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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낙선재(樂善齋)

한국의 건축과 미술

by 이승희



조선에는 궁에서 태어나 자라 왕이 된 경우도 있지만
민간인으로 살다 왕이 된 경우가 많다.
민간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인 이상 당연한 일이다.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과
경복궁 후원의 '건청궁'이 그렇고
창덕궁의 '낙선재'가 그런 경우다.
낙선재(樂善齋)는 헌종 때 지어졌는데
사대부 집들과 궁궐의 중간 형태라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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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樂善齋)


낙선재의 누마루는
조선 후기에 사대부집들에서 유행하던 것인데
처마가 더 넓게 펼쳐진 것이 학이 날개를 편 듯 시원하다.
현판은 청나라의 명필 섭지선의 글씨라는데
단정하기만 하고 통 재미가 없다.
기둥에 쓴 주련의 글씨는
추사의 청나라 스승 옹방강의 글씨이다.




건물만 있는 썰렁함은 정말 보기 딱한 일이다.
얼른 낙선재 뒤 화계로 발이 가게 된다.
중간 문을 넘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화계와 그 위의 정자!
짜임새 있으면서 아름답다.
이곳은 화계 위에 한정당(閑靜堂)이라는
정자가 있다는 점이 다른 점이고
정자 위에서 본 경치 또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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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당(閑靜堂)





낙선재의 앞이나 안에 조경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건물채 뒤의 화계에는 그나마 조금 뭔가 심어놨다.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조차도 스스로
고궁의 화계의 조경이 약하다고 말한다.
시간이 걸리는 거라고 변명을 하면서
재래 종자를 개발하고 있다고 얼버무린다.

물론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안다.
개발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의식이 변해야 한다고 본다.
자생은 바라지도 않지만
편리주의와는 반대되는 자연주의라도 말이다.
그러려면 조선 종자를 심어주고
최소한도로 가꾸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겠는지 의심이 든다.

지금의 정갈하고 깨끗하기만 한 관리 상황으로 보면
아직은 기대하기에는 이른 시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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