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한옥에 살아 본 사람은
처마에서 기단 밑 마당으로
빗물이 떨어지는 것을
마루에서
물끄러미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뜨신 아랫목에서
창문에 턱을 괴고
눈 오는 것을 지켜보던 기억도.
한옥에 살아 본 사람은 알게 된다.
비 온 뒤 지렁이가 뒷마당에
얼마나 많이 살고 있었는지를.
눈 위로 참새의 발자국이
얼마나 가는지를.
이것도 생활 속에 관조에 해당하는 일인데
한옥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보는 자 시점의 미학 / 차경借景
한국에서 제일 큰 목조 건축물은
단연코 경회루 일 것이다.
왕권 강화를 위한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복원 공사로 인한
수확물이다.
경회루는 연회를 여는 누각이다.
누각의 기능은
누각은 밖에서 보는 형태보다는
누각 안에서 밖을 보는 시점이 우선이다.
선조들은 경계를 무시하고
밖에 있는 경치를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다.
빌릴 차(借), 경치 경(景)
'경치를 빌리다.'
이것을 '차경'이라 한다.
한옥의 조경이 원림을 추구하니
차경으로 건축의 경계를 허물면
내부에서 원림을 접할 수 있게 되고
멀리 산과 들과 내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간단히 공간을 확장하는 묘수이다.
경회루의 차경은
남쪽으로는 넓은 연못이 보이고
서쪽은 그다음 폭의 연못 위쪽으로
인왕산이 펼쳐져 보이고
북쪽으로는 좁은 연못 폭 위로
백악이 솟아 있다.
페르시아 풍의 발코니 앞에는
기다란 연못이 있고
물을 끌어들여 분수를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의 누각이나 정자는
연못에 걸치거나
아예 연못 속에 있다.
연못 속에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경회루'와
경복궁 북쪽에 있는 '향원정'이고
연못을 걸치고 있는 정자는
창덕궁 후원의 '부용정'이다.
경회루 차경
향원정
부용정
한국에서 집 짓기는 '좌향'부터 시작된다.
좌향이란 뜻 그대로 향을 앉히는 것이다.
볕이 잘 들어야겠지만
애초부터 차경도 고려된다.
그러한 결과 집이 완성되고
창호를 열면 모든 창 속 풍경들이
작품이다.
이때 창틀은 나무 액자가 된다.
작품을 감상하다가
작품 속으로 들어가도 된다.
창덕궁 낙선재 내부, 창호 차경
하늘과의 소통
대학 3학년 때 전공과목으로
동양화를 택했다.
하지 않고는 도대체 알 수가 없어 답답했기에.
교수는 부실했으나 강사는 훌륭했다.
홍용선 강사를 모신 스터디 그룹에 참가해
한국 문화에 대해 귀가 틔기 시작했다.
바로 하회 마을로 달려갔다.
그때의 하회 마을은
허물어져가는 담들의 우중충한 곳이었다.
초가집에 민박을 잡고
며칠을 지내며
스케치북에 콘테로 스케치를 했다.
그 스케치는 후에
파리 아르데코 편입을 가능케 한다.
그 스케치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상은
'삼신당'이라는 고목이었다.
이 고목은 풍산 류 씨가
하회 마을에 뿌리를 내리며 심은 느티나무인데
세월에 커가며 염원이 수렴되며
마을 보호수가 되었다.
사람들은 믿고 지금도 기원을 올린다.
나무를 통해 소원이 하늘에 전달되기를.
하회 마을 보수된 담장
하회 마을 삼신당
자연과의 소통
생활에 있어 자연과 소통하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선조들은 알았다.
궁궐뿐 아니라 집에서도
집안 최고의 차경 장소는
사랑채 모서리에 있는 '누마루'이다.
세 면이 개폐식 창호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예 창호를 달아 메어
세 면을 터버린 누마루를 만들어 버린다.
정자를 사랑채에 끌어들인 것이다.
페르시아 건축이
세계 건축에 기여한 것은 발코니이다.
그 전면 발코니가
사파비 왕조 때는 삼 면 발코니로 발전한다.
한옥도 수 천 년을 발전해 왔다.
한옥에 있어서
자연과 공기 소통의 결정체가 누마루이다.
누마루는 한옥의 꽃인 것이다.
사람과의 소통
성리학에 근간을 둔 조선은
남녀의 소통을 터부시 여겼다.
풍속화로 인간 본능의 소통이 우물가에서
일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홍도, 풍속화첩
신윤복, '정변야화'(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28.2x35.6cm, 간송미술관 소장
한옥의 주재료가
돌이 아닌 나무이기에
온화하고 푸근해지며
살다 보면 정이 든다.
천정 위에는 진흙이 들어가고
방바닥은 구들 위에 진흙을 올리니
몸에도 좋고 냄새 또한 오묘하다.
접하는 모든 것이 자연 소재인 점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으리라.
마음이 가라앉은 자리는 넓어진다.
그 비워진 자리에 비로소 정이 스며들고
자리할 수 있게 된다.
정은 사랑이 발효된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