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리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정말 겨우 맞이한 주말, 그 중 하루를 사내 체육대회로 보내야 한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더구나 난 올해 입사한 막내. 쌔가 빠지게 움직였다. 뛰고 마시니 토요일 순삭. 일요일은 아침부터 결혼식. 치뤄야 할 일정을 모두 마치고나니 주말에 아무것도 못했다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순식간에 찾아온 월요일. 외근이 있어 곧장 직출해야 했다. 아무리 몸이 무겁다지만 쉬이 발걸음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갑작스레 잡힌 미팅이었기 때문. 행사 장소와 시간 말고는 어떠한 공지를 받은 게 없었다. 이런 경우 십중팔구 내가 독박을 뒤집어쓸 가능성이 높았다. 협조도 잘 안 되는 데 꼭 가야하나? 응. 먹고 살려면 가야지.
예상했던 대로 난관에 처했다. 등록데스크에 내 이름이 없다나 뭐라나. 심지어 국제 행사여서 모든 게 영어로 진행됐다. 오후에 회사 들어가서 보고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겨우겨우 외국인과 미팅을 마치고 나니 11시 30분. 연회장에는 서버들이 다양한 집기류와 크기별 수저를 테이블에 놓고 있었다. 애피타이저부터 수프, 스테이크, 과일, 후식 등이 이어지는 전형적인 호텔 식사인가보다. 맛있겠다. 하지만 내겐 점심 먹을 여유가 없었다. 2시까지 보고해야 하거든. 곧장 나와 버스정류장부터 찾았다. 이런 날은 버스도 안 온다 제길.
뭐라고 이쁘게 포장하지. 버스를 기다리며 시종일관 그 생각 뿐이었다. 미팅으로 마주한 정보로는 흥미로운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 "그래도 저 뭔가 했어요" 보여주긴 해야한다. 버스가 왔고 자연스레 선호하는 기사님 뒷자석에 탔다. 창밖 경치를 보면서도 고민은 계속. 그러다 운전석 위쪽 룸미러에 내 얼굴이 비쳤다.
미간에 진 주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500원짜리 동전은 그대로 꽂을 수 있을 정도로 깊이 패여있었다. 아니 이게 뭐지? 아직 30대 초반이라 내 피부는 탱글탱글할 줄만 알았는데! 자꾸 신경이 미간으로 갔다. 이리저리 표정을 바꿔보지만 미간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안철수, 한선교 등 유명인이 정치에 입문하며 인상이 변한 사례를 종종 접하게 된다. 그걸 보며 "이래서 맨날 다투기만 하는 정치는 하면 안 돼~"라고 혀를 끌끌 찼었다. 근데 정작 내가 '화상'으로 변하고 있었다니. 생각해보면 매일 노트북을 째려보느라 인상을 찌푸렸고, 뭘해도 잘 풀리지가 않아 오만상을 찌푸릴 때가 많았다. 9개월 만에 보기 싫은 주름이 자리잡을 정도였다니. 사는 게 뭘까 싶다.
이런 날엔 같이 사는 게 뭘까 고민하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마침 전직장 동기 형이 근처에 있어 잠깐 티타임을 가졌다. 그 형 역시 푸석한 얼굴과 어두운 안색을 하고 있었다. 180cm이 넘는 키에 넘치는 활기, 밝은 인사성으로 모두가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얘기를 나눠보니 동기 역시 수많은 스트레스와 마주하고 있었다. 일선 현장에서 본사로 들어오고 나서부터. 흔히 군대에서 행정병을 보면 꿀빤다고 다들 생각하고, 정작 행정병은 팔짝 뛰지 않나. 그 형도 마찬가지였다. 본사에서 주문 시스템 관리 업무를 맡으니 편할 줄 알았다. 알고보니 현장의 동료들을 적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원래 회사 시스템이란 게 오류나길 반복이고, 잘 안된다 싶으면 담당자부터 전화하지 않나. 그렇게 수많은 현장 관리자, 그것도 다수의 선배들의 컴플레인을 자주 접하니, 그 밝던 사람이 어둡게 변해있던 것이다. 미간에 주름이 패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서로 붙잡고 하소연을 주고 받았다. 내린 결론은 내 행복이 중요하다는 것.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들인데 내 스스로를 갉아먹을 이유가 있나. 돌아보면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긴장이 일상으로도 이어질 때가 허다했다. 그러니 여자친구와 티격태격하는 일도, 엄마한테 괜히 짜증을 부리는 일도 부쩍 늘었지. 정작 일로 마주하는 사람들한테는 찍소리도 못하면서ㅎ
그 행복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가 요즘 고민이다. 일에서 행복을 찾기는 당연히 어려울 테고. 그 밖에서 내가 여유를 찾을 취미든 활동이든 찾아야 하는데. 그 여유가 없다 없어. 결국 또 한숨만 쉬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