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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May 31. 2021

1-2. 오스만 양식 모스크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서양 미술 이야기'



      






중세 미술 (476~1400) A+B




1. 이슬람 건축 미술



모스크



기능을 위주로 하는 건축 쪽에서는 

아랍과 인도의 이슬람 건축까지

사라센 양식으로 치부하는데,

건축미를 다루는 건축 미술 쪽은

더 세분해서 분류를 한다.

엄연히 양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건축 미술이 따로 있는 이유이다.

한 건축가가 건축 미술까지 다룬다는 것은 

영화에 미술 감독이 없는 것과 같다.


오스만 튀르크 지역은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대성당과 같은

기존의 비잔틴 양식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기에

오스만 양식으로 분류된다.

오스만 양식의 모스크란,

돔을 위주로 한 성 소피아 대성당에

사라센 양식 모스크의 네모난 중정을 결합한 것이다.

기후도 아래쪽 같이 덥지 않으니

큰 실내 위주이고

천장이 없는 사각형의 중정은 넓지 않다.  




모스크 양식이 지역 환경과 민족 성향에 따라

양식이 다르지만

종교적인 기본 룰에서 같은 것이 있다. 

미나렛(첨탑)이 그중 대표적인 것이다.


미나렛(첨탑)은 갯수에 따라

모스크의 권위를 나타낸다.


미나렛 1개 ㅡ 지역 족장이 만든 모스크

미나렛 2개 ㅡ 일반적 모스크로 제일 많다.

미나렛 4개 ㅡ 왕이 만든 모스크

미나렛 6개 ㅡ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

미나렛 7개 ㅡ 메카의 하람 성전 모스크








1-2. 오스만 양식 모스크  




우마이야 왕조 > 아바스 왕조 

> 티무르 제국 > 오스만 튀르크



어느 역사나 그랬듯이 아랍 지역도 

왕조나 세력이 바뀔 때가 혼돈의 시대이다.


우마이야 왕조에 이은

이슬람의 2번째 세습 제국인

아바스 왕조(749~1258)는

중세 이슬람의 황금시대이다.

이라크 일대가 중심지여서

이 시기부터 페르시아인들이

이슬람 세계의 핵심 계층으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이후 10세기부터 튀르크 인들이

그 뒤를 따랐고

아바스 왕조는 1258년, 몽골 제국군에게

바그다드가 함락되며 사실상 멸망하였다.

이어서 오스만 튀르크 제국과 티무르 제국의

양강 구도로 간다.


양강 구도에서

먼저 몽골 혈통 티무르 제국이 약진한다.

티무르 제국은 수도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중계 무역이 발달했고 군사 능력이 뛰어났다.

한편, 오스만 튀르크는 비잔틴 제국을 

속국으로 삼아가고 있었다.

결국 둘은 앙카라 전투를 벌였고

오스만이 티무르에게 졌지만 점차 회복하여 

아랍 지역 서쪽의 패권을 잡아가게 된다.






오스만 튀르크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1451년 

오스만의 메흐메트 2세는 술탄이 되자마자

1453년 바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다.

이는 1000년 왕국 로마의 멸망을 의미한다.


세계 역사에 있어서 여러모로 중요한

천혜의 요새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는

배가 산을 넘는가 하면

최신 무기인 화포도 등장한다.




이 대목에서

오스만 제국과 비잔틴 제국의 영토 지도를 

비교해 보는 것이 흥미롭겠다.

오스만 제국이 지중해와 흑해

그리고 예멘까지 손에 넣었으니

비잔틴 제국 최대 영토보다 더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세계 역사나 서양 미술사가

객관적 역사 시각이 아닌 그들 위주로

쓰였다는 증거의 한 단면이다.






서기 9세기경, 아바스 왕조 최대 강역












오스만 튀르크와 티무르 제국 초기 양강 구도





3면이 바다인 천혜의 요새 콘스탄티노플





세계사 명장면 중 하나인,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기 위해 산을 넘는 오스만 제국의 배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당시 오스만 군의 거대 화포





16세기 오스만 튀르크 제국




비잔틴 제국 최대 영토






오스만의 영웅, 술레이만 大帝




오스만 양식 모스크가 있기에 앞서

오스만 튀르크에는

술레이만 1세(1494~1566)라는 인물이 있었다.

서양사람들은 그의 이름 앞에

The Magnificent를 붙였다.

그냥 황제가 아니라 대제(大帝)였다.

술레이만은 구약의 솔로몬의 

터키식 발음이다.


오스만 튀르크 제국은 이 영웅 없이 

얘기할 수 없다.

