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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May 17. 2022

티베트 불교 미술 2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티베트 불교 미술 2



달라이 라마 체제의 태동


티베트 라마교의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의식을 이동하는 기법일 것이다.

그것을 '포와'라 한다.

영혼이 육체에서 다른 육체로 이동도 하고

사후에 현실세계의 원하는 태아를 택해 태어난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이를 '린포체'라 한다.

린포체는 티베트인들의 최고 존경의 대상이다.

살아 있는 미륵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산이 험한 티베트에서 바로 앞 산 마을에 가려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라마 고승들은 포와라는 기법을 사용해

이동을 가볍게 했다 한다.

대신 다시 돌아올 본인의 본래 몸은

그 사이에 훼손되지 않아야 했겠지.




몽골 제국의 세력이 약화되고

15세기 초부터 티베트 불교가 일으킨

개혁의 바람은 16세기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1대 달라이 라마(겐뒨 둡파)가 나왔으며

그가 포와 기법으로 환생해

2대와 3대 달라이 라마가 되어 나라를 이끌었다.


5대 달라이 라마는 궁을 건립하고 

티베트의 왕으로 즉위했다.

그리하여 티베트는 승왕이 지배하며 

귀족 집단이나 영주가 사라진 

승원과 비폭력이 백성들의 삶의 중심인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17세기에 만주의 퉁구스 족이 

중국에 진출해 청나라를 세운다.

그때 국제 정세는

청나라의 가장 강력한 적수는 몽골이었고

몽골은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인 까닭에

몽골에게 티베트는 권위의 존재였다.

청나라는 종교적으로 몽골을 제압할 수 있는

티베트와 동맹을 맺고

티베트에게 독립성을 보장해 준다.

거칠기로 소문난 몽골 제국을 

얌전한 고양이로 만든 것은 

티베트 불교였던 것이다.

이것이

세계 역사이래 최대의 제국이었던 몽골이

짧은 역사를 갖게 된 이유이다.

세계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일일 것이다.


이러한 티베트 불교의 내공은

이론을 제시한 불교라기보다는

불교 이전에 들어간 힌두교의

영성 과학인 요가 탄트라 수행 때문이다.

그로 인해,

티베트는 영적 과학에 있어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전 국민이 한 종교로 똘똘 뭉친 

전무후무한 나라가 티베트이다.




밀라레파 


베트남 전쟁 중에는 인도의 영향으로

마하리쉬 등에 의해 미국에서 히피즘이 유행했고

덩달아 대마초 복용자와 마약이 대중화되었다.

그 직후 1970~1980년대에는 논리에 강한

라즈니쉬와 크리쉬 나무르티가

세계적인 바람을 일으켰다.

그래서 본인 파리 유학 시절, 빨간 옷을 입은 

젊은 라즈니쉬 추종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들을 위한 일본 사람이 하는 채식 식당도 

파리에 있었다.


라즈니쉬의 저서 중에 지금은 절판이 되어

구하지 못하는 <마하 무드라의 노래>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은 틸로파라는 인도 성자의 시를 해설한 책이다.

틸로파의 제자는 인도 나란다 대학 학장이었던

나로파(1016년~1100년)이고  나로파의 제자는

티베트에서 인도 나란다 대학으로 유학 온 

마르파(1012년~1109년)이었다.

21년간 유학 후, 티베트에 돌아와 역경가로 활약하던

마르파는 흑마술로 집단 보복 살인을 한

인물을 제자로 받게 되는데

그가 훗날 티베트 최고의 성자로 일컬어지는

밀라레파(1040년~1123년)이다.

밀라레파는 마르파 밑에서 혹독한 노동으로 

업을 해소하고 독거 수행으로 

위대한 티베트의 스승의 반열에 오른다.

세간에는 틸로파의 시가 전해지지만

수제자에게는 밀교 비법이 전해졌던 것이다.


틸로파의 가르침은

나로파의 여섯 요가로 집대성되었고 

이것은 그의 제자인

티베트 카규파의 시조가 된 마르파에 의해

카규파의 핵심 교리와 명상법이 되었다.

그러한 연유로 카규파는

실천수행을 가장 중시하는 종파로 알려져 있다.




초현실주의의 탄생


20세기 미술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은

정신분석학의 프로이트일 것이다.

그의 잠재의식과 무의식의 새로운 영역에 

화가들은 앞다투어 그것을 응용해 

새로운 창작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 새로운 의식은 초현실주의의 밑거름이 되었다.


프로이트가

잠재의식을 연구해 의식의 영역을 넓혔다면

분석심리학자인 카를 융은 

무의식의 긍정성에 관심을 가졌다.

그로 인해 

집단 무의식의 표현인 문화와 상징도 중시했다.

1961년 그의 사망 직전, 

마지막으로 일반인들을 위해 

단순하고 쉽게 정리한 책을 남긴다.

<인간과 상징>이다.

그 책의 내용은 티베트의 만다라 등의 

도안의 예를 들어 상징을 연구한 것이다.

내용도 신선했지만 

논문으로도 짜임새 있는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기에 프로이트의 서적보다 난해함이 덜하다.

본인이 프랑스에서 논문 쓸 때 

도움이 많이 되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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