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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Feb 06. 2021

거리, 영웅, 예술/'장-미쉘 바스키아' 전

어느 화가의 사는 재미 / 이미지







바스키아 전을 먼저 갔다 온 절친이

관람 소감을 말한다.

"인체해부학의 남다른 해석과

작품으로의 표현이 독보적임."


이것은 나도 모르던 새로운 사실이었다.

미술 전시 전문가들을 통해

잘 정리된 기획 전시를 봐야

한눈에 작가에 대해 알 수 있게 된다.




현대 미술에 있어서 미국 작가들을 

생각해 본다.

'가장 미국적인 작품을 만들어 낸

작가는 누구일까?'


세계 미술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을 준

작가는 물감을 뿌려서 추상화를 만든

잭슨 폴락.


색채만으로 감성을 일깨운 작가로는 

로스코.


기획과 프로모팅으로 

상업 미술을 예술로 만든 팝 아트의 결정체

엔디 워홀.


반항적으로 자유를 불태우듯 표현한

장-미셀 바스키아.


바스키아의 작품은 

천재의 출현이라 여길 만큼

작품성 면에서 좋기도 하지만

미국 내 빈부 격차와 인종 차이의

역사적이고도 사회 현상적인

병폐 속에서 탄생했기에

리얼감이 물씬 난다.

미국의 현실 아니고는 불가능한

그라피티라는 새 장르.

갑자기 튀어나온 듯 하지만

곪아서 나온 회화이다.

그래서 

위에 언급된 다른 작가들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바스키아는 작품은 뿜어낸 것이다.


현대 길거리 벽화 예술은

파리에서 먼저 시작되었지만

뉴욕 슬럼가에서 그라피티로 꽃을 피웠다.

차이는 극명하다.

파리의 벽화들은 가난한 화가들이

새로운 개념을 가지고 작업을 했다면

뉴욕의 그라피티는 생존본능에 의한

반항의 산물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화를 다스릴 수 없는

화가가 아닌 길거리의 그들이었다.

그들을 가장 정신적으로 힘들게 했던 것은

인종차별이었다.




미술관에서 정성을 들여 만든 

수준 높은 기획전은

세계 순회를 거치고 나면

다시는 못 본다.

일생에 한 번뿐인 셈이다.

멀리 해외까지 찾아가서 보지는 않을망정

찾아온 전시는 봐주는 것이 버는 것이다.

매번 그런 기획전에서 확실한 뭔가를 건져왔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버는 거다.

내가 버는 것을 나눌 친구와 감상을 같이 했다.


전시 타이틀인 '거리, 영웅, 예술'의 키워즈는

거꾸로 읽어야 한다.

예술을 통해

흑인 영웅을 꿈꿨던

거리에서 자란 소외받던 아이.


세 파트로 나뉘어 전시되어 있었다.

거리에서 그라피티를 그리던 초창기 시절,

회화 그리고 여러 기법을 쓴 작품들로.


내가 보고자 했던 관점은

그의 저항성보다는 

자유분방한 회화성이었다.

작가에게 자유는 자기 내면에서 

자신을 극복해야 나온다는 점에서

귀하고도 어려운 것이다.

모든 사람이 바라건만 못 하는 어떤 것이다.

그렇기에 자유롭게 그린 

그의 작품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만족했다.




바스키아의 성공은 길거리 그라피티에서

예술계로의 전환 의도가 있었고

그 의도는 강열한 의지에 의해 이루어졌다.


바스키아를 얘기할 때 엔디 워홀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엔디 워홀은 당대 매스컴의 휩쓸고 있던 존재였다.

엔디 워홀은 동성애자로도 알려졌던 사람이고

장 미셀 바스키아는 꿈꾸던 성공을 한 작가이다.

워홀이 과연 바스키아의 작품성만을 보고

그와 같이 했을까?

어찌 되었건

그들은 같이 어울리며 전시를 같이 한다.

그리고 나락의 길로 떨어진다.

워홀의 인기가 급하락을 시작한 것이다.

워홀이 갑자기 병으로 먼저 간다.


나는 한때 지미 핸드릭스나 제니스 조프린

음악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폼나게 마구 펼치는 곡들 가운데

자유로움을 느꼈었다.

바스키아의 우상이었던 지미 핸드릭스도

26에 마약으로 일찍이 저 세상으로 갔다.

그의 애인 제니스 조프린도 26에.

바스키아도 코카인으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28에.

자신을 화끈하게 불태우며

짧고도 진하게 살다 간 인생들이다.

마약에 의존해 나온 예술들의 말로이다.


최근 그의 작품에 대한 이런 기사가 떴다.

"지난 2017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바스키아의 1982년작 회화 '무제'는

1억 1천50만 달러(약 1천380억 원)에

낙찰돼 미국 작가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죽은 뒤에 최고가가 작가와 무슨 상관인가!




같은 작가로서 드라마 같은 다른 작가의 

삶과 예술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드라마의 조연 앤디 워홀은 이기적 삶으로

세상에 팦아트로 영향력을 과시했다.

주연 바스카아는 불만 가득한 삶을 표출하여

그라피티를 새로운 예술 장르로 정착시켰다.

둘의 공통점은 부정적인 마인드를 

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부정성은 결국 인생의 마지막을 

책임 없이 죽음으로 몰고 갔다.


바스키아는 화단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성공을 달린 흔치 않은 예술가로

갤러리들의 과도한 작품 요구와 

본인의 욕망과 결부되어

작품을 해대느라 코카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들이 몰입해 작품에 임하는 순간은 행복이다.

그러나 그것이 약물에 의한 것이라면

당연히 몸은 한계를 보인다. 


작품성에 있어서는 앤디 워홀은 디자인을

예술이라고 사기 친 것이고

바스키아는 카툰을 성공적으로 예술화 시켰다.

예술성만으로 보건대 오랜 시간이 지나며

워홀의 작품은 가치가 떨어질 것이고

바스키아는 끝없이 치솟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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