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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ul 27. 2019

강진 - 사의재 9

답사


[토담집 특유의 냄새와 쾌적함]


어려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서울 세검정 백사실 계곡 들어가는 언덕이 

온통 초가 마을 촌이었다.

백사실 계곡서 내려오는 물이

바위를 타고 비스듬히 흘러내리는 폭포 

왼쪽 중간에 작은 아버지 집이 있었다. 



초가집 마당은 채소를 길렀고

폭포 쪽 낮은 담장 위로는 

호박 덩굴이 있었으며 

모퉁이에는 뒷간이 있었고 

물은 폭포물을 길어다 썼다.

물을 길어다 써야 했기에 

작은 아버지는 쌀뜨물로 세수를 하셨다.



문간방 진흙 방바닥에는 

멍석이 깔려 있었으며

벽도 도배가 아닌 진흙 벽돌에 

진흙으로 발라져 있었다.

초가집의 벽에는 

자그마한 창문이 나 있었는데

창문이 중간에 깊숙이 있으므로 

벽이 참 두껍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작은 아버지께 벽을 쌓으려면 힘들 텐데 

벽이 왜 이렇게 두껍냐고 물어봤더니,

그래야 방안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그래서 초가집은 다 벽이 

그렇게 두꺼운 줄 알았다. 

한 일 미터 남짓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커서 답사 다니며 

어느 초가집을 봐도

벽이 그렇게 두꺼운 초가는 본 적이 없다.



거의 토굴에 가까운 초가의 기억은

문간방의 불 때어진 진흙 냄새와

더운 여름에 석굴과는 또 다른 

묘한 쾌적함이 시원한 체험으로 남아 

내 삶과 예술의 원천이 되었다.

감수성이 살아있을 때 한 그런 경험은

살아가는데 모든 것의 잣대가 되어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을 접해보지 못하면

기준이 없기에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본다.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좋은 체험의 기회를 주고 볼 일이다.





사의재는 부엌 벽이 일부 나무 판자벽과 

황토와 돌로만 쌓여 있었고

집의 벽들은 황토와 회벽을 섞어 

단단하게 발라져 있었다.

부엌 벽은 참으로 인상적이었고 

옛 기억을 되살려 주었지만

얇은 방벽에는 기대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회가 되었을 때 

방에 들어나 가보자고 들어간 후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어려서의 그 황토 초가의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그때의 그 진한 냄새는 아니나

미미하게나마 그 내음을 

다시 맡을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넋이 나가기에 충분했다.  



나만의 내부 고향은 

이미 순식간(瞬息間)에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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