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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lja Jun 10. 2021

뭐라도 찾자

글 좀 잘 써 보고 싶은 중년 주부의 눈물 콧물 분투기 2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의 전기’에 찌르르 감전되고 나서 무엇을 했을까? 물론 이것저것 많이 했다. 책을 제대로 읽고 싶어 독서 모임에도 관심을 두었다. 그전에도 책을 꽤 읽는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읽는 양에 비해 말은 생존 필수회화 수준이요 글은 초등생 일기 수준이었다. 아마 읽는 ‘척’만 한 것일 수도. 뭔가 실질적으로 글쓰기에 도움이 될 만한 읽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알음알음 알게 된 독서 모임에 가입했다. 지금은 사회적 상황상 온라인으로 모임을 하지만 원래 진행방식은 이렇다. 독서 모임 진행자가 주제를 정해 책을 대여섯 권 선정한다. 책이 정해지면 보통 2주에 한 권씩 읽는다. 정해진 분량을 읽고 1주일마다 한 번씩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세계문학을 읽는다. 젊은 시절 읽지 못했던 책을 읽는 일은 경이로웠다. 집콕 좋아하는 나를 1주일에 한 번 신발을 신게 했다.    


문제는 모임에 나오는 회원들이다. 꽤 많은 회원이 독서량이 상당한 데다가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쓴다. 읽은 책을 문학에서 인문학으로 그리고 과학, 역사, 사회학, 철학을 넘나들면서 해체 분석 통합하는 ‘거의’ 전문가도 있다. 모임을 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나는 너덜너덜해졌다. 현학과 논리와 수사(修辭)의 폭포가 폭발하듯 쏟아져 내 머리를 강타했다. 나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니까) 말도 많이 안 하고 다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살짝 흘린다든지 고개를 끄덕인다든지 했다. 그렇게 두어 시간 폭포 아래에서 도를 닦다 보면 정신적 피로가 말도 못 했다. 피로는 그저 피로에서 그치지 않고 우울감으로까지 진화했다. 그런 날은 글쓰기를 그만 딱! 포기하고 싶어졌다. 아, 진짜 나는 그동안 뭐 하고 산 거야!     


책을 읽는다고 읽었는데 글은 왜 잘 못 쓰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어느 날 내가 어떻게 책을 읽고 살았는지 정리해 보았다. 10대는 온 동네 천재라고 소문난 오빠에게 지기 싫어 막무가내 독서를 했다. 주로 한국소설이었다. 뭔 얘기인지도 모르면서 오빠가 읽어대는 소설‘만’ 읽었다. 이문열과 이외수의 책을 끼고 살았다.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상이나 생각을 정리하지도 않았다. 그냥 ‘읽었다’에 의미를 두던 시기다. 20대는 놀기 바빴다. 책? 그게 뭐야? 그런 시절이었다. 사실 이때 책을 읽어 ‘재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 보면 십 대 이십 대에 책을 많이 읽었더라는 게 나의 추론이다. 30대는 자기계발서에 중독됐었다. 10분 시간 관리 어쩌고, 리더십 저쩌고, 무슨 무슨 관계론 같은 책들을 책장에 가득 꽂아두었다. 그때는 너무나 성공하고 싶었다. 왜 성공하고 싶었는지도 몰랐고 무엇이 성공인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무슨 일에서든 성공한다면 내 결핍을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40대 초반에는 학창 시절 죽어라 피해 다니던 공부에 마음이 꽂혔다. 1년 6개월 동안 뉴질랜드 유학을 하였다. 귀국 후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 시기에는 즐겁게 공부하느라… 는 거짓말이고 간신히 수료하느라 전공 서적만 읽어댔다. 이미 멈춰버린 뇌를 쥐어짜며 매주 프레젠테이션을 하려면 다른 책은 쳐다볼 수도 없었다.     


