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성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회사 안에 있는 피트니스센터가 2년 만에 문을 열었다. 일전에 일대일 개인수업을 받았던지라 기대가 컸다. 그 당시 나를 맡았던 선생님은 더 이상 계시지 않았다.
“그 선생님 이제 운동 안 해요.”
새 선생님이 전해준 소식. 충격이었다. 보디빌딩 대회도 나가던 분이었는데 그만뒀다니. 코로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미래를 바꿔놓았을까. 나는 그분 덕에 운동의 재미를 깨우쳤다. 그래서 2년 동안 다른 센터일랑 등록할 생각도 않고 기다려왔던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새로 나를 맡게 된 선생님 역시 개인교습에 탁월했다. 적당히 유쾌하면서도 불유쾌한 질문을 하시거나 농담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 어떤 부위에 감각이 느껴져야 하는지 조곤조곤 알려주며, 크게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충분히 운동이 될 정도로 단호하게 수업을 이끌어 주신다.
"재밌는 일 없었어요?"
우리는 지난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하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하곤 한다. 중간중간 쉬는 텀에는 이제 갓 태어난 선생님 따님 사진을 보여주기도 한다. (빈 말이 아니라 정말 귀엽다.) 난 얼마 전에 대학교 친구들과 맥주 축제에 다녀와서 얼마나 좋았는지를 털어놓았다. 시장 진흥 방안을 위한 공모전에서 대상을 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기특한(?) 축제였다. 시장에 방문해 여러 가지 안주를 5천 원어치 이상 주문하면 생맥주 1잔이 무료였다. 골목 사이에는 야장이 펼쳐져 있었다. 조금 더 지나면 추워서 못 앉아있을 듯했는데, 바람이 솔솔 불어 적당히 산뜻한 날이었다. 우리는 족발, 녹두전, 해물파전, 낙지탕탕이, 고갈비, 육회, 새우튀김, 달걀말이를 먹었다. 많이도 먹었다. 모두 예상했겠지만 안주를 많이 먹은 만큼 맥주도 여러 잔 마실 수 있었다.
이런 재미난 이야기를 선생님께 전달하고 들은 말이 내게 한동안 맴돌았다.
“운동하는 사람이 술 먹으면 어떡해요.”
순전히 장난스러운 말이었지만, 그 단어가 뇌리에 박혔다.
‘운동하는 사람.’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을 그렇게 정의 내려 본 적 없었다.
운동? 나와 절대 연결시킬 수 없는 단어였지. 지루하지만 역사를 되짚어 보자면, 나는 한 번도 체육시간에 선생님 눈에 들어 본 적 없었으며-오히려 안타까움의 대상이었다. 나름 반에서 모범생인 애가 자세도 좋고, 태도도 좋은데 도저히 늘지 않으니 포기당하는 쪽?- 친구들에게는 ‘종이 인간’이라는 평을 들어왔다.
몸을 이용한 모든 활동에 무방비했느냐면 그건 아니다. 대한민국에 자란 어린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문지방을 타고 오르며 놀거나 놀이터 정글짐을 오르다 돌연 모래 위로 뛰어내리며 호연지기를 길렀다. 어린 관절을 자랑하며 다리 찢기를 선보이기도 하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댄스 팀을 만들어 축제 때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운동은…. 내 것이 아니었다. 한데 나보고 '운동하는 사람'이라니! 그 말이 나를 새롭게 설레게 만들었다. 나는 운동하는 사람이야. 갑자기 아무도 심어주지 않은 운동인으로서의 결기와 자부심이 피어올랐다.
말의 힘은 마법과 같았다. 어머니와 애인도 바꿀 수 없던 나를 바꿔놨다. 얼마나 갈진 알 수 없지만.
여기, 운동하는 사람인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 공유한다.
1. 다리 꼬고 앉지 않기
일평생 다리를 꼬고 살아왔다. 한 번만 꼬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얇은 다리를 자랑하며 두 번을 꼬았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검색하면 나온다. 두 번 꼬기. 무릎과 관절이 모두 박살 난다는 그 자세. 나는 그렇게 하면 다리가 더 얇아진다고 착각했다.
