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가의 밥상 23
개인전 오픈 다음날
대학 동기 화가 친구들
그리고 특전사 출신의 스킨 스쿠버
다이버들과 뒤풀이를 했다.
인사동에서부터 낙원동 언저리까지 섭렵.
구석구석 잘도 아는 술꾼들이다.
다 건강 체질이라
따라가려면 몸을 사려야 한다.
1차는
인사동 막걸리 전문집
들어가는 입구 포도 넝쿨에 포도가 열렸다.
그거 하나로 운치 점수 많이 주게 된다.
막걸리는 몇 가지 시켜 봤는데
잣 막걸리가 깔끔 무난했다.
안주는 메밀 부추전과 숙주나물볶음.
메밀 부추전은 처음 맛보는 것이었는데
상당히 괜찮다.
토속적이면서도 고급스럽다.
숙주나물은 언제나
입을 깨끗이 정화시켜준다.
간이 세지 않아
재료의 맛을 만끽할 수 있었다.
2차는
이구동성으로 낙원동 끝자락의 홍어집.
탕이 먼저 나오자
홍어탕은 뜨거울 때 먹어야
그 향을 만끽할 수 있단다.
삭힌 홍어애탕의 진가를 알고 있는 그들이다.
나는 그 감동의 탕 앞에서 선언하고 말았다.
이것이 최고의 한국적인 음식이라고.
내심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홍어집 창문에 쓰여 있다.
'발효 음식의 최고봉, 홍어탕'
홍어찜을 처음 처음 접한 것은
젊어서 막내 삼촌을 따라 간 인사동에서 이다.
한옥집이었고 실내는
암모니아 냄새로 진동했었다.
팍 삭힌 홍어가
코를 뻥 뚫어 주는 것이 신기했었다.
집안의 말썽꾸러기 막내 삼촌이
내게 유일하게 기여한 것이
홍어 체험을 시켜 준 것이라니!
한국적인 기인한 맛의 세계가
캐나다로 이민 간 말썽 많고 유별났던
막내 삼촌을 생각나게 한다.
이어서 나온 삼합의 돼지고기가
아주 고소하고 연하기도 하지.
다음은 신김치와 양념에 주목하게 된다.
된장 양념은 짜지 않은 묵은장이고
짜게 먹을 사람을 위해 소금도 같이 있다.
난 이것이 손님에 대한 배려라 생각한다.
3차는
산악인들이 사랑하는 해산물 집이다.
이 집의 주메뉴는 돌멍게와 딱딱한 딱새우다.
그날은 전시 축하한다며
산낙지도 따라 나왔다.
4차는
화가들만 남아 옛날 통닭과
레드 생맥주를 앞에 놓고
그림 얘기를 진지하게 나눴다.
그제야 속내를 다 토해낸다.
점심때에는
인사동 밥집들에 웬 화가들이 그리 많은지.
낮에는
익선동이 젊은 아가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밤에는
길 건너 낙원동에 술꾼들로 넘친다.
새벽녘에는
낙원동 60년 전통 소문난 해장국집에
다 노친네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