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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Mar 22. 2024

인왕산 7  
인왕산 주변 명소 2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인왕산 7


인왕산 주변 명소 2


풍부한 약수물이 만든
옥류동 계곡



청휘각, 겸재 정선, 1754, 장동팔경첩, 국립중앙박물관




옥류천의 시원, 버드나무 약수터

물이 많은 산은 건강한 산이다.
인왕산은 물이 풍부했던 곳이다.
도시가 발달해 땅을 다 아스팔트와
보도 브록으로 막으니
스며들 수량이 부족해
땅 속 사이폰 작용에 의해
산으로 가서 나올 물이 말라버렸다.

인왕산에서 제일 큰 약수터였던
버드나무 약수터가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그와 함께 나의 어린 시절
약수터의 아름다운 풍경은
아련히 추억 속에만 있게 되어버렸다.
큰 몇십 미터 되는 너럭 비탈 바위 밑으로
가로로 물이 넘치듯이 솟아나는
약수터는 대단했다.

새벽녘에
동네 아저씨들이 냉수마찰을 하고
아주머니들은 물을 긷고
약수터 양쪽으로 우뚝 서있던 미루나무.
그 분위기는 그야말로 아리따웠다.
지나간 것은
돌아가거나 다시 올 수 없으니
더욱 그립다.



옥류천이 만든 옥류동 계곡

버드나무 약수터의 물은
인곡(인골)으로 흘러 내려가고
인곡 일대의 주인이 된
사대부가인 장동 김 씨가 
인곡천에
옥빛의 맑은 물이 흐른다고 하여
옥류천이란 명칭도 생겼다.
옥류천이 있는 동네 지명은 
옥류동 되었고
줄여서 옥동이라고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 
동네 이름을 정리하며
옥동과 인동을 합해 
지금의 옥인동이 되었다.

인곡 = 옥류동 = 옥동 = 옥인동


옥류천 상류 쪽은 
장동 김 씨 가의 후원이었는데
청휘각이라는 정자를 지었다.

청휘각이 있던 자리 위쪽에서
윗면이 평평한 바위 유적을 발견했다.
몇 미터 높이의 이 단독형의 바위는
형태와 위치로 보아,
선인류 사람들이 바위에 올라가서
앞에 보이는 남산이라는 대상을 바라보며
영혼 수련을 하던 장소로 여겨진다.




서원아회첩(西園雅會帖)

조선 양반들이 
자연을 즐기며 시를 짓고 즐기는 모임을
'아회'라 한다.
요즘으로 치면 골프 모임?
서원에서 아회를 가지면 
'서원아회'가 되는 것이다.

영조 15년, 1739 여름,
정선과 절친 이병연 외 6인이 
당시 도승지로 있던 
이춘제의 집 후원인 서원西園에서 
서원소정西園小亭 건립을 기념해
모임을 가지게 된다.

서원아회첩(西園雅會帖)은 
정선의 ‘한양전경’을 포함한 
다섯 점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와
겸재를 제외한 7인의 시서詩書들이 
담겨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시화첩의 
양식을 지니고 있다.
서원의 주인인 이춘제는 
이러한 아회雅會가 이루진 일이 
매우 신기한 일이기 때문에 
이 시화첩을 만들어 
자손에게 전하려 했다.
아회첩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멋들어진 풍류를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유산인 것이다. 




겸재, 옥동척강도, 서원아회첩



서원아회첩에 있는
이 그림의 제자가 옥동척강(玉洞陟崗)이니
서원에서 아회를 한 인물들이 
옥동(옥인동)에서
세심대 능선 위쪽 고개를 넘어서
청풍계(청운동) 쪽으로 가고 있는 그림이다.
두 명씩 짝을 이룬 7인이 
팔을 들어 가리키며 얘기하는 모습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옥동(옥인동)에서 청풍계(청운동)로
넘어가는 길은 
지금도 정주영 씨 집 앞길, 딱 한 길 뿐이다.
위 그림의 인물들은 
청풍계에 도착해 멋진 자연 속에서
또 시를 돌아가며 권하고 지으며 
놀다가 해산한 것으로 
서원아회첩에 나온다.



이 그림의 경사진 X자 구도임에도
유독 푸근한 건
많은 걸 생략하고 농담처리로
산의 덩어리 감만 내고
단순히 점묘법으로 툭툭 찍어 줘서일 것이다.




좁고도 깊숙이 감춰진 오묘함
청풍계 계곡


풍계임류도, 서원아회첩西園雅會帖, 

정선, 견본담채絹本淡彩, 

34.5 x 34.0cm, 1739년





본래 귀한 것은 흔치 않고
드러나 있지 않은 법이다.
그러나 멀리 있는 것 같아도
아주 가까이에 있곤 하다.
때가 되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살면서 터득하는 그런 일이
그림의 세계에서도 어김없이
마치 법칙처럼 있다.
겸재 정선의 '풍계 임류도'가
우리에게 이처럼 왔다.
'풍계임류도'가 실린 '서원아회첩'이
최근래에야 번역되어
진주 같고 문화재급의 그림인
'옥동척강도'와
'풍계임류도'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풍계 심암(심바위)

이 그림의 제재 '풍계임류'의 '풍계'는
청풍계라는 지명 이전에 
겸재 당시의 지명이다.

