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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un 05. 2024

한국의 건축 4   한국 건축의 역사 1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한국의 건축 4



한국 건축의 역사 1



선인류 건축


피라미드(사각뿔)


피라미드 양식은

이집트 이전에 선인류 시대부터

동서양과 세계 각지에 있어 왔던 양식이다.


선인류 시대에는

바위산을 통째로 봉오리를 다듬어 조성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카일라스(수미산)와

스위스 마터호른과

잉카의 마추픽추와

한국의 삿갓봉들을 들 수 있다


어째서 피라미드 양식으로

그렇게나 큰 공사를 고집한 것일까?

그것은 기호학(심벌리즘)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옛사람들은 신성한 경지를

다트()나 알(o)로 표시했다.

그 알의 속성은 동심원처럼 확대되고

블랙홀처럼 축소 되어 빨려 들어간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되어서 이다.

그 알은 창조의 시작 빅뱅이자

초의식의 상징이다.

알 이전에 더 깊이 들어간 평안의 상태는

기호를 찾을 수 없기에

알에서 평안 상태에 들어가기 직전을

X로 상징 표기한다.


그 X의 대표적인 예는

삼각산(세뿔뫼) 인수봉 오른쪽 옆구리에

표시되어 있고

탄소 측정으로 7,000년 전 만들어진

천전리 암각화 동심원 중심에

알 안에 X로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답사 때에 직접 손가락을 넣어

더듬어 확인한 바 있다.


선인류가 바위에 X를 표시한 이유는

인수봉 오른쪽 아래로 영봉이 있고

그 위쪽에 비스듬한 바위 언덕이 있는데

그곳에 서면 알게 된다.

그곳에선 아래로는 영봉이 삿갓봉처럼 보이고

옆으로는 인수봉 옆구리에 표시된 X가 보인다.

그들에게는

영적 관조를 할 때 필요한 대상들이

X이자 삿갓 봉우리였던 것이다.




피라미드와

신전 앞에 있던 오벨리스크의 사각뿔의 끝은

모두 X로 귀결된다.

특징은 입체라는 점이다.

진리의 상징인 X를 입체로 만들면

사각뿔인 피라미드나 오벨리스크 끝이 된다.





카일라스 (수미산)





마터호른




마추픽추, 오른쪽 뒤로 삿갓봉 형태의 산도 주시해 볼 만하다.





인수봉의 X





울주군 천전리 동심원 암각화





피라미드





오벨리스크





태고대 선인류 유적지


선인류 건축은

단단한 화강암 바위로 조성되어

지금까지도 꽤 원형이 보존된 것이 많은데

답사 중에 찾은 것들은 다음과 같다.


ㅡ몽골 테르지 평지에 바위 구릉에 조성된

  2층 발코니 유적.


ㅡ테르지 유적과 유사한 스타일이지만

  더 넓은 발코니를 갖춘

  북한산 비봉 북쪽면 유적.


ㅡ서울 인왕산의 심장에 해당하는 위치에

  제대로 고대 가람의 조건으로 조성된

  석굴암.


ㅡ일산 심학산(수막산) 북동쪽 면에

  원시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초기 고인돌군 맨 위에

   2층 되는 위치에 조성된 바위굴 유적.


두 개는 발코니이고

두 개는 석굴인데,

말이 석굴이지

조성한 방식은

큰 넓은 덮개 바위를 얹은 형태이다.


아쉽게도 답사 때 촬영한

파일을 저장한 메모리 칩을 찾을 수 없어

다시 현장에 가야 하나? 하고 있다.






가운데가 비봉 정상, 왼쪽(남면)이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곳,

오른쪽(북면)이

태고대 선인류 발코니 바위 유적이다.

바위가 난간같이 파여져 있어

위험하지 않게  조성되어 있다.







비봉 남쪽면에 십자 형태로 파인 곳

정 중앙으로 간신히 몸이 들어가는데

비봉 북면 발코니 유적의 출입구이다.


+(십자) 표시와 그 중심을 통해

평안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이겠다.






고조선 건축


고역사서에 고조선은

대륙의 마한, 진한 변한과

일본 그리고 대만의 왜로 명시하고 있다.


지금 한국에 남아 있는 고조선의 유적은

강화도 삼랑성과 마리산 참성단이다.


대륙에 요하문화는 황하문명보다 앞서

오히려 모태가 되는 지역인데

화하족(한족)의 것으로 챙기고

발굴 진행을 멈췄다.

세계에서 제일 거대한 피라미드도

발굴 결과를 보고

중공이 발굴하자마자 덮어 버렸다.

그들의 동북공정과는 위배되는

동이족 문화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열등감 때문이다.




참성단


고조선은 3수를 기반으로 하는 체계로

원과 알과 X를

원각방으로 도형화하여

연결한 그 형태로 묘와 제단을 조성했다.

그 예로는

원, 세모, 육면체 형태로 된 참성단이 있다.


참성단은 분명 제단이 육면체이다.

그런데 시대를 거쳐오며

천원지방 사상으로 인해 뒤바뀌어 버렸다.

X의 심오한 의미를 잃어서 일 것이다.



참성단은

대한민국의 사적 136호로 지정되어 있다.

시대를 봐도 규모와 의의 및 가치로 보아

국보급인데 시정을 해야 된다고 본다.

사실 국보 시스템은 일제 때 만들어진

그대로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





다이센릉


구, 삼각뿔, 육면체의 형태가

나주묘와 일본 대능들이다.

이 형태의 고분들을

전방후원분이라 한다.


다이센릉은

오사카부에 있는 천황릉?이라 한다.

형상은 전방후원분이다.

일본 최대의 고분이다.

규모가 아니라 사이즈 면에서는

피라미드나 진시황능을 능가할 것이다.


피장자가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궁내청에서는 닌토쿠천황능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궁내청에서

발굴을 허가하지 않기에

진짜 누구 능인지는 알 길이 없다.


들어내기 꺼려하는 것은

중공과 마찬가지로

열등감 때문일 것이다.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





일본의 다이센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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