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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가 나의 뮤즈 Jun 13. 2022

아내를 사랑하며 지내요

장모님, 전 무조건 아내 편이에요. 말은 못 했지만

둘째 육아를 위해 장모님께 부탁드렸고

흔쾌히는 아니었지만, 와주셨다.

하지만 장모님과의 동거가 이렇게 불편하게 될진 몰랐다.

“오빠 불편해도 좀 참아!”

“난 괜찮은데 장모님이 불편하실걸..”

너무 안일한 생각였을까? 지금 난 몹시 불편하다.

하지만 육아에선 불편한 것보다 누구라도 한 명 더 있는 게

좋고 그 선택이 국룰 아닌가! 나와 같은 이유로 장모님과 살아본 친구도 이 말에 동의하는 걸 보면 맞는 것도 같다.

나의 불편한 마음은 아내와 장모님 그러니까 엄마와 딸의

싸움에서 시작됐다. 가족 간의 싸움이 그렇듯 그 시작은 정말 사소했다. 하지만 그놈에 팬 뚜껑으로 시작된 말싸움은 모녀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 충분했다.

그 사이에 낀 난 감정뿐 아니라 몸도 상할 뻔했다.

장모님은 내게 섭섭해하셨다. 내가 당신 편을 들지 않아서가 그 이유였다.

내가 싸움을 말리거나 장모님 편을 들지 않은 이유는 대충 이랬다.


1.(가족) 싸움에서 제삼자는 빠져라! 는 생각이 그랬고

2.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 말은 옳았다.

3. 사실 아내가 틀렸다고 해도 난 무조건 아내 편이기 때문이었다. 내겐 3번 이유가 제일 컸다. 난 누가 뭐래도 아내 편인 사람이다. 난 왜 아내 편일까? 그 이유는 이랬다.


하나. 아내 말이 늘 옳았다는 경험 때문이다.

결혼 후 대소사를 경험해본 결과 아내 말은 늘 옳았다. 내 신념이나 기호에 벗어나지 않는 일이라면 아내가 대신 생각해 주고 처리해주는 게 편하기도 했다.

둘. 난 적어도 40년은 족히 아내와 살 작정이다. 또 운이 좋으면 50년? 일지도 모른다. 내가 누구를 섭섭하게 할 것인가? 고민한다면 내 선택은 당연히 아내다.

셋. 내가 장모님 편을 들며 끼어들었다면 선례가 될게 분명했다. 난 오히려 끼어들지 않는 것으로 아내 편을 들었다. 비슷한 상황이 다시 펼쳐진다면 난 다시 아내를 선택을 할 것 같다.


난 무조건 아내 편이다. 장모님이 내 남은 여생을 함께 살아 줄 것도 아니고 순간의 섭섭함을 아내가 느끼는 것보단 장모님 것으로 끝내는 게 적어도 둘 이상의 사람에겐 좋다.

죄송한 마음은 없다.  장인어른도 이런 선택을 해야 하고  섭섭함의 당사자가 나라 할지라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무조건 아내 편을 들어야 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난 아내를 사랑한다. 신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랑은 의지라고 배웠다. 내겐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상황조건이 하더라고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진 않는다. 사랑의 감정이야 사그라들지만, 사랑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은 감정으로만 사랑하진 않는다.

누구 말만 따라 인의예지로 아내를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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