그러므로 악뮤의 '다리 꼬지 마' 노래를 엄마 아빠가 돌림노래로 불러도 어림 있었겠나. 더욱 꼿꼿하게 다리를 꼬았다. 하지만 이제는 두 다리 모두 땅에 딱 딛고 앉아서 가슴과 허리를 편다. 그것도 모자라 거북목 자세를 하고 있거나 구부정하게 앉아 일하는 동료를 보면 이렇게 외쳐 경각심을 주기도 한다.
"1천만 원!"
디스크 수술비를 외치는 거다.
2. 물 1.2L 마시기
나는 물을 싫어한다. 물이 몸에 닿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서 여름엔 물놀이도 특별히 가지 않고, 계곡 같은 데 가본 것도 손에 꼽을 정도다. 마시는 것도 예외는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최근에는 하루에 커피나 술 말고 '생수' 그 자체를 한 모금이라도 마시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까.
"근육의 70~80%가 물이에요. 근육을 만들려면 물도 많이 마셔야겠죠?"
개인수업 전, 내가 답한 간단한 체크리스트를 보면서 선생님이 꾸짖었다. 이렇게 물을 많이 마시면 안 된다고. 커피는 일정 부분 운동과 병행하는 데 나쁘지 않은 음료이지만, 술은 백해무익하며, 물을 조금씩 자주 마셔주는 게 중요하다고.
운동하는 사람인 나는 이른 아침에 두 잔의 물을 마시고, 출근해서 오전에 400ML 꽉 채워 한 잔, 오후에 한 잔 마셔 버릇하고 있다. 운동하면서는 거의 1리터를 마시는 거 같다.
3. 이부자리 정리
운동하는 사람과 이부자리가 무슨 상관이냐고? 솔직히 모르겠다. 그렇지만 운동을 시작하면서 이부정리도 시작하게 된 걸 어떡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기상 시간을 바꿨다. 주말을 제외하곤, 새벽 5시. 늦어도 6시 반에는 일어난다. 일어나면 꼭 이부정리를 한다.
'어차피 다시 덮을 건데 왜 해야 돼?'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다. 아주 한때, 무기력할 때 대처하는 방법이었는지, 루틴 만들기였는지 하는 강의에서 매일 아침 이부정리를 하면서 성취를 맛 보라는 내용을 들은 적 있는데, 그때 몇 번 한 게 전부였다. 지속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시작했다. 일어나자마자 작은 스탠드를 켜고, 자리에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는 것으로 몸을 깨운다. 그러고 일어나면 이불을 개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몇 번의 펼침으로 가장 완벽한 펼침을 찾는다. 그러고 나면 저녁에 돌아온 내가 잠자리에 들라치면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 하루 종일 수고했을 저녁의 나를 위한 새벽녘 나의 작은 서비스랄까.
4. 정류장 하나 일찍 내리기
"저녁을 안 먹는다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유산소 운동을 해요."
살 빼려고 운동한 날 저녁에는 식사를 거른다고 하자 선생님이 대뜸 나의 단식을 쓸데없는 짓이라 폄하했다.
암만 생각해도 유산소 운동 시간이 짧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정류장 하나 일찍 내리기. 일상 속 유산소 운동 시간을 늘리는 거다. 출퇴근 모두 목적지보다 한 정류장 일찍 내려 걷는다. 그럼 대략 10분 정도는 더 걷게 된다.
회사에 출근할 때 계단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바쁜 일과 중 매번 계단을 이용할 수는 없으니, 비교적 여유로운 아침 시간에 지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5층인 사무실까지 운동삼아 걸어 올라간다. 2층 정도 되면 허벅지가 펌핑되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때 멈추지 말고 희열을 느끼면서 올라가는 것이 포인트. 엉덩이 힘으로 올라간다 생각하고 올라가면 금방 목적지에 다다른다.