풍계 > 청풍계 
>
 풍계 + 백동 청운동


우리가 진서(한문)의 '풍'을 보면
'바람 풍'으로만 해석하려 한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바람의 뜻으로만 쓰지 않았다. 
기운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분위기로도 썼다.
풍계는 그런 의미에서
계곡은 계곡이되
기운이나 느낌이 센 계곡의 특성을 
담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려서부터
그 계곡에 들어서면 
왠지 서늘한 기운을 느꼈고
을씨년스러운 것이
정신을 차리게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만 그런가 하고 
여태 여러 사람에게 물어봐도
모두 동의해 왔다.

그림 왼쪽 위에 쫙 자로 잰 듯 갈라진
심하게 검은 큰 바위 이름이
'서원아회첩'에서 얘기하는 '심암'인 듯하고
오른쪽 아래쪽에 있는 정자가
'고정'이라 추측된다.
정자야 언제든지 지었다가 
허물 수 있는 거지만
바위는 그렇지 못하기에
바위 이름에 유심하게 된다.
심암은 한문으로 '마음 심'자를 써서 
심암이지만, 
추정컨대 옛 우리말 이름을
비슷한 발음의 한문을 차용해서 썼다면
'심 바위'가 된다.
우리말 '심'은 산삼을 ''심봤다.''라고 외치듯
기운 덩어리를 상징하는 말이 된다.

'풍계'의 '풍'도 기운을 느끼게 하고
바위도 기운 덩어리라는 뜻의 심바위.



인왕산의 음 계곡

한편,
음양오행 원리에 입각한
고대 풍수의 시각에서 보면,
양의 형태를 가진 백암의 양의 기운을
바로 앞에 있는 인왕산의 음 계곡이
받아줘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이 풍계이다.

지금의 청운초등학교 오른쪽 담을 끼고
올라가는 계곡이고
끝자락에 정 주영 씨 집이 있다.
정주영 씨 집 바로 오른쪽
지금의 유진인재개발원 터에

심암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서인의 핵심 집안이었던
겸재의 외조부 댁이 있었던 계곡이고,
겸재 14세 때부터
더부살이했던 곳이기도 하기에
겸재가 누구보다 잘 아는 계곡인 곳이다.
그런 겸재가 64세 때
달인의 경지에서 그린 그림이 이 그림이다.



겸재의 풍계임류도(風溪臨流圖)

이 그림 '풍계임류도'는
비가 걷힌 뒤 '옥류동'서 재를 넘어와 바라본
'청풍계'의 신묘하고도
감탄 어린 비경을 담고 있다.
화가는 자신의 감동의 척도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그 감동이 식기 전에 한 작품은
보는 이에 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그래서 이 그림에는
바로 겸재의 극적인 감동이 서려 있다.



우리는 '인왕제색도'를 통해서,
겸재가 단단한 화강암 바위를 표현할 때,
붓 끝을 눌러 넓게 만들어
단숨에 비벼 검게 그리는
겸재 특유의 '부벽준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비 온 뒤의 화강암은 더 검게 보이고
산천은 더 선명하게 보인다.
그래서 비 온 뒤의 겸재의 산수는
평소보다 더 검게 그려지는 것이다.

이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위에서 얘기한 전체적으로
거무튀튀하다는 것과
가운데 물줄기가 가늘지만
선명하고도 절묘한 라인을 형성하며
내려온다는 것이다.

물론 자연적으로 기가 막힌 풍경을
선택해 그리는 겸재이지만,
이 그림에서 그의 지혜는
바위뿐만 아니라 시냇물을 제외한 주변을
모두 어둡게 처리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지극히 의도적인데
가느다란 시냇물을 부각되게 하기 위함이다.

청풍계를 그린 겸재의 그림은 여러 점 있다만,
기암 골짜기에 대부분 별장 같은 정원과
집터가 주제였다면,
실개천의 아름다운 라인을 설명할 수 있는
전모가 드러난 작품은 이 작품이 유일하다.
아주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늘 아주 꼼꼼히
'진경산수'를 추구했던 겸재이지만,
작품성에서 다른 그림과 차별되는 이 그림은
겸재 작 품 중 최고로 손꼽는
몇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좀 더 개인적인 내심을 드러내자면
'인왕제색도' 보다 이 그림을 더 쳐주고 싶다.
'좁고도 깊숙이 감춰진 오묘함'을 품고 있는
귀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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