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일지(2)-더 멀리 날려면, 숨 쉬어요.

#천왕성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by 에고고 프로젝트

어느덧 네 번째 수련. '전굴'이랄지, '지그재그로 발 모으기'랄지, 잽싸게 주위를 훑지 않아도 선생님 지시를 따를 수 있게 됐다. 지난 수련에선 사람들이 드넓은 우주를 떠도는 로켓 같다고 느꼈는데, 이번 수련 중엔 스스로가 한 마리 말 같다고 생각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은빛 유니콘. 가부좌를 한쪽만 튼 상태에서 다른 쪽 다리는 뒤로 쭉 뻗고, 두 손은 어깨와 등 뒤로 교차하게 잡고 고개를 치드는 자세였다. 형상이 말 같기도 하지만, 조용히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데, 순한 말이 된 것 같았다.



이번 수련에는 한 가지 성공과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성공부터 언급하자면, 발 머리 뒤로 넘기기를 드디어 성공했다! 사실 어떻게 성공했는지 모르겠다. 딱히 두려움을 버리잔 생각도 없었고, 부득이 용기를 내본 것도 아니었다. '이번엔 꼭 해야지!' 다짐조차 잊고 있었다. 그저 선생님 말에만 집중했을 뿐이었다.


"발 끝을 바닥에 디뎌 봅니다."


그 말을 듣고 허공에 떠돌고 있는 발을 땅에 둬야지, 했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아니, 감촉이려나? 내 발이 보이진 않는데, 매트 감촉이 어떤지 내 두정엽까지 충실히 전달해주었다. 그것도 뒤집힌 채로. 발바닥이 시원했다. 숨 쉬는 것에만 집중해서 두려움과 불안마저 잠시 잊었던 걸까?


'오? 이 자세 성공했네?'


성공의 기쁨은 조금 늦게 찾아왔다. 다른 자세로 넘어갔는데, 선생님이 다가와 자세를 다시 잡아주었다. 전혀 다른 자세였다. 무릎을 양팔 쪽으로 굽혀야 하는데, 배 쪽으로 굽히고 있었다(!) 그뿐인가. 좌법을 할 때에도 다리를 평행하게 쌓아야 하는데, 혼자 어쩌지 못하고 있다가 모든 수련자들의 집중을 받을 뻔도 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선 부끄러움을 넘어 조금의 수치심마저 느끼는 infj인데,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형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숨'이 먼저예요."


선생님의 말씀 때문일지도 몰랐다. 운동이 아니라 '자기 수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틀린 자세라거나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제대로 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린 것뿐이니까.


그렇지만 앞서 말한 대로,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평소보다 복부에 신경을 많이 쓴다. 걸그룹처럼 납작한 배를 왜 갖고 싶은진 모르겠는데, 코어 하나 없는 몸으로 윗몸일으키기를 매일 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아주 희미한 11자가 거울 너머 비치기 시작했다. 그러니 괜히 욕심이 생긴 거다. 누가 봐도 선명한 11자가 갖고 싶다고...!


누워서 하는 수련을 하다 보면 헐렁한 상의가 내려가서 딱 붙은 크롭 상의를 구매했다. 레깅스를 함께 입고 수련에 임했는데, 수련하는 내내 배가 신경 쓰였다. 상의는 잡아내리고, 레깅스는 끌어올리고... 집중력이 너무 떨어졌다. 다른 수련자들의 배를 슬쩍 보기도 했다. 저 사람은 허리가 굉장히 얇다. 부럽다.. 대체 왜! 그만 신경 써! 눈 감고 수련해서 남들은 내 배를 못 보는데도, 볼록하게 느껴지는 배를 숨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가 하면, 엎드려서 상체만 들어 올리는 자세를 할 땐 배 중앙이 아프기도 했다. 마치 어릴 적 갖고 놀던 탱탱볼이 배와 바닥 사이에 끼어 있는 느낌이었는데,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다. 아...! 수술 부위였다. 6개월 전, 충수염 수술로 인해 복강경으로 수술한 부위. 겉으론 아무 상처도 안 남았는데, 배 안쪽에는 무언가 걸려있는 듯한 불편한 감각이 느껴졌다. 보이지 않아도 수술의 흔적은 남아있구나. 새삼 몸속 장기들이 있음을 체감했다.



"우리는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숨을 들이쉬어 세포들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주세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비눗방울을 떠올렸다. 몸속에 가득한 비눗방울. 비눗방울을 더 멀리 날리기 위해 숨을 후욱 불듯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세상은 너무 빠르고, 우리는 속도를 맞추느라 항상 바쁩니다."

내 속도보다 너무 빠른 세상에 맞춰 살려니 과호흡이 오거나 공황 장애를 겪는 현대인이 많아진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어릴 적 읽었던 <거울나라의 앨리스> 속 '레드퀸 효과'도 떠올랐다.


"제가 있던 세상에서는 이렇게 빨리 뛰면 보통 어딘가 다른 곳에 도착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왜 주위 풍경들이 그대로죠?"

"여기에서는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힘껏 뛰어야 겨우 제자리에 머무를 수 있단다. 만일 어디론가 가고 싶다면 두 배로 빨리 뛰어야만 해."

- <거울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현실을 바꾸긴 어려워도 일주일에 한 번씩, 혹은 새벽 일찍 일어나 혼자서라도 천천히, 그리고 깊게 숨 쉬면서 속도를 맞춰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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