그의 전성기 영토는 지중해 전체와

흑해 일대와 발칸 전체,

유럽의 신성로마제국의 수도 빈까지,

모로코를 제외한 북아프리카 전역, 아랍 전역, 

그리고 동쪽으로는 아나톨리아의 러시아까지. 

그가 한번 마음먹고 군대를 보내면 

유럽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그의 재임기간, 오스만의 영토는 넓었으며 

그의 군대는 최고였다.


같은 시절 프랑스 국왕이었던 프랑수아 1세에게

그는 편지를 보냈는데 앞부분은 이렇게 시작한다.


“짐은 술탄들의 술탄이자, 군왕들의 군왕.

지상의 군주들에게 왕관을 나누어주는 자이자,

이 땅 위 신의 그림자이니,

짐의 고귀한 조상들과 저명한 선조들이

무력으로써 정복하고 

존엄한 황제인 짐 또한

불꽃같은 양날검과 승리의 군도로 정복한

백해와 흑해, 루멜리아와 아나톨리아, 

카라마니아, 로마 지역, 둘카디르, 

디야르바키르, 쿠르디스탄,

아제르바이젠, 페르시아, 다마스쿠스, 알레포,

카이로,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아랍 전 지역,

예멘 등지를 관장하는 술탄이며 황제이다...”


그 당시 유목민들의 후예들의 

국제 외교 문서는 이런 식이었다. 

몽골이 바티칸에 보낸 편지와도 유사하다. 

그들의 철칙은 

"순순히 항복하라.

버티면 응징에 들어간다." 그런 식이다. 


아바스 왕조가 몽골 제국군에게 망할 때,

아바스 왕조는 

다른 이슬람군이 지원할 것을 믿고 

항복을 미루다가 몰살당했다.

손자병법에서 

먼저 적을 알아야 승리한다 했는데

적을 알아야 패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






술레이 마니예 모스크(1550 ~ 1557)







술레이마니예 모스크는

오스만 제국의 제10대 군주, 술레이만 1세가

헝가리에서 전승 후 돌아와

궁정 건축가 '미마르 시난'에게 명하여 지었다.

오스만 모스크 중 걸작으로 손꼽히고

오스만 모스크 중 가장 크다.


이 모스크 묘원에는

건축 시행자 술레이만 1세와 왕비의 묘가 있고

건설자 시난 자신의 무덤도 있다.

그만큼 오스만 튀르크의 전성기의 상징이다.

















셀리미예 모스크(1568 ~ 1574)







터키 에디르네에 있는 모스크이다.

술레이만 1세의 막내아들

술탄 셀림 2세의 명으로

오스만 튀르크 최고의 건축가인

'미마르 시난'이 건설했다.


이 모스크는 오스만의 자존심의 증거가 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돔인

비잔틴의 성 소피아 성당의 돔의 크기와 

거의 같은 크기로 돔을 완성한 것이다.

건축가 시난은 평생 그 이유 하나로

컴프렉스를 갖고 살았으리라 짐작된다.

그래서인지 시난은

이 모스크가 최고 애정이 간다고 말한 바 있다.


예나 지금이나 괴팍한 예술가일수록

대중이 모르는 이상한 것에

자존심을 걸곤 한다.

이해하려 하고 싶지 않다. 골치 아프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블루 모스크, 1609 ~1616)







제14대 술탄 아흐메트 1세의 명령에 따라

여섯 개의 미나렛을 갖고 있는

유일한 모스크가 지어진다.

술탄은 매주 금요일 이곳에서 예배를 보았다.


모스크 내부는 약 2만 1,000개에 달하는

파란색의 이즈닉 타일과

푸른빛의 260개 유리창으로 장식되어 있다.

모스크 안 벽면을 온통 뒤덮은

푸른빛의 유리와 타일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새벽빛의 푸른 실내












전쟁 중에도 시인이기도 했던 

술레이만 대제가

록셀리나에게 바친 연애 찬가




나의 동반자, 나의 사랑, 빛나는 나의 달빛이여,

나의 목숨과 같은 벗, 나의 가장 가까운 이,

아름다움의 제왕인 나의 술탄. 나의 생명,

내가 살아가는 원인 되는 나의 천국,

천국의 강을 흐르는 나의 포도주여,




나의 봄날, 나의 즐거움, 나의 낮의 의미,

내 가슴속 깊이 새겨진 그림 같은 나의 사랑,

나의 미소 짓는 장미여, 나의 행복의 근원,

내 안의 달콤함, 유쾌한 나의 잔치,

밝게 빛나는 나의 빛, 나의 불꽃. 나의 오렌지,

나의 석류, 나의 귤, 나의 밤의, 침실의 빛이여,

나의 식물들, 나의 사탕, 나의 보물,

이 세상에서 내게 고통을 주지 않는 단 한 사람.




