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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May 13. 2022

티베트 불교 미술 1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티베트 불교

불교의 교리를 살펴보면
싯다르타는 당대에는 혁신적이었고
상당히 치밀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싯다르타의 불교는
힌두교인들에게는 개혁이었던 것이다.

불교가 발전하다가
인도에 불교가 없어진 것도 얘기했다.
불교는 동남아로 그리고 부탄과 티베트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도 전해진다.
불교는 깊이 들어가면 까다롭고 난해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평등하면서 심오한 듯 단순하며 
정리가 잘 되어있기에 개혁성이 강해서
전해지는 나라마다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족했다.

불교가 인도에서는 사라졌지만 
티베트에서는 그 꽃이 활짝 피게 된 계기가 되었다.
티베트에는 본래 '본'이란 전통 종교가 있었다.
본교에 요가와 불교가 보태어 융합되며
티베트는 많은 뛰어난 수행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알자 진리와 비법으로 전해지는 수행법을 
실질적으로 흡수하는 능력에 있어
티베트는 단연 최고일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신성성을
가장 잘 간직한 나라가 되어 갔다. 
여기서 우리는 지리적 자연환경을
무시 못한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지리적으로 세계의 지붕이라 할 수 있는 
춥고 험난한 산악지대인 티베트는
그곳 토박이의 후손으로 태어나기 전에는
적응하기 힘든 곳이다.
이러한 고원 산악 지대의 문화는
평지의 문화와 비교해 
영적인 분위기가 감돌기에
명상을 하기에 적합했으리라.
그로 인해 고대에나 있는
종교 지도자가 통치를 하는 신권정치가
가능했다고 본다.



7세기 초 손첸 감포 황제 시대에 
군사적인 대제국 건설이 마무리되었다.
손첸 감포는 대승불교를 받아들여
티베트 문화를 개혁해 나갔으며
학자들을 인도로 보내 산스크리트를 배우게 하여
산스크리트를 기반으로 티베트 문자를 만들었다.
또한 새로운 도읍지 라사에 왕궁 사원을 세워,
온 나라에 종교적 중심지로 삼았다.

이후 약 250년 동안 티베트의 왕들은 
손첸 캄포의 뒤를 이어 문화적인 개혁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그리고 티소데첸 시대인 790년대에 
절정에 달했다.
그는 인도에서 요가 성자 파드마삼바바와 
철학자 샨타라크시타를 초청해 
샨타라크시타를 승원장으로 하는 
티베트 최초로 승원을 세웠다. 
인도의 불교 대학 제도와 커리큘럼이 
소개된 것도 이 시기이다. 
티송데첸은 또한 아시아 전역에서 
다방면의 학술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 학술 사업은 이후 60년 동안 계속되었고
그 결과 다방면에서 
티베트 특유의 체계가 성립되었다.

인도의 걸출한 요가의 달인
파드마삼바바라는 '티베트 사자의 서'를 써
후세에 남긴다.
기독교에서도 영혼을 얘기했지만
실지로 죽은 뒤에 영혼의 전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책은 역사 이래 이 책이 최초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게 확실한 위안을 준다.
사랑하는 사람 특히 어머니의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큰 슬픔이다.
이 책은 말한다.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이렇듯 불교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여 
발전시킨 이후로는 통일 왕조가 등장하지 않았으며 
군사적 패권주의의 가능성 자체가 아예 없어졌다.
백성들의 마음속에 불교의 비폭력이 
깊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13세기와 14세기에는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일대를 통일했다.
티베트도 대몽골 제국의 관할권에 들어갔지만, 
티베트에는 자치 통치권을 주어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티베트 불교가 몽골에 전파되어
몽골 제국이 제국으로써의 패권이 
사그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살벌한 몽골 제국보다 
종교를 무시하는 현 중국 공산주의가 
티베트에는 더 가혹한 치명적인 결과를 
안겨다 준 셈이다. 
그러나 포물선을 그리며 변해가는 것이 역사이다. 
중국 공산주의가 팽창하여 지금은 정점에 있지만 
중국이 분할되기 시작하면 
티베트는 머지않아 독립을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티베트의 위쪽에 있는 위구르는 
중공의 핵실험장이 되어 환경오염이 심하나
티베트는 자연 훼손이 되지 않았기에 
다시 그들의 문화와 자연으로 세계에 공헌할 것이다.  



티베트 불교 미술

불교는 티베트에 피신 가서 티베트 불교가 되고
요가와도 합해졌으니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라마교라는 이름이 그래서 생기게 된다.
라마는 티베트의 승려를 호칭하는 말이다.
라마교는 이름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제도화한다.
예술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불상과 탕카(탱화)와 만다라가 그것이다.
그중 우주 창조의 원리의 도형인 만다라는
브라만교의 건축 평면도형이
더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겠고
그들만의 고유한 것이 되었다.

한국의 탱화에는 밑그림이 되는 체본이 있는데
그 체본은 중국이 아닌 티베트에서 유래한 것이다.
하지만 예술성에 있어서
불교문화를 꽃피운 나라는 한국이다.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불교 미술에 있어서
고려 탱화와 같은 훌륭한 작품과
불국사 석굴암의 불상 같은 완벽한 작품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사찰 또한 한국과 같이 풍수에 입각해
조화롭게 제도화된 건축 양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실질적인 수행 방법은
거리상으로 온전히 전해지지 못했지만
외적인 것은 갖춘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머지않아 한국의 사찰과 
한옥 문화가 세계적으로 각광받으며
관광 자원이 되는 날이 오리라 본다.



파드마삼바바가 인정한 불상, 형형한 눈을 하고 있다.




티베트 만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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