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010-8975-7171 \ egg963@naver.com
[우리 진리의 상징성, 둥그스러움]
사의재의 옛 모습 그대로임에는 아주 만족스럽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으로서
그 정도 세월에 이 정도 보존이 되었다는 것도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예술인의 시각에서 보건대
가장 중요한 요소인 형태에서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
바로 초가지붕의 실루엣 라인인 것이다.
외형적으로 초가의 아름다움은
초가지붕의 둥근 라인과 풍부한 볼륨에 있다.
그 둥근 볼륨이라는 것은
한국미적으로도 전라도 항아리나
조선 달항아리나 고려청자 및
거슬러 올라가 신라 토기까지 이어지는 맥을 갖고 있다.
우리 지명에서도 달이라는 명칭은
둥근 산일 경우에는 어디서나 써왔던 것을 보면
달과 같이 둥근 것은
근원 이미지와 연결되는 중요한 사항이다.
그 둥근 이미지는 진리를 형상화했을 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었기에
더 고대로 올라갈수록 신성시되기까지 한 것을
여러 전통이나 풍속 그리고 이론에서 나타난다.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로
옛 할머니들이 장독대에 치성을 드릴 때
둥근 사발에 정화수를 담아,
둥근달을 보며 기도를 드렸고
서낭당에 치성을 드릴 때도
팔로 둥근 원을 그리며 빌었다.
가장 단순한 겨레의 상징인 아리랑과 태극의 도형이
둥근 원 안에 있는 것도 무시 못한다.
오죽하면 신라 박혁거세나 가야 김수로를
둥근 알에서 나와 건국을 했다고 했겠는가.
알고 보면 이렇듯 중요한 것이 '풍성한 둥그스러움'이건만
이 시대가 이런 점을 간과(看過)하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감성적인 면에서
심각한 문화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초가집은 매해 이엉을 잇는 수고를 해야 한다.
기와집과는 다르게 번거로운 부분이라 하겠다.
사의재의 초가 얹은 것은 옛 초가를 걷어내고
새 것을 얹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모르겠다.
뒷산 뻐꾸기도 다 우는 사연이 있다지만
뼈에 가죽만 붙어 있는 것을 보는 듯 빈약하다.
초가는 옛 것 위에 새것을 차곡차곡 쌓을 때
풍성함이 깃들고 실생활에서도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박새도 초가 안에 둥지를 틀기도 하고
지저귀지 않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