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원의 어쩌다 농부]
5월에 파종하면서 메밀빵과 바꿔 먹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메밀농사에 관해 고백해야 할 시간이 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메밀 농사는 대풍(?)이었다. 구황작물답게 어디에 뿌려도 잘 발아했고 김을 매주지 않아도 풀을 이겨내며 쑥쑥 잘 자랐다. 농약을 치지 않아도 벌레 하나 덤벼들지 않았다.
꽃은 또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메밀꽃이 하도 예뻐 밭 전체에 메밀을 뿌릴까 하는 충동을 억누르느라 애써야 했다.
개화기에는 흐드러지게 핀 하얀 메밀꽃이, 옆집 무너져가는 흙바람벽 외양간과 어우러져 소설 ‘메밀꽃 필 무렵’ 버금가는 풍경을 만들어냈다. 줌으로 당겨 사진을 찍으면 여기가 이효석 문학관인지 우리 집 텃밭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메밀은 봄, 가을 두 번 파종할 수 있다. 봄 메밀에서 극강의 가성비(뿌려만 놓고 추수할 때까지 손이 하나도 가지 않았다)를 맛보았으니 가을에는 추수한 씨앗을 모두 뿌려 메밀 수확량을 수백, 수천 배 늘리겠다는 것이 나의 야심 찬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생은 결코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계획대로라면 나는 40세에 조기은퇴한 후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띵까띵까 살고 있어야 한다. 늘 조기은퇴를 꿈꿨으나 조기는 진즉 놓쳤고, 제때은퇴를 기다렸지만 얼마 전에는 해고를 통보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앞으로는 계획 따위 세우지 않고 비뚤어질 테다.
8월 초, 꽃이 진 자리마다 알알이 까맣게 영근 메밀을 수확했다. 낫이 없어서 다이소에서 산 1000원짜리 정원용 가위로 종이를 오리듯 잘라냈다. 꽤 굵은 메밀 알이 꽉 차 있어 가을 파종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잘 건조해야 한다기에 비닐하우스에 방수포를 깔고 가지런히 널어두었다.
그 다음 주에 메밀을 털어 씨앗을 거두기 위해 비닐하우스에 들어갔다가 아아악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 많던 메밀은 누가 다 먹었는지 메밀은 온데간데없고 마른 줄기만 남아있다.
달려가 가족들에게 ‘메밀실종사건’을 보고하자 범인을 봤다는 목격자가 나타났다. 엄마가 “비닐하우스에 산비둘기가 드나드는 걸 봤다”고 증언하셨다. 범행 현장을 살펴보니 과연 비둘기 털과 비둘기 똥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역시 범인은 흔적을 남긴다.
새가 땅에 직파한 콩이나 녹두 같은 곡식을 파먹는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비닐하우스까지 들어와서 내 메밀을 먹어 치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비닐하우스에 문이 없긴 해도 엄연히 하우스인데 남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놈이 있을 줄이야.
비둘기는 우리 집 비닐하우스가 메밀나눔의 집이라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얘들아, 은행나무집 비닐하우스에서 밥 나눠주니까 먹으러 가자.” 이러면서 아들 손자 며느리 손에 손잡고 날아와 잔치를 즐긴 분위기다.
마른 가지를 털고 검불을 긁어모으고 모으니 대여섯줌의 메밀이 손에 들어왔다. 이 씨앗을 소중하게 텃밭에 뿌렸다. 쭉정이가 많아 얼마나 싹이 틀지 알 수 없지만 가을 메밀만큼은 비둘기에게 빼앗기지 않겠다고 의지를 다진다.
농사는 짐승과 반씩 나눠 먹는다고 생각해야 한다는데 원통함이 가시질 않아 식식거렸더니 베짱이 동생이 제안한다.
“누~, 캄다운하고 메밀 부치기나 먹으러 갈까?”
자동차로 10분 거리의 주천 읍내에 훌륭한 메밀 부치기 가게가 있다. 영월에서 메밀 부치기로 유명한 가게들은 시내 쪽 영월서부시장에 포진해있지만 집에서 가기에는 거리가 멀다. 영월은 도마뱀처럼 길쭉하게 생겼는데 우리 집은 왼쪽 끝이고 시내는 중앙이다.
아쉬운 대로 주천 읍내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데 이 메밀 부치기 가게 사장님은 꽤 훌륭하게 부치기를 부쳐낸다. 사장님이 동그란 크레페 기계를 두 개 나란히 놓고 번갈아 가며 메밀 부치기를 부치는 솜씨가 달인급이다. 여름 휴가철에는 재료가 일찍 동이 나 허탕을 칠 수 있어 미리 전화로 예약하고 간다.
절인 배추를 넣은 슴슴한 메밀 부치기는 역시나 제대로 영혼을 위로해준다. 메밀 부치기 두 장 맛있게 먹고 나니 비둘기를 용서해줄 마음이 아주 조금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