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가의 밥상 H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2
제목 자체가 한 줄 시다.
소설 내용하고는 상관 여하를 떠나서
어떤 선정적 이미지를 유추하게 만드는
묘한 구석이 있다.
인간의 뇌는 궁금증을 먹고사는 게 틀림없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는
기자 출신 작가
제임스 M. 케인 (James M. Cain)의
30년대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이 소설에 영감을 받아
이방인을 썼다고 한다.
영화는 감독이 만들지만
시나리오는 글에서 나온다.
원작의 내용이 짜임새 있어야
영화 수준을 받쳐준다.
스토리가 탄탄하고 볼 일이다.
실제 사건 자료를 토대로 해서 쓴 글이라
디테일에 무리가 없고 강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누아르 소설’ 장르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소설의 영향으로
필름 누아르(암흑 영화)도 나오기 시작했다.
39년 프랑스 영화로 처음 만들어졌고
43년 이탈리아에서
거장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데뷔작으로
그리고 46년 원작 소설의 본토인 미국에서
비로소 만들어졌는데 호평을 받았다.
81년 네 번째 리메이크된 영화가 이 작품이다.
감독 밥 라펠슨은 실력파 감독이다.
역량 있는 감독은 원작 선별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영화를 감독이 원하는
어떤 분위기로 끌고 간다.
이 영화는 역량 있는 감독이
껄찍하게 잘도 만들었다.
관객들이 그 분위기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의 마력이 있다랄까.
1946년 미국에서 리메이크한 흑백 영화와
비교하면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81년 당시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작품성은
섹스의 뒷전으로 밀려 있었던 감이 있다.
제목도 아리송하지만
난폭한 주인공의 섹스 신이
당시로는 상당히 충격적이었기에.
감독은 그 점에서 흥행에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포스트맨은 에로 영화가 아니라
작품성 있는 영화로 봐줘야 된다.
물론 공항이라는 시대성의 분위기에
걸맞은 한쌍의 젊은 여인의 연기도 연기지만
젝 니콜슨의 더티하고 비열한 나쁜 남자 연기를
가장 잘 표현한 흔치 않은 영화이기에.
뭐가 좋은 영화인가?
답은 간단하다.
여러 번 봐도 맛깔난 영화인지 아닌지
돌아보면 되는 것이다.
실화 사건에서는
여자가 남편을 목 졸라 살해하고
우편배달부에게 보험지급증서를
자신에게 직접 배달하라고 지시했고
초인종을 두 번 울리는 게 신호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왜 벨을 두 번 울리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한 번도 세 번도 아니고 두 번 말이다.
그러나
문학에 조예가 깊은 친구는 알고 있었다.
"옛 잉글랜드의 전통이래요.
우편배달부가 벨을 두 번 울리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