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고프로젝트 #자아 #송사리
"송사리형 요즘 어떻게 지내~? 연락도 안 하고ㅎㅎ"
2016년 초, 한 학기 휴학을 하고 잠시 인턴을 하고 있을 때다. 바빠 뒤지겠는데 군대 동기 청개구리(사심을 담았다)로부터 대뜸 카톡이 왔다. 아무리 바빠도 카톡은 대답해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서로 잘 지내냐는 의례적인 안부로 이어졌다. PC카톡을 타이핑하는 나는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그와 '갠톡'을 하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 원래 군대 동기들이 다 그렇지 않나. 단톡방에서는 세상 누구보다 깊은 사이인 것처럼 굴지만, 막상 개인적으로는 연락 잘 안 하고, 누군가 만나자고 하면 고요해진다는 것. 나보다 2살 어린 청개구리는 항상 모이자고 운을 띄우는 역할을 맡았다. 갠톡을 주고 받으면서 "대화는 언제 한 번 보자"는 의례적인 대화로 이어졌고, 나는 긴장을 놓고 말았다. 그게 화근이었다.
"형 미안한데 20만원만 빌려줄 수 있어?? 우리집 강아지가 아파서.."
훅 들어왔다. 예상치 못한 전개. 나는 하던 일을 잠시 놓고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봤다. 우선 나도 지금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대긴 어려웠다. 당시 SNS 운영 업무도 맡아 페이스북 '폭풍 업로드'를 하고 있었거든. 어떻게 보면 '나 돈 벌고 있어요~' 온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빤히 보이는 핑계로 욕을 먹으면 어쩌나 걱정부터 했다. 내가 빌려주는 입장인데 말이지.
청개구리는 한 마디 말을 더 보탰다. 요즘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니까 돈버는 대로 금방 갚겠다고. 망설이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셈이겠지. 상황이 이렇게 되니 나는 청개구리와 있었던 기억 중 긍정적인 부분만 떠올리기 시작했다.
큰 돈을 만지게 된 청개구리가 군대 동기들을 건대 입구로 불러모아 3차까지 풀로 쐈다던지, MT를 갔다가 내가 먼저 떠나야 하자 아침에 잠깐 일어나 나를 역으로 차로 데려다 줬다던지. 까불거리는 성격이 좀 흠이었지 본성 자체는 착한 친구였다. 물론 안 좋은 기억도 많았는데, 뭐 그때 의식의 흐름은 그랬다.
강아지가 아프다는데 어쩌겠다. 별 수 없지. 결국 보안카드를 꺼내 청개구리에게 20만원을 보내고 말았다. 돈 생기면 꼭 다시 보내줘야 한다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다. 청개구리는 알겠단다.
하지만 한동안 청개구리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돈 생기면 바로 보내준다더니. 순간 나는 당했음을 직감했다. 그럼에도 나는 돈을 빌린 청개구리 걱정부터 했다. 혹시 돈 갚을려고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내가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 그렇게 한 달 가까이를 기다렸다.
물론 청개구리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처음엔 조금만 기다려달란다. 얼마 지나니 카톡도 안 읽는다. 돈 빌려준 사람 속타는 것도 모르고. 연락조차 안 되는 것은 문제다. 그때부터 나는 순수히 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한적한 대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떼인 돈 받아다 드립니다' 현수막. 20만원 받기엔 인건비가 더 나오겠다 싶었다. 패스. 절대 무서워서 포기한 거 아니다. 무서워서 포기한 거 아니라고!!
두 번째는 네이버에 '빌린 돈 고소' 검색. 소액이어도 증명을 통해 송사를 가릴 수 있는 제도가 있긴 했다. 일단 킵. 법으로 해결하기엔 또 마음이 약해졌다. 절차가 복잡하기도 했고.
참다못한 나는 영화 '멋진 하루'를 찾았다. 전도연이 하정우에게 빌린 돈 받는 영화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 돈을 받게 된다면 어떤 비책이 있는지 노트에 적을 심산이었다. 그렇게 진중한 마음으로 재생버튼을 클릭했다.
정말 전도연이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하정우에게 찾아가는 내용이었다. 작다면 작은, 크다면 큰 돈을 받기 위해 오죽했으면 전 남자친구에게 찾아갔을까. 채무관계는 이렇게 관계를 구차하게 만든다. 설령 사랑했던 사이일지라도. 서정적인 화면 전개 속에서도 서글픔이 느껴지는 이유였다.
용기를 얻은 나는 청개구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닿았다. 한 숨을 놓은 나는 왜 그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는지 따져물었다. 청개구리는 핸드폰 액정이 고장나 카톡을 못 봤다고 했다. 그게 진짜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렇지 않게 답하는 청개구리 임기응변이 참으로 부러웠다. 나는 이렇게 속이 바싹 타들어가는데. 돈을 빌릴 때는 아쉬운 소리를 마다하던 사람들이 돈 들어오자 얼굴이 싹 변한다는 걸 실감했다.
몇 번을 더 매달려서야 1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상술했듯이 빌려준 돈은 20만원. 그 반을 받기 위해 또다시 마음을 쓰는 것보다는 이미 내 손을 떠나간 돈이라 생각하는 게 낫겠다,고 주변 군대 동기들이 조언해줬다. 덕분에 얻어먹은 술이 10만원이 넘기도 했고.
중고나라 사기 일화 등을 보면 "종종 돈을 준 피해자도 처신을 잘못한 책임이 있다"는 반응을 종종 접하곤 한다. 마음이야 속상하지만 그 말 뜻을 이해하는 편이다. 나 같은 호구라면 더더욱ㅜ 그래서 내게 다가오는 호의적 접근을 죄다 피하고자 애써왔다.
하지만 그걸 다 쳐낸다면 송사리가 아니지. 시간이 흘러 청개구리에게 또 물려버렸다. 판돈도 커졌다. 이번엔 100만원. 주겠다는데 자꾸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스트레스 받아 내 왼쪽 어깨만 아픈 이야기는 내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