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lja Jun 10. 2021

세상의 모든 글감

글 좀 잘 쓰고 싶은 중년 주부의 눈물 콧물 분투기 3

남편은 매년 회사에서 지원하는 건강검진을 무료로 받는다. 덩달아 나도 받는다. 가족은 2년마다 무료이기에 건강검진비를 내야 하는 해는 ‘머리를 조아리며’ 따라간다. 눼눼, 남편 잘 둔덕에 남편이 버는 돈으로 건강검진 받습니다요, 눼눼.    


나이가 들면 몸속 여기저기에서 이상 신호를 보낸다. 혹이 발견될 수도 있고 고지혈증이 생긴다든지 표재성 위염 같은 심각하지 않지만 신경 쓰고 지켜봐야 할 증상들이 나타난다. 무순 솟듯이 질 수 없다고 너도나도 고개를 삐죽삐죽 내민다. 나도 근 10년간 계속 갑상선, 자궁, 유방에 혹이 있고 빈혈은 심각하다는 검진 결과를 통보받았다. 때때로 부정맥도 있었다. 이런 심란한 검사 결과에도 딱히 크게 앓은 적이 없고 병이 불치나 난치로 발전하지도 않기에 걱정 없이 잘살고 있다.    


작년에는 남편에게 검사기관을 바꾸자고 얘기했다. 매년 같은 의료기관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재작년 초음파 받을 때 의사와 작은 마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음파 의사가 여러 명 있어서 검사 순서에 따라 매년 달라진다. 그 해는 젊은 여의사였다. 초음파 검사를 하다가 ‘어?’ 하고 인상을 쓰길래 ‘왜요? 뭔가 이상해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니요, 그건 아직 모르지요. 결과 나와봐야 알아요.’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그럼 왜 어? 하셨어요?’ 물었더니 ‘혹이 있어서요’ 하는 거다. 그래서 ‘알아요. 근데 많이 커졌나요?’ 했더니 ‘결과 보시면 알아요.’ 하면서 짜증을 냈다. 내가 ‘어? 하고 놀라시길래 걱정돼서 물어보는 것도 문제가 되는 건가요?’했더니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라고 쌀쌀맞게 답했다. 나는 ‘당연히 기분 나쁘지. 암!’이라고 속으로만 생각하였다. 하여튼 그 기관을 더 신뢰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가끔은 기관을 바꾸는 것도 좋다고 하길래.    


남편은 별말 없이 기관을 바꿔서 신청하였고 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건강검진을 받았다. 위 수면 내시경을 마지막으로 검진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었다. 막 나오려는데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고 했다. 상담? 여태껏 이런 일이 없었기에 내심 걱정을 하면서도 별일 없을 거란 근거 없는 느낌으로 상담실로 들어갔다. 나와 남편이 의자에 앉자 의사가 엑스레이 사진을 앞에 놓고 심각하게 물었다.

“술, 담배, 커피 하세요?”

“예? 술은 좀 마시지만……. 아 참, 커피도 마시죠.”

“식도와 위에 혹이 있어요. 식도의 혹은 떼어서 조직검사 들어갔고 위에 있는 혹은 검사 결과 나와봐야 알겠지만.”

“작년까지는 멀쩡했는데, 갑자기 혹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럼요. 하여튼 이제부터 술 마시지 마세요.”

“네에? 아니, 술이라 해봤자 맥주 한두 캔 마시는 건데.”

울컥해서 대답했다.

그랬더니 의사의 매정한 한 마디.

“술 하고 목숨하고 바꾸실래요?”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애썼다. 평소 가족이 조금만 아프다고 하면 병원 가보자, 약국 가보자, 검사해보자, 씨티 찍어보자 등 안달 떤다고 핀잔을 많이 듣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좀 담대해지고 싶었다. 더군다나 내 일로 호들갑을 피우는 게 좀 자존심 상한다고나 할까? 살아보니 인생에 넘지 못할 굴곡은 없기에 한편으로는 담담하기도 했다. 대신 ‘거봐, 내가 식스 센스가 발달했다고나 할까? 병원 바꾸길 잘했지?’라고 농담이나 해댔다. 사실 겉으로는 관심 없는 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집에 가자마자 몰래 (끝까지 대범한 척하고 싶었기에) 식도, 위 혹에 관해 인터넷을 뒤지리라 벼르고 있었다. 남편은 ‘괜찮을 거야’라는 한 마디뿐이었다. 속으로는 복잡하겠지만 그렇다고 죽을 날짜 받아놓은 아내 대하듯 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날 이후 나는 하루 24시간, 아니 (그 와중에도 잠은 잘 잤으니) 자는 시간 빼고는 식도, 위 혹만 생각했다. 죽을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암이라고 해도 초기일 거라고 애써 긍정적으로 마음먹기도 했다. 기분이 착잡했다.    


곰곰이 생각하면 죽는 건 그리 두렵지 않았다. 남는 사람이 문제였다. 우선 남편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남편은 철딱서니 없는 나와 결혼해서 얻은 거 없이 일만 했다. (자식은 얻었잖아?) 가치관이 다른 여자와 사는 피곤함과 황당함을 매년 갱신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란 여자 놀자, 남편이 원하는 현모양처의 꿈을 이루어줄 능력도 의지도 없다. 내가 지금 죽는다면 그 점이 정말로 미안해서 ‘나 죽거든 제발 당신이 원하는 현모양처와 재혼하시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싶을 지경이었다.     


