레 같은 이 노래를 나는 아낀다. 너의 얼굴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끝까지 가보자는 이 곡의 서사를 나는 무척 아낀다.
그러니, 도망가자.
(너무 우울한 글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우울' 또한 자연스러운 감정이기에, 노래를 함께 듣고자 뮤비 링크도 아래 붙였습니다. )
배경이미지 출처:https://cdn.pixabay.com/photo/2020/06/13/12/27/girl-5294074_960_72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