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나스

#송사리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by 에고고 프로젝트

"돈 들어오는 거 절대 주변에 얘기하면 안 된데이"


6월 하순경, 회사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입꼬리가 올라가있었다. 7월이 되면 회사에서 체력단련비가 나오기 때문. 큰 돈은 아니다. N0만원 수준.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체력에 신경 쓸 것이었다면 체단비가 안 나왔어도 진작에 비용을 치뤘을 것이다. 한 마디로 과외수입인 셈. 그래서 다들 한껏 기대에 젖어있었다.


나 역시도 설렘이 컸다. 말 그대로 꽁돈이 들어오니까. 요근래 차량 접촉사고와 잦은 약속 등으로 지갑이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과연 이 '뽀나스'를 어떻게 하면 알차게 쓸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학자금 대출이었다. 사무보조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상여금 같은 목돈을 대출금 상환에 쓰지 않으면 영영 갚기 어렵다"는 대리님의 말이 떠올랐다. 나 역시도 9차학기를 듣기 위해 국가장학금의 손을 벌려야 했다. 틈틈이 갚음과 동시에 10년 만기로 연장해서 현재 월 2만원 조금 넘는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체단비를 중도상환하면 월마다 빠져나가는 돈이 줄긴 줄 것이다.


근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큰 돈도 아닌데. 당장 내가 월마다 빠져나가는 2만원이 없어서 곤궁에 처하는 건 아니니 말이다. 요즘 신문만 펼치면 급격한 금리 인상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손벌린 국가장학금은 고정 금리다. 당장 갚는 건 어쩌면 손해일 수도 있다. 그래. 학자금은 최대한 미루고 미루자. 이렇게 우선순위가 변경됐다.


다음으로 떠오른 건 사치품. 옷이라는 건 있어도 있어도 항상 부족하지 않은가. 안 그래도 날은 더워지는데 마땅한 카라티, 7부 셔츠 등이 없어서 고민이던 차였다. 이제 30대이다 보니 왼쪽 가슴에 붙은 로고에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큰 맘 먹고 '메이커 셔츠' 하나 장만할까 하는 마음이 쓱 지나갔다.


그 순간 고개를 숙여 내 배를 바라봤다. 이건 도저히 사람의 배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요즘 "살쪘다", "체형이 바뀌었다" 등등 진지한 조언을 듣는 터였다. 이 몸뚱아리에 비싼 옷을 걸치는 게 맞는 걸까. 결국 선택을 유보하기로 했다. 내 기필코 살을 빼 멋쟁이 핏으로 돌아오리다.


아, 돈 한 번 쓰기 어렵다. 그때 지난 3월 큰아버지와 주고받은 카톡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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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큰아버지에게 용돈을 보내드렸는데, 감사인사가 나에게 왔었다. 어찌 모르고 지나갈 수 있겠는가. 곧장 나도 지갑에서 보안카드를 꺼내 이체를 했었다. 돈은 돈대로 쓰고, 모양새는 모양새대로 빠졌던 강제효도.


이왕이면 제대로 효도 좀 해야겠다 싶었다. 10여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조금이나마 아빠 역할을 대신해보고자 물심양면으로 챙겨주신 분이다. 더 일찍 보답해드려도 모자랄 판. 지금이라도 감사함을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에도 보안카드를 꺼내 10만원을 입금했다. 적다적어.


바로 전화가 왔다. MZ세대인 나도 계좌에 돈이 들어오는지 모르는지 모를 때가 많은데, 큰아빠는 푸쉬 알림을 켜놓았나보다. "뭔 돈이 있어서 이렇게 보냈냐"며 "잘 쓸게"라는 짧은 말로 통화는 끝났다. 그래서 마음이 뭉클했다. 늦어도 한참 늦은 조카노릇. 이제라도 잘해야지.


친가 식구 챙겼으니 이제는 외가 식구 차례. 고2인 사촌동생이 바로 떠올랐다. 한창 꾸미고 싶을 나이 아닌가. 안 그래도 이 사촌동생의 SNS에는 한창 멋부리거나 친구들이랑 어울린 사진이 종종 올라온다. 그럴 때 무심한 척 용돈 건네는 사촌오빠가 되면 멋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못 지켜서 문제지. 그러면 지금이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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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더운데 입술이 튼다"는 푸념 글에 바로 송금했다. 청소년이니 만큼 액수는 좀 줄였다. 바로 답장이 왔다. 은혜라니. 내가 너네 엄마아빠(이모, 이모부)한테 받은 은혜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해줘서 역시나 고마웠다. 조금이나마 여유를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어서.


남은 돈으로는 밀크시슬을 샀다. 나도 내 몸 좀 챙겨야지. 여기에 데이트 비용과 생활비를 쓰니 체단비는 끝. 역시나 돈은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존재구나.


갑작스레 (내 기준) 큰 돈을 만지면서 깨달은 것은, 돈 역시도 써본 사람이 쓸 줄 안다는 것이었다. 그 점에서 역시나 나는 부족했고. 그런 와중에 놓치고 있던 가족들을 챙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더 열심히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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