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되어줄 수 없다는 것

#송사리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by 에고고 프로젝트

형님/지금 상황상 전화는 안되고 카톡만/할수있는데요/저희 아빠가/오늘/돌아가셨습니다/형님/뭐 어떻게 해야되눈건지 일처리를 몰라서 연락드려봅니다(개별 카톡을 이어붙임)


일요일 밤,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한 살 동생 A에게 카톡이 왔다. 정말 갑작스러운 연락이었다.


A에게도 갑작스러운 소식임은 당연하다.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에게 소홀한 게 2030세대 특징 아닌가. 서울 땅에서 자취를 하면서 아등바등 버티려다보니 A도 가족을 놓치고 있었다. 그리고 예고도 없이 소중한 가족을 떠나보내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A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내용은 카톡과 동일. 나는 한숨만 연거푸 쉴 뿐, 해줄 수 있는 말이 딱히 없었다.


A가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이유는 추측컨데 두 가지였다. 우선 서로 친하고 의지하기 때문. 우스갯소리로 "너네 사귀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10년 넘게 우리는 깊게 교류했다. 힘든 이야기도 주고 받고. 그런 관계 속에서 가장 먼저 나를 찾아준 것은 고마운 일이다. 비극 속에서도.


두 번째 이유는 내가 먼저 그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스물한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남들은 백세시대라는데 왜 우리 아버지만 40대에 떠난 걸까. 아무튼 그 상처에 대해 술만 마시면 하소연을 했고, A는 친함과 동시에 조언을 구하고팠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무서웠다. 나의 말 한 마디에,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A가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 나야 뭐 어렸고, 친가 어른신이 이미 다 결정한 상황에서 장남 자격으로 싸인만 했다. A에게 상주로서 이렇게 이렇게 해야한다고 감히 말할 자격은 없었다. 어떠한 말 한 마디조차 해줄 자신이 없었다. 그저 통화하며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쉴뿐.


내가 A에 대해 잘 안다고 해서 그의 모든 것에 대해 아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지나 A는 아버지 장례를 치르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집에서 조용히 보내드리기로 했단다. 해석의 여지는 행간에 맞기기로.


정말 비겁하게도, 이 상황이 난처하게 느껴졌다. 일단 나부터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전주까지 찾아와준 사람들이 있어 버틸 수가 있었다. 그 깨달음으로 친한 사람들의 애사에는 가장 장례식장에 먼저 찾아가 내 가능한 상황까지 자리를 지켰다.


근데 누구보다 친하다고 자부하는 A의 일에 용기가 안 났다. 진짜 너무 바보 같게도. 일반적인 장례를 치르는 상황이 아니다보니 내가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인지 판단이 안 섰다. 그 판단이 안 서기는 A 역시 마찬가지. A 역시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음의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수밖에.


이제 두 번째 이유를 말하려는데, 나는 정말로 욕 먹어야 마땅하다. 바로 회사 때문이다. 이제 슬슬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 티를 벗어나야 한다는 압박에 봉착했고, 잠깐 의욕이 넘쳤던 나는 월요일 저녁 미팅과 화요일 출장 일정을 잡아놨다. 모두 내가 주도한 자리.


사실 지금 상황을 이야기 하면 약속 한 번 누가 못 미뤄주겠나. 근데 황금 비율을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A의 일도 챙기면서 회사 일로 잡은 미팅도 모두 감당하는 황금 비율. 내가 백종원도 아닌데 말이지. 이미 내 성향을 간파한 선배들은 "제발 혼자 끙끙대지 말고 일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수차례 당부했다. 그 잘못을 이번에도 반복했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월요일 일과가 시작됐다. A는 아침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너무 힘든데 형님 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당연히 가야지. 다만 A 아버님의 장례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는 게 미지수. 그건 A도 마찬가지. 일단 상황보고 연락하자는 말밖에 우린 반복할 뿐이었다. A의 연락을 기다리다가 결국 기존 미팅도 미룰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이조차로 핑계로 돌리는 난 진짜 나쁜 새끼다.


결국 일을 마치고 약속 장소로 옮겨야 할 때 연락이 왔다. 입관을 하러 가는 길이란다. 나는 어땠냐고 묻는다. 말도 없이 검붉게 변질된 아빠를 보며 안타까웠던 게 전부다. 잠깐 조는 사이 임종을 못 지킨 미안함도 컸고. 그조차도 A의 긴장을 풀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다 털어놓았다.


나는 마음의 짐도 털어놓은 줄 알고 저녁 미팅을 갔다. 아무도 내게 벌써부터 압박을 가지라 한 적 없는데, 신입인 나 혼자 욕심을 냈다. 열심히 이빨을 털었지. 한 잔씩도 털고. 너무 양심 없게도 그 사이 A에 대한 생각이 잠시 잊혀졌다. 정말 잠시.


1차와 2차를 옮기는 어수선한 타이밍에, 어디서 지켜보기라도 한듯 A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 잘 보내드렸다고. 정말 갑작스러운 소식을 오로지 혼자서 견뎌야했을 A의 삶의 무게를 나는 감히 모르겠다. 그저 고생했다고 토닥거릴 뿐. 눈 앞에 있었으면 정말 등을 두드려줬을 테다.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근데 이대로 끝내면 안 될 것 같았다. 다시 A에게 전화를 걸었다. A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감정이 복받쳤다. 주저 앉아 펑펑 울면서 얘기했다. 내가 미안하다고. 힘들 때 누구보다 힘이 되겠다던 놈이 회사 핑계로 무섭단 핑계로 회피하고 있는 꼴이 스스로 아니꼬와서. 너무 미안해서. 영등포 한복판에서 실연당한 사람보다 더 목놓아 울었다.


A는 그러면 제가 더 미안해진다나. 오히려 나를 위로해줬다. 누가 형인지 동생인지. 빠른 시일 내 다시 만나 위로의 시간을 가지자 약속하는 게 최선이었다.


마치고 나는 자리로 돌아가 막내 노릇을 했다. 열심히 잔을 따르고 분위기를 돋궈야 하는 그런 막내 노릇. 퉁퉁 부은 눈으로 말이다. 심지어 성과도 없었고.


오늘이야 좀 챙기려나 했는데 제길. 4시반에 눈을 떠 출장을 다녀왔는데, 업무 분장이 제대로 안 된 일이 있었고 결국 막내인 내가 다 떠안았다. 집에 오니 밤 9시 반. 그리고 내일 또 5시 반에 일어나 출장. 결국 아무런 노릇도 하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 이 조차도 상황 얘기했으면 누군가 대신 떠안아주긴 했겠지. 근데 또 끙끙대다 나만 지치고 말았다.


사람이 자산이다, 힘들 때 손을 건네는 사람이 되자, 고 수도 없이 다짐했다. 소소하게는 지켰다고 자부했다. 그럼 뭐 하나. 진짜 소중한 사람의 힘든 일도 못 감당해주는 존재인데. 그걸 회사라는 말 같지도 않는 핑계를 대는 내가 한없이 부끄럽고. 그래서 반성문 아닌 반성문을 쓴다.


힘들 때 든든하게 어깨를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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