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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an 24. 2021

감칠맛의 정석, 굴 묵은지

어느 화가의 사는 재미 / 생존 밥상

신성한 취향이라 부르기로 하자.



냉장고에 묵은 깍두기를 발견했다고 

좋아라 했다.

집사람이 이번에 담근 건데

김치 냉장고에 다 안 들어가서 

밖에 두었더니 쉬 쉬었다고 했다.

묵은지만큼 

깊숙이 맛이 간 것은 아니지만

내게는 감칠맛 나는 귀한 거다.

매일 몇 개씩 먹는다 쳐도

한동안 입맛을 돋구워 주겠다 싶다.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굴을 사다가 넣어 볼까나?'

전에 묵은 김치 국물이 아까워

굴을 사다 넣었더니 

아주 상큼하게 되었던 적이 있다.

굴과 묵은지는 각기 다 맛난 것들이다.

그러나 

둘이 맛나 새로운 2차 발효가 되었을 때는

최고 중위 최고가 된다는 사실!


그 맛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감칠맛 외에는 따로 없다.

굴 묵은지의 맛을 

진지하고도 깊이 음미해 본다.

굴 묵은지의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었다.

맛이 입안 쪽을 한 바퀴 돌아 느껴지며

마지막에는 안 쪽 깊숙이 입 윗 천정으로

솟아 올라간다. 

감아서 위로 한 번 치고 올라간다 해서

감칠맛인가?

따라 가보니 뇌를 자극해

뇌 곳곳에 꽃이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이다.

발효가 많이 되어서 그럴 것이다.


잘 모르지만 전문 용어로는 

아밀라아제 현상이 벌어진 것인가?

하여간 아미노산이 발효되어 뇌를 자극해

호르몬 샘에서 뭔가 발생되었다고 추정해 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머리 곳곳이 꽃이 피는 듯한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면

발효가 진행되어 감칠맛 나는 것들이다.

나의 이런 취향을

신성한 취향이라 부르기로 하자.


그동안 매일 해 놓은 김치들이 이곳저곳에 

여러 개가 눈에 띈다.

보기만 해도 밀려오는 흐뭇함에

미소가 지어진다.

속으로 혼잣말을 해 본다.

"행복하냐? "

"그렇다. 그간 해 온 것의 결과 아닌가.

이왕 사는 거 즐겁게 살아야지."

"그래, 먹는 게 즐거움이라면

조금씩 자주 즐겨라."

"안 그래도 그럴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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