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가 나의 뮤즈 Jun 02. 2022

현실도피로서의 영화관

현실을 잠시 잊고 싶을땐 영화관을 찾는다

현실을 잠시 잊고 싶을땐 영화관을 찾는다.

현실이 너무 힘든 상황이면 더 그렇다.

기호에 맞는 영화면 좋지만 뭐 맞지 않아도 그냥 본다.

볼때 만큼은 현실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인데

그남아 이것도 먹힐때가 그렇다.


그래서 이런 식의 현실도피를 싫어했는데

뭐 굳이 피할 이유를 잃어 버린 후엔

종종 써먹는다.

사람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각자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리라 첫 구절처럼

내 불행의 내용은 내게만 불행 한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외롭게 독하며 처절하기도 하다.

말한 적은 없지만, 이해해줄 사람도 없을 것 같은 느낌은

정말이지 씁쓸한 경험이다.

그래서 영화관을 찾아 어떤 감독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으로  삶의 시름을 조금이남아 벗어나려 한다.


나같은 이유로 영화관을 찾은 사람이 있을까?

저녁에 들린 영화관엔 행복해 보이는 커플들과

신이난 교복쟁이들과 같이 왔지만 모르는 사람인척하는

남자-남자 사람이 가득이다.

영화가 주는 유익을 누리러 온 사람들 사이에 끼어

나도 내 불행한 이 감정에서 벗어나 보려 노력한다.

영화의 유익을 누린다는 점에선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 틈에 있다는 혼자만의 생각에 위로 받으면서..


영화가 끝나도 엔딩 크레딧이 올아가는 것 까지 다 본

후에 밖으로 나왔다. 급하게 불행한 감정이 다시 엄습해

왔지만, 그래도 영화 약빨이 괜찮았는지 입장 전 보다는

견딜만 하다. 나의 이런 감정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그저 불행을 감추 고 내 보이지 않으며 그렇지 않은 척을 계속 잘 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자식 속 썩이는 부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