나의 성자 유수프, 나의 존재의 이유,

내 가슴속 이집트의 귀부인이여,

나의 이스탄불, 나의 카라만,

나의 루멜리아의 마을과 대지들.

나의 바다흐샨이자 나의 큽착이자

나의 바그다드이자 호라산,

머리카락은 아름답고, 눈썹은 활과 같고,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한, 

나를 아프게 하는 연인이여,

설사 내가 죽더라도 그 이유는

그대 때문이리니, 나를 구해주시오




오, 비무슬림인 아름다운 나의 사랑.

그대의 문에서 계속 그대를 찬양하리,

그리고 노래하리.

사랑 때문에 아픈 가슴을 지닌, 눈물이 가득 찬,

나는 무힙비*요, 행복하도다.





{* 무힙비는 술레이만의 필명으로 '사랑에 미친 남자'라는 뜻.)







세계 3대 음식 국가

터  키 




터키와 중국과 프랑스를 

세계 3대 요리 국이라 일본 애들이 꼽는다.

하여간, 걔네들은 세계 최고 순서 

정하기를 좋아한다.

그래도 터키와 중국을 뽑은 것은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터키 음식과 프랑스 음식의 관계를 

정확히 안다면 프랑스는 빼고 

그 자리에 발효의 제왕인

한식이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프랑스 음식의 엑기스는

포도주와 치즈이다.

둘 다 발효 식품이다.

한국 음식은 발효 음식 천지이다.

한식과 프랑스식 비교는 아래 문장으로

쉽게 결정 날 것이다.


"프랑스 사람은 한식만 먹여도 살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람은 프랑스 음식만 먹고는 살 수 없다."



각설하고,

터키 음식을 알면,

적어도 유럽 음식이

터키 음식의 아류임을 알 수 있다.


옆 나라인 그리스 음식은

이름까지 아랍 이름 그대인 경우도 있다. 







카이막

이건 정말 요물 덩어리이다.

터키인들의 아침 식사로

동네 가게에서 주로 파는데,

이것 때문에라도 이스탄불에 가야 할 정도이다. 


무살균 우유를 저온에 천천히 데어서

걷어낸 크림을 꿀과 함께 먹는다.

느끼하지 않은 크림의 풍미 자체이다.






케밥

고기를 바비큐 하는 탁월한 기술의 소산이다.

옆에서 불을 쪼이기에

떨어진 기름이 탈리가 없고

돌리기 때문에 고기도 탈 일이 없다.

이스탄불 현지에서 케밥 종류만

몇 백가지가 넘는다 한다. 

그만큼 소스가 발달되었다는 얘기이다.









터키 피자를 먹어보면

한순간 알아버린다.

피자의 원조국이 터키라는 것을.

도우 자체가 다른 것을 어쩌란 말인가! 

이탈리아의 고유 음식은 파스타뿐이 없을 정도임.









보렉

안에 이것저것 들어간 바케트처럼 생긴 빵이다.

시금치가 들어간 것이 내 입맛에 제일 무난하다.

작은 바케트 같이 생겼는데 

얇은 반죽으로 만들어진

페이스트리의 일종으로

쫄깃거림이 다르다.

반죽이 손으로 많이 한 것이다.


바케트의 생김새는

터키 > 헝가리와 비엔나 > 프랑스로 옮겨졌지 싶다.

술레이만 때 헝가리가 오스만 손에 들어갔으니까.









바클라바

세계 디저트계의 황제라 불리는 

디저트이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달다.

그 극한 단맛을 극복하는 법은

터키식 커피랑 같이 먹는 것이다.

그러면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바클라바는 반죽한 밀가루를 얇게 만들어

쌓아 만드는데,

비칠 정도로 얇게 만드는 것이 노하우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알아도 못 한다. 

현지 장인의 영역에 속하므로.


프랑스인들은 제빵 기술이나 맛에서

비엔나 앞에서는 꼬리를 내린다.

그런 비엔나의 제빵 기술은 

술레이만한테 항복 사인한 후에 

기술들이 들어가게 되었지 싶다.









돈두르마

고무줄처럼 끈끈하게 늘어나는 터키 아이스크림,

이탈리아 젤라토의 원조이다.


돈두르마의 쫀득쫀득한 식감은

살렙이라는 야생란의 뿌리를 넣었기 때문이다.

이 살렙을 가루로 빻아서 우유와 함께 끓여서  

이것을 얼린 것이다.


원래 살렙은 감기약, 혹은 정력제로

약국에서 팔던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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