5. 술 줄이기
"소주는 논알코올 없죠?"
이 무슨 물과 적당량의 설탕 주문하는 소리냐고 묻겠지만, 나는 술을 퍽 좋아한다. 그럼에도 술을 줄였다. 빈도와 섭취량 모두. 물론 간수치가 높다는 건강검진 결과에 영향받은 것도 있지만. 예전 같으면 연거푸 들이켰을 잔을 사이다로 대체하거나 논알코올로 대체하거나 그 정도로도 도무지 못 참을 지경이 되면 한두 잔 마시는 것으로 참고 있다. 운동하는 사람이니까 이제 취할 일은 없다! (아주아주 어쩔 수 없을 때를 제외하곤!)
지난 금요일. 역시 새벽에 일어났다. 바로 회사에 직행하려 했지만 칠흑 같은 어둠이 무서워 선뜻 나서지 못했다. 이 시간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집 안에서 얼마간 시간을 죽이다 해가 떠오르자 버스 정류장으로 나섰다. 웬걸. 사람이 많았다. 차도 많고. 세상은 내 생각보다 더 빨리 깨어나는구나. 예상보다 많은 '아침형 인간'들이 하루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 안에 껴있자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의 차이는 '아침형 인간이 유난히 으스대는 것'뿐이라던 말이 떠올랐다. 뭐, 그런들 어떠하리. 일찍 일어나는 것만으로 으쓱해질 수 있다면 나쁜 장사는 아니다.
일곱 시 반. 회사에 도착한 나는 가방만 내려놓고 피트니스 센터에 갔다. 재택근무하는 날 아침이라 그런지 한적했다. 아니, 한적하다고 하기엔 스피닝 바이크를 열심히 움직이는 한 사람뿐이었다. 그녀는 대체 몇 시부터 있었던 걸까?
나는 간단히 러닝머신부터 시작했다. 해가 넓은 창 안으로 가득 들어왔다. 어떻게 그렇게 높게까지 나는 건지 싶은 까치가 몇 번이나 지나가기도 했다. 레고만큼 작게 보이는 버스와 자동차, 걸어서 출근하는 사람, 자전거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선생님이 알려준 것을 혼자 차근차근 되짚어가며 운동하니 금방 한 시간이 갔다. 아침 공복에 운동하니까 저녁에 운동하는 것보다 물을 훨씬 많이 마시게 됐다.
악뮤의 이찬혁 님이 예능 '나 혼자 산다'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다. '이렇게 싫어하는 운동도 해냈는데 남은 하루 동안 못 해낼 게 뭐 있어!' 이런 생각 때문에 첫 일과로 운동을 선택했다고. 나 역시 비슷한 마음이었다. 내 경우, '이렇게 싫어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힘든 것'에 가깝지만.
"지금 자세 좋아요! 아주 잘하고 있어!"
자세가 좋다. 사실 그런 말을 많이 들어보진 않았다. 난 어떤 자세를 해도 엉거주춤했고, 어색했다. 우스꽝스러운 자세라고 생각했고, 부끄러웠다. 남의 시선이 과잉하게 의식되었다. 너무 오랜 시간 그래 왔다. 그게 더 엉거주춤한 자세를 만드는 줄도 모르고.
후회하진 않는다. 과거의 나는 어쩔 수 없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그동안 나는 숱한 상담과 자아성찰을 통해 겨우 자유로워졌다. 필라테스를 배울 때나 보컬 레슨을 받을 때, 심지어는 예술치료를 받을 때까지 늘 들어왔던 말. "힘 빼세요." 그 말을 더 이상 듣지 않는다. 아직도 버스를 타고 있으면서 엄지 손가락에 힘을 꽉 주고 있는 나를 발견하지만, 그때마다 그를 인지하고 힘을 빼고 있다.
운동하는 사람인 나는 매 순간 힘주며 사는 대신, 무게 칠 때만 힘주며 살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