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가의 밥상 12
모종의 재미
동이 트기가 무섭게
창밖에서 까치들이 대화들을 나눈다.
그들만의 언어로.
아니, 동이 트기도 전인
짙은 어둠이 엷어지면서부터가
더 맞겠다.
그들과 나의 교대 시간이다.
녹초가 된 나의 몸댕이가 누울 시간이다.
이제야 단잠을 잘 수 있으니.
의사가 한 말 중
올빼미 체질은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만은 신뢰한다.
모종을 하고 분갈이 한 밤이었다.
틔운 싹을 모종 하다 보니
모종하고 심고 자라기까지
기다릴 수 없는 것이 있다.
당장 먹어야 되는 것 말이다.
상추와 고추 들깨잎 같은 것들.
그러고 보니
생식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네.
씨를 사러 간 김에 모종을 샀다.
세상에나!
고추 모종 다섯 포트가 천 원 이라니!
하나에 이백 원 꼴이다.
이건 거의 거저 수준이다.
게다가 키워 씨 받아 놓으면
앞으로 풍성한 식사 테이블이 될 터이다.
"상추는 집안에서 키워야겠다.
밥 차리면서 근방 따서 먹을 수 있게.
전식으로 고추장 상추쌈은 입맛을 돋우지.
상추는 폐생수통으로 자동 급수되게 하고.
편한 아이디어 정보화 사회답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추가 맛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텃밭에 옮겨 심을 수밖에 없었다.
길러 먹는 상추는
한낮의 햇빛과 바람과
밤이슬 맞고 커야 역시 맛있다.
이삼일에 한 번씩 따다
며칠씩 냉장고에 둬도 끄떡없다.
이리하여 상추쌈이 식탁에 펼쳐졌다.
쑥과 청갓 따서 씻어 놓은 것이 있어
비교해 보았다.
역시 식감에서 상추가 쌈 싸 먹기에는 무난했다.
연해서 부담 없는 푸짐함을 준다.
매력으로 당귀잎을 조금 잘라 얹으면 안성맞춤이겠다.
당귀잎 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
이제야 싹이 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