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고프로젝트 #자아 #송사리
8월 중순 갑작스레 찾아온 휴가. 말 그대로 갑작스레인지라 어떠한 계획도 잡지 않았다. 그냥 침대에 누워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각종 커뮤니티를 번갈아 들어가며 새로운 '떡밥' 없나 살필 뿐. 이게 직장인의 휴가인가, 백수의 일상인가. 슬슬 무료함이 찾아왔다.
나는 30대 초반의 나이에도, '재충전'하는 방법도 잘 모르고 있었다. 내가 처음 맞이하는 휴가에도 누워만 있었던 이유는 하나. 광복절 연휴였기 때문. 아직 코로나 팬데믹이 극심한 시기인데, 막바지 휴가철이라 물가는 죄다 올라있다. 굳이 큰 돈 들여 인파 속으로 갈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었다.
근데 다른 사람들은 뭐 돈이 남아돌아서 바캉스를 떠나는 걸까. 그 시기에만 즐길 수 있는 가치가 있으니까 시간 들여 돈 들여 움직이는 거겠지. 돈도 시간도 있는데 디비 누워만 있다니. 나도 어디론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떠올랐다.
탈출을 꿈꾸게 된 이유 하나 더. 혼자 있고 싶어졌다. 광복절 연휴를 집에서 온전히 엄마랑 있다보니 내 공간에 대한 욕구가 다시 피어올랐다. 나는 휴가니까 그냥 한없이 누워있다가 먹고 싶은 것 시켜먹고 싶은데, 부모 마음은 그게 아니지 않나. 꼭 내가 식욕이 없는 시간에 별로 땡기지 않는 음식을 일단 상차려놓고 보는 엄마가 괜히 미워졌다. 서른 넘은 불효자 에휴.
또 엄마는 언제부턴가 스마트폰을 스피커폰 모드로 해놓는 게 익숙해졌다. 외할머니, 이모, 직장 동료와의 통화도 스피커폰, 정치·잡썰 유튜브는 소리 최대한 크게, 임영웅 노래 모음은 화음까지 넣어서. 내 방에 있어도 내 방에 있는 것 같지 않는 기분이었다.
차마 말은 못하고 애써 모른 체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이모와 관련된 일로 뭔가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들 나는 선택할 수 없도 없인 가족 문제로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연히 해결할 수도 없고. 순간 울컥한 마음에 숙박 어플리케이션을 열어버렸다. 나의 소원은 독립. 혼자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떠나야지. 잠시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앱을 열어 '호텔 특가'를 누르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서울 강북 권역 일대 머무를 곳을 찾아봤다. 머무를 곳이야 많다. 비싸서 문제지. 어찌됐든 빨간 날에 머무르는 일정. 수요와 공급의 팽팽한 힘겨루기는 가격 상승을 가져왔다.
"역시 내 집이 최고야"라며 후퇴를 잠시 고민했다. 근데 이때 아니면 언제 호캉스를 누려볼까.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 것이다. 하나, 둘, 셋 결제 버튼 클릭. 순식간에 예약이 마무리됐다. 어플은 내가 마음을 돌릴까봐 5분이 지나면 환불이 불가능하게 해놨다. 역시 영리하다.
대충 짐을 싸서 호텔로 들어갔다. 호텔 초입 들어설 때부터 체크인,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 뭔가 주변 시선이 예사롭지 않음이 느껴졌다. 다들 커플이나 가족이 캐리어나 호화로운 짐을 싸서 들어오는데, 퀘퀘한 몰골을 한 사내가 달랑 백팩 하나 매고 하루 묵겠다고 제발로 찾아왔으니까.
처음엔 불쌍해보여서 쳐다본 줄 알았다. 체크인 안내사항에 '코로나19 확진환자는 숙박을 금한다'는 문구를 보고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저 확진자 아니거든요.. 그냥 쉬러 온 거라구요.. 카운터 직원은 여전히 의심어린 눈빛으로 카드키를 건넸다.
문을 열자마자 웃음부터 나왔다. 좁아도 너무 좁았다. 침대 끝과 TV까지 거리는 1m 남짓. 더블 베드 양 옆으로는 그 절반 만큼의 공간이 주어졌다. 누워서 TV 보는 것 말고는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는 셈이다. 심지어 창 너머는 공사장 뷰. 이 작디작은 호화를 누리기 위해 10만원 넘게 써야한다니. 쿠폰을 탈탈 털었는데도. 서울에서 온전한 내 공간을 가지기는 이렇게도 어려운 것이었다.
호캉스 짐을 싸면서 가장 먼저 챙긴 것은 개인 노트북(업무용 말고)이었다. 다들 그런 낭만 하나쯤은 있지 않나. 바나나 쉐이크를 한 모금 마시면서 일상에서 벗어난 소회를 활자에 남기는 낭만. 그 모습을 한 컷 찍어 SNS에 올리며 충족하는 자기애 등등.
그러나 왼쪽으로 보이는 튀어나온 공간이 노트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15.4인치 노트북은 오로지 90도까지만 젖힐 수 있었다. 의자도 불편. 결국 몸이 다시 침대로 향하고 말았다. 아 그냥 나는 본래 와식형 인간인걸까.
사진으로 돌아보니 호캉스가 아니라 격리생활 같아보인다. 어찌됐든 하루라도 온전한 내 공간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음에 만족하려고 한다. 뭐든 경험하면서 깨닫고 발전하는 것이 생기는 거겠지. 다만 돈 많이 벌고 싶다. 머니 is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