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지마"라는 말을 들었을 때

by 레몬팝콘

"한녀처럼 살지 마"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순간 '이게 무슨 뜻이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헌신하며 지내면서도

정작 상대방은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신세한탄하던 참이었다.


내 얘기를 잠자코 듣던 지인이 불쑥 그 말을 던졌다.

"네가 뭐가 잘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미용실 사장님에게 팁을 줘?

그런 행동하고 살지 마. 희생은 자식에게만 해"


다섯 해 전, 미용실에서

그날은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오랜만에 딸과 함께 펌을 하러 작은 동네 미용실을 찾았다.


아이와 함께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순간

'아이가 이렇게 컸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출근과 육아에 쫓겨 1년 동안 미용실에 가지 못했던 나도

밀린 숙제를 마치는 듯 마음이 개운했다.


그 미용실은 사장님 혼자 운영하는 곳이었다.

우리 둘이 펌을 하니 꼬박 네 시간이 걸렸다.


연세가 있어 보이는 사장님은

머리를 만지며 점점 지쳐 가는 듯했다.

어깨와 허리가 많이 아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머리를 하다 말고 중간에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의 머리를 드라이로 말릴 때

나는 한겨울인데도 아이를 집에 데리고 가서 말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계산을 하는데,

딸과 내가 모두 펌을 했는데도 총 12만원이 나왔다.

나는 당연히 한 사람 몫인 줄 알았다.


잠시 놀란 나는 말했다.

"15만 원으로 계산해 주세요"


4시간의 노동, 약값, 전기요금, 임대료를 생각하면

15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연신 고맙다며 영양제를 서비스로 챙겨주셨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본 지인이

나중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바보짓 좀 하고 다니지 마.

네가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니? 결국 네 손해야"


나는 짧게 대꾸했다.

"너는 그렇게 살아. 나는 이렇게 살 테니까"


내 마음의 작은 믿음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걸까.

나는 내가 베풀 수 있는 만큼 베풀며 살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거창한 도움을 주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건넨 작은 배려가 언젠가 나에게,

혹은 내 아이에게, 아니면 전혀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게 선순환이 이어지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내가 아무리 배려해도,

희생해도, 상대가 알아주기는커녕

오해를 사기도 한다.


최근 이런 일로 마음이 흔들렸을 때

지인이 5년 전 미용실 일을 꺼내며

또 "한녀처럼 살지 마"라고 한 것이다.


나는 그 단어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다.

된장녀쯤 되는 걸까, 막연히 짐작했다.


알고 보니 한녀는 '한국 여자'를 줄여 부르는 말이지만,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국 여성을 부정적으로 일반화하며 쓰는 혐오 표현이었다.


챗GPT에 물어보니

"괜히 잘난 체한다, 외국 문화 따라 한다, 돈 쓰는 척한다"

같은 시기와 비아냥이 담긴 말일 수 있다고 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지인은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네 앞가림도 못하면서 남 신경 쓰느라 돈 쓰지 마. 너 자신이나 챙겨"


흔들리는 마음

사실 지금 내 앞가림도 잘 못하고 산다.


멋모르고 다 퍼주면 언젠가는

상대가 알아줄 거라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은 적도 있다.


지인의 걱정 어린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더 혼란스럽게 했다.


정말 내 앞가림을 잘할 때까지

주변에 작은 배려조차 하지 말아야 할까?


내가 베푸는 따뜻함이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만든다고 믿는 건 잘못된 걸까?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이 질문의 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워킹맘은 아이 용돈 많이 주면 안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