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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가 나의 뮤즈 Jun 09. 2022

나는 나를 구원할 수 없음

다만, 구원해줄 뭔가를 찾을 순 있음

자신과의 싸움에서 매일 지는 날 생각하면 자신만큼 강한 것도 없다는 글귀를 봤다. 웃자고 한 이말이 내게 임팩트있게 다가 왔다. 그러면서 궁금했다.

이기는 쪽은 왜 늘 하기 싫은 것들이고 부정적인 행동과 생각 들일까?

그건 아마도 나의(인간) 죄성 때문이라 생각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죄니.. 죄성이니 고리타분한 주제인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 이면엔 죄를 무시하고 외면하며 합리화하는 추함의 본성이 존재한다. 난 그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저 눈을 가릴 뿐 아놔, 몰라! 할 뿐이다.

죄는 괴로움을 유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순간의 만족과 쾌락, 행복 같은 것에 가까웠다. 또 죄는 심각하지 않다. 단순하며 이해가 쉽고 그래서 내가 생각한 뭔가로 가정하기 쉬웠다.


죄는  혼자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하다. 난 지금  죄를 어떻게 결해 보고 싶은 것 같다.

죄를 다룰 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는 나를 구원하지 못할 거란 사실이다. 하긴 나 자신의 싸움에서도 늘 패배만 하는 나인데 내게 구원 따위가 있겠는가?..

그래서 내게 없는 구원을 위한 모든 낭비를 멈추고 죄를 다뤄 줄 (용서받을 수 있음 더 좋고) 뭔가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마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구도자 seeker라 하는 것 같다. 난 구원을 찾는다. 내게 없으니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죄를 해결해 줄 능력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그곳이 사람이 아닌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맞다!

하지만 내 죄를 그 승리자가 용서해줄 능력자인지는 미짓 수다. 아니, 불가능할 것 같다. 죄인이 죄인의 죄를 용서해준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나는 나를 구원할 수 없다.

다만, 구원해줄 뭔가를 찾을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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