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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란 May 04. 2023

4/20 그는 아이로소이다

필사적인 필사일기 - <젊은 ADHD의 슬픔>

어쨌든, "아이는 아이다운게 좋다."라는 말을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아이는 자신을 보호하거나 해칠 수 있는 사람을 너무 우습게 보지 않는 게 좋다고. 어른들을 우습게 보던 내겐 언제나 안 웃긴 일만 생겼다. 매를 맞거나 벌을 받거나 아끼던 물건을 빼앗겼다. 10대 때 이런 일을 많이 겪으면 예민하고 방어적인 인간으로 자란다. 극도로 방어적인 인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극도의 공격성을 주워 삼킨다.


그 시절 내가 숨긴 장래 희망은 그냥 '사람'이었다.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모두가 정신이 없는' 짱구 인생 말고, 훌륭하게 살지, 훌륭하지 않게 살지 결정권을 소유한 정제된 성년의 상태 말이다. ADHD 진단 후 엄청난 패배감에 휩싸인 데는, 이 미친 정신병이 내 10대를 홀랑 훔쳐 갔음을 아주 뒤늦게 깨달아 버린 이유도 컸다.


'나쁘게 살았다'라는 후회는 미미해도, '나쁘지 않게 살 수도 있었다'라는 후회는 심각했다. 그것은 과거이자 현재였고 현실인데 환각이었다. 인생을 떳떳하지 않게 만든 수많은 실수들이 ADHD에서 기인했다는 것 때문에 오랫동안 내 병을 받아들일 수도 부정할 수도 없었다. 주변에 ADHD 아동이나 청소년이 있다는 사람을 만나면 그 아이들이 병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자신을 깨닫고 나면, 그 애들은 스스로를 인생의 반환점으로 삼을 수 있다. 어린 시절의 마음으로 몸만 자란 내가 결국 혼돈을 극복하고 삶으로 나아갔듯이.


 


<젊은 ADHD의 슬픔> 정지음




'아이는 아이다운 게 좋다.'


이 문장을 읽다 문득 떠오르는 한 아이가 있다.


그는 아이였지만 이미 '어른스럽다'는 표현에 취해 있었다. 이 마약 같은 단어는 엄청난 힘을 가졌는데 예를 들면 만 7세에 불과한 아이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에 앉자마자 숙제를 했고 손님이 오시면 깍듯이 인사를 하며 재빨리 신발들을 정리했다. 진수성찬 차림상에 앉아 아무리 배가 고프고 입 안에 침이 잔뜩 고여도 먼저 손으로 집어 먹거나 빨리 달라고 조르는 법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참 아이답지 않고 어른스럽구나." 그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잘 몰랐지만 어른스럽다는 말은 여러 번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어깨에 공기를 주입한 듯 기분이 으쓱했던 그는 더더욱 어른스러운 아이가 되며, 잘 참고 잘 따랐다.   


그에게는 연년생 동생이 있었는데 하는 행동은 정반대였다. 일단 무슨 일이 있어도 노는 게 가장 중요했고 그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좋아하는 간식을 보면 일단 입에 넣었고 집안에서 뛰어다니기 일쑤였다. 그런 동생을 보며 그는 말했다. "너는 너무 유치해. 생각이 없어."


천방지축 동생의 활약으로 그는 상대적으로 더 칭찬받고 더 많은 기대를 받았다. "너는 어른스러워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어른스러웠던 날들은 흘러갔고 어른의 날이 왔다. 아이는 어른이 되었지만 딱히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주변 사람들을 깍듯하게 챙기고 점잖게 행동하며 조금 억울해도 괜찮은 척,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더 이상 그에게 어른스럽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어른이 되었으나 더 이상 어른스러운 사람도, 어른도 아닌 어중간한 무엇이었다.


안 하던 짓을 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답답한 날이면 일방적인 통보만 남긴 채 여행을 떠났고 슬픔에 빠진 날은 술독에 빠졌다. 어른이 되어 갈수록 그런 날들은 반복되었다.


그가 주량을 훌쩍 넘도록 부어라 마시다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하고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있을 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동생이 그를 데리러(정확히는 적당히 싣든지 들든지 업든지 해서 끌고 가려고) 온 것이었다. 그는 반갑지 않은 상대에게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것처럼 어지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동생은 그를 업고 헥헥거리며 얼마나 먹고 마셨길래 이렇게 무겁냐고 잔잔바리 시비를 걸더니 문득, 갑자기, 대뜸 제대로 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동안 누나가 좀 불쌍했어. 그런데 요즘 살짝 정신 나간 사람 같아서, 이제 좀 누나 같아."


그가 취한 건 술이 아니었다. 긴 숨을 내쉬며 울었다. 동생은 그에게 왜 울고 난리냐며 욕을 하고 구박을 하지만 끝까지 업고 걸어갔다.


심할 것 같았던 숙취는 짧게 끝났다. 그리고 그의 길고 긴 "어른스러움"도 끝났다. 역시 욕먹기 만한 해장은 없었다.


그리고 그는, 아니, 나는 진짜 "어른다운" 무언가를 찾기로 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생각날 때마다 몇 줄씩, 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 나갔다. 아이가 되고 싶을 땐 아이답게 꿈을 적고 쓸데없는 낙서를 했다. 때로는 어른답게 스스로를 용서하며 일기를 썼다. 더 이상 불쌍한 그 아이는 없다.


그래서 나는 "아이는 아이다운게 좋다."라는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아이는 결코 불쌍해선 안된다고. 어른스럽게 말고, 아이답게, 아니 그냥 뭐답게 살기로 결심한, 어떤 불쌍했던 어른이의 숙취라고.




배경이미지 출처: https://pixabay.com/images/id-1077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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