다음은 아이가 걱정이었다. 스물세 살 성인이지만 아직도 내게는 아기 같은 아들. 그 아들을 두고 죽는다는 상상으로 마음이 아렸다. 나와 친구처럼 지내는 아이다. 친구 없는 엄마를 위해 이자카야에서 규동을 먹으며 시원한 생맥주를 함께 마셔주는 아들이다. 고깃집 항정살 구이가 땡길 때 콧소리 섞어가며 같이 가자고 조르면 ‘으이구, 나 귀찮게 하지 말고 친구 좀 사귀지 그래?’라고 핀잔을 주면서도 따라나선다. 있는 얘기 없는 얘기 서로 나누는 사이다. ‘엄마는 꼰대가 아니라서 좋아’라고 말해주는 아이. 내가 팔짱을 끼면 내 팔이 편하도록 가만히 자기 팔을 90도 구부려 자기 배에 붙이고 걷는 아이. 이런 아들을 두고 내가 어찌 눈을 감지? 갖가지 궁상맞은 생각으로 간만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검사 결과는 나오기도 전에 극본 놀자, 연출 놀자, 주인공 놀자 드라마를 먼저 찍은 셈이다. 그것도 눈물, 콧물 흘리게 하는 슬픔과 감동의 드라마.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2주는 더디게 흘렀다. 김연수 작가가 소설 <7번 국도>에서 말한 ‘루프로서의 삶’, 시간이 폐쇄회로에 갇힌다는 그 느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끙끙거리며 검사 결과를 기다리다가 김연수의 소설을 생각하다가 다시 검사 결과를 기다리다가 또 인터넷 검색창에 식도, 위 혹이라는 단어도 쓰다가 다시 검사 결과를 기다리다가…….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글감. 내게도 좀 쓸만한 글감이 생겼다는, 아주 영악하면서도 실용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 죽기 전 불후의 명작을 남기라는 운명의 계시일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도 했다. 그러니까 극본 놀자, 연출 놀자, 주인공 놀자의 감동 짜내는 낯익은 드라마를 한 편 더 찍은 것이다. 검사 결과가 안 좋아 오랫동안 투병을 해야 한다면, 나는 병상 에세이를 쓰려고 마음먹었다. 아, 인생 막판에 큰 거 하나 건졌군. 나도 이제 삶의 고난을 극적으로 헤쳐나가는 한 편의 감성 에세이를 쓸 수 있다는 묘한 충만감이 생겼다. 그리하여 식도와 위의 종양이 어쩌면 이상의 결핵 같은 고흐의 조울증 같은 랭보의 무릎 병 같은 천재의 징표가 아닐까 하는, 기분은 좋지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킥킥거렸다.     


그런데 글감에 대해 가만히 이런저런 상념에 젖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기보다 이런 내 모습이 한심스러웠다. 꼭 아프고 죽어야지만 글을 잘 쓸 수 있는 거야? 내가 그동안 글감이 없어서 글을 못 썼나?


따지고 보면 글감은 어디에나 있다. 감당하기 힘든 상실이라든지 슬픔이라든지 아니면 더할 수 없는 행복 같은 어떤 격랑의 감정을 일으키는 사건만이 글감은 아닐 터이다. 지금 내 옆에 몸을 꾸부린 채 색색거리며 잠들어있는 강아지에게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게 할 무한 정서의 실마리가 잠재한다. 언젠가 발 편한 운동화를 신었는데도 아차 하고 발을 접질렸을 때, 이렇게 나이를 먹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 한쪽이 저렸다. 그렇게 겪는 소소한 일상조차도 가까이 들여다보고 세심하게 살펴보면 모니터에서 끝없이 깜박이는 커서를 글로 채울 이야기가 숨어 있다. 무감하게 지나가는 작은 일상을 바라보며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작은 일렁임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그 작은 일렁임을 나만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다면.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본다면 내가 풀어놓은 그 언어로 다만 몇 명의 독자에게라도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나는 이 나이에 이 늦은 나이에 글을 쓰겠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이 책 저책 뒤적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테다. 독자가 읽고 나서 오랫동안 잊을 수 없는 글을 내 손으로 쓸 수만 있다면 그 일은 수고가 아니라 즐거움이다. 나는 지금 꽃잎에 떨어질 듯 매달린 물방울 하나조차도 눈에 담아 그 영롱함을 나만의 언어로 품을 수 있는 글쓰기 삶을 바라고 있다. 그런 글쓰기 재주를 간절히 원한다.    


참, 검사 결과는 허무하게도, 아니지 다행스럽게도 별 탈 없는 혹이었다. 식도의 혹은 이미 떼어냈고, 위에 있는 혹은 건강검진 시마다 크기만 잘 관찰하면 된다고 했다. 대박 작품의 기회를 놓쳐 좀 아쉽기는 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아주 잠깐, 5초 정도 아쉬워했고 나머지는 내내 좋았다. 안도했다. 


그나저나 식도와 위에 혹이 있다는 데도 글감 생각을 했으니 내가 얼마나 글쓰기에 빠졌는지 알만했다. 나도 이러는 내가 버겁지만, 여전히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글감을 찾아 오감을 곤두세운다.

매거진의 이전글 뭐라도 찾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