이렇게 정리를 해보니 내가 글을 못 쓰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정리해서 나만의 철학을 차곡차곡 쌓아야 할 시기를 놓친 것이다. 남들 평생에 걸쳐 이루어놓은 오라(아우라)를 난 그저 몇 번의 끄적임으로 해내고자 한 것이다. 절망했다. 내 나이 오십인데 (그 당시) 인제야 시작한들 저들만큼 글을 잘 쓸 수 있겠느냐고 한탄하며 눈물을 찔끔거렸다. 쓰고자 하는 문체는 손에 잡힐 듯 눈에 보이는데 타고난 재주가 없으니 아무리 노력한들 죽기 전에 원하는 수준의 글을 쓸 수 있을까? 산 날보다 살날이 짧은 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서재라고 하기에는 좀 민망한 책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다가 쌓아놓기만 한 책들을 책꽂이에 꽂기로 했다. 칸이 모자라 공간도 마련할 겸 옛날 앨범을 꺼내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순간. 방 정리하려면 옛날 앨범부터 꺼내 한 장 한 장 넘겨 보는 게 첫 번째 순서 맞지? 나 역시 대한민국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일상을 비껴가지는 않기에 앨범을 넘겨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세상에, 나는 그날 앨범 속에서 내 최고의 글쓰기 부스터를 찾았던 것이다.    


최우수상. **국민학교(초등학교) 5학년 북놀자. 앨범 사이에 끼어있던 상장. 아! 왜 잊고 살았지? 그렇다. 교내 독후감 대회에서 받은 상장이었다. 5학년 때는 암흑기였다. 편애 심한 담임선생님한테 나는 천덕꾸러기였다. 엄마가 학교에 자주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해도 내가 혼났고 어머니회 임원 아들이 나를 때려도 내가 혼났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날 조용히 교탁으로 불렀다. 그러더니 ‘이거, 가져가’ 한마디 하고서는 상장과 부상으로 책을 건넸다. 어리둥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분이 좋았는지 어땠는지도 기억나지 않고 상장 덕에 엄마한테 칭찬받았는지 아닌지도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독후감의 한 대목은 기억난다. 읽은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문장 자체가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썼었다. ‘가장 감명 깊은 장면은 라스콜니코프가 소냐의 설득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눈물을 흘리며 길바닥에 입을 맞추는 장면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도스토옙스키는 비록 살인을 저질렀지만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끼워 맞추기로 했다. 1000조각짜리 퍼즐에서 999개 조각을 다 맞췄는데 마지막 한 조각이 이상하게 안 맞을 때, ‘에라 모르겠다’하고 조각을 자르거나 덧붙여서 그림을 완성하듯. 그 상장을 본 순간 그냥 끼워 맞추기로 했다. 나도 가능성이 있겠군. 그래, 내가 괜히 글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니었어. 으하하! 그 시절 나는 글쓰기 학원에 다닌 적도 없고 엄마나 오빠한테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었다. 책을 읽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썼다. 그런데 최우수상이라니. 그럼 재주가 전혀 없는 게 아니잖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뭐라도 찾아야 한다. 자꾸만 위축되는 내 소망의 등을 계속 다독여줄 뭔가를 찾아야 한다. 잘하고 있다고 계속해보라고 주눅 들지 말라고 격려해줄 뭔가가 필요하다. 마음에 드는 글 한 줄 못 쓰고 이대로 죽을 것 같은 공포감으로 잠 못 들 때가 있다. 그럴 땐 멱살이라도 잡아서 질질 끌고 갈 뭔가가 내 옆에 있어야 한다.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추억일 수도 있고 목표일 수도 있다. 또는…… 그래, 누렇게 바랜 상장일 수도 있다. 잘할 자신은 없지만 포기하고 싶지도 않아 매일 노트북을 열었다 닫았다 하던 끝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받았던 상장 한 장이 내 글쓰기 재주를 증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글쓰기 본능이 내 안에 있었을지 모른다. 겨울잠을 자는 뱀처럼 똬리를 틀고 봄을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기운차게 ‘불쑥’은 아니어도 은근히, 꾸준하게, 스멀스멀 땅 밖으로 기어 나올 봄을. 그러니까 글쓰기는 내 운명이야, 이런 운명론적 관점으로 나를 몰고 가는 거다. 그럼 기분이 좋아진다. 글이 쓰고 싶어진다.    

 

가끔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만나 따지고 싶다. ‘선생님! 그때 선생님이 나한테 상장을 주면서 애들한테 손뼉이라도 치게 했다면 말이에요, 내가 지금쯤 유명한 소설가가 되어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렇다면 내가 얼마나 선생님 이야기를 고맙게 하겠냔 말이에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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