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도토스. 이후, 기원전 1세기에
그리스계 로마인 지리학자 스트라본은
박트리아와 소그디아나 너머
중앙아시아에 위치했던
동부 스키타이인들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남겼다.
스트라본은 스키타이의 다양한 부족 명칭을
스키타이라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통일시킨
당사자이기도 하다.
한나라 역사가들은 스키타이를 사이라 했으며
동양에서는 색족으로도 표기했다.
페르시아인은 사카이라고 부르고
아시아의 다른 민족들은 사카족이라 했다.
스키타이인들은 고깔모자를 썼고
활과 단검을 들고 다녔으며 전투 도끼를 휴대했다.
그들은 전투력 강한 유목 민족이지만,
금을 잘 다루고
그들만의 도굴하기 힘든
쿠르간(적석총) 매장 문화를 지닌
종족이었다.
월지, 훈(흉노), 한의 영역
일부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알타이산맥 쪽의 사카인들이
기원전 770년에
서주의 수도 호경을 약탈했다 한다.
중국의 '한서'에선,
일리강과 추강의 계곡을 "사이의 땅",
다시 말하여 사카의 땅이라고 불렀다.
기원전 550-250년 사이의
대략 30개 사카 무덤들이
천산산맥에서 발견되었다.
기원전 2세기의 인도 스키타이
사카인들의 이주에 대한 기록들은
사마천의 사기와 같은
중국의 서적들에서도 나타난다.
본래 한나라에서 중동으로 넘어가는
유일한 실크로드의 통로는
간쑤성의 둔황과 '하서주랑'이다.
그 지역에서
한나라와 고조선에게 옥을 공급하며
거주했던 월지는
훈의 지배자 목돌선우의
몽골계 군대 공격을 받는다.
기원전 177-176년에
월지는 이들에게 '하서주랑'을 빼앗기고
서쪽에 있던 사이(사카)를 친다.
월지의 침략을 받은 사이(사카)는
헬레니즘 계열의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쪽으로
진출하여 정착한다.
고대 그리스계 로마인 지리학자 스트라본도
그리스와 로마의 기록들에서
박트리아를 무너트렸다 라고 하는
아시아족의 네 개 부족들이
일리강과 추강이 있는 땅에서 왔다고
중국 측과 같은 얘기를 한다.
아시아 스텝의 동부 스키타이인들은
기원전 2세기까지
훈은 오손과 월지를
월지는 스키타이를 밀어내고
스키타이는
남쪽으로는 인도 북서쪽과
동쪽으로는 중국 북서부에 있는
신장의 서부 타림 분지 지역의
코탄과 툼샤크 같은
오아시스 도시 국가들에도 정착한다.
인도로 간 스키타이인들을
인도-스키타이 혹은 사카족이라 한다.
석가모니의 석가는 사카족이고
석가모니는 사카족 출신이란 뜻이다.
네팔에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가
기원전 5세기 인물이니
훈족의 압박은 기원전 5세기 이전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지속되었다고 봐야 한다.
이 대목에서 훈을 짧게 얘기하고 넘어가 보자.
훈에 대한 정사는 없다.
다만 환단고기, 단군세기 편에
"BC 2177년, 3세 단군인 가락단군이
삭정이란 죄수를 약수 지방에 유배시켰다가
용서하여 그 땅에 봉하시니
훈(흉노)의 시작이 되었다."라고 하고
그리고 이어서
"고조선 4세 단군인 오사구 단군이
아우 오사달을 보내서
몽고리간(蒙古理干)에 봉하였다."라고
언급이 있을 뿐이다.
짧은 언급이지만,
어디에도 없는
훈과 몽골의 시작을 명확하게 짚어주고
있는 중요한 내용이다.
훈과 몽골을 단군이 세웠던 것이다.
그래서
훈의 정치 체제는 고조선 체제를 따랐고
짧은 시간에 강대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목돌선우 때 훈이 최고조에 올라
한나라가 훈에게 조공을 바쳤다.
그러한 훈의 팽창이
스키타이도 이동시켰던 것이다.
위의 내용을 요약 정리해 보자.
훈 제국의 팽창은
다음과 같은 도미노 현상으로
디아스포라가 있게 된다.
훈 제국 > 오손과 월지 > 스키타이 > 박트리아
그리고 스키타이는 다음과 같이 분산 이주한다.
북서부 ㅡ 신장의 서부 타림 분지 지역에
코탄과 툼샤크 같은
오아시스 도시 국가
남서부 ㅡ 박트리아
남 부 ㅡ 인도 북서쪽
여기서 우리가 보충해서
체계를 잡아야 할 대목은
훈은
고조선 단군이 보낸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고,
월지는 고조선 제국의 한 국가로
실크로드에서
옥 무역을 주로 관장하던 나라였으며,
스키타이는 알타이(금산)를 중심으로
초원의 길과 실크로드를 통해
금 무역을 주관했던 세력이라는 점이다.
고조선과 스키타이의 뿌리가
환웅 배달국이라 가정하고 계통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환웅 배달국 > 고조선 > 훈, 월지(옥 무역)
환웅 배달국 > 스키타이(금 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