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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lja Jun 22. 2021

작은 아씨들-그 뒷 이야기 3

작은 신사들 (by 루이자 메이 올콧)

  저녁 시간 후에 사내아이들이 좀 더 ‘확실하게 뚱땅거리며 놀기’ 위해 교실에 모였을 때 조가 바이올린을 들고 나타났다. 남편에게 뭐라고 한마디 하더니 구석에 앉아 무척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광경을 쳐다보는 네트에게 다가갔다. 

  “자, 네트, 연주 좀 해볼래? 우리 악단에 바이올린 연주자가 필요하거든. 그리고 네가 그 일을 무척 잘할 것 같단다.” 

  조는 네트가 주저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네트는 오래된 바이올린을 단숨에 잡더니 아주 사랑스러운 손길로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그 모습만으로도 네트가 음악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좋아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최선을 다할게요.” 

이 말이 전부였다. 그러고 나서 소중한 음악을 다시 듣고 싶은 듯 간절한 모습으로 바이올린 활을 줄 위에 걸치고는 잡아당겼다. 

  교실은 왁자지껄 소란스러웠지만, 네트는 자신이 내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못 듣는 것 같았다. 모든 일을 잊고 기쁨에 넘쳐 부드럽게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그저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흑인 선율이었지만 그 음악은 소년들의 귀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아이들은 조용히 놀라움과 기쁨에 싸인 채 연주를 들으려 하던 놀이를 멈추었다. 소년들이 점점 가까이 몰려들었고 바에르 교수도 달려왔지만, 네트는 자신도 바이올린의 한 부분인 듯 몰입하여 주위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네트가 낡은 바이올린을 껴안는 순간 눈은 빛나고 볼은 발개졌다. 가녀린 손가락은 바이올린 위를 날았다. 바이올린을 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자신이 사랑하는 언어로 말을 전했다.

  네트가 연주를 멈추고 ‘최선을 다했어요. 마음에 드셨길 바라요.’라고 말하는 듯 주위를 조심스럽게 쳐다보자, 길에서 받던 동전 무더기보다도 훨씬 값진 사람들의 따뜻한 박수가 쏟아졌다. 

  “진짜로 최고의 연주였어.” 

네트를 자신의 후배로 점찍은 토미가 감격했다.

  “너는 우리 밴드에서 첫 번째 바이올린 연주가가 될 거야.” 

토미의 말이 맞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프란츠가 연이어 말했다.  

  조가 남편에게 속삭였다.

  “내 친구 테디가 맞았어. 저 아이에게는 뭔가가 있어.” 

바에르 교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네트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용기를 북돋웠다. 

  “정말 잘했다. 자, 이제 이리 와서 우리가 함께 노래할 수 있는 곡을 연주해보렴.”

  네트는 바에르 교수에 이끌려 피아노 옆 상석에 섰다. 가엾은 네트의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네트가 입은 추레한 옷은 아랑곳하지 않고 네트 주위로 모여들었다. 오히려 네트를 존경스럽게 쳐다보면서 그가 다시 연주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소년들은 네트가 알고 있는 곡을 골랐다. 한두 번 실수하고 나서 시작할 수 있었다. 곧이어 바이올린과 플루트, 피아노까지 더해 소년들의 합창 소리가 낡은 지붕 아래에 울려 퍼졌다. 마음이 여린 네트에게 그 감동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벅찼다. 노래가 끝나갈 즈음 네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바이올린을 내리더니 벽 쪽으로 돌아서서 어린아이처럼 흐느꼈다.

  “저런, 무슨 일이니?” 

자기 부츠로 박자를 맞추는 꼬마 로브를 말리면서도 전심을 다 해 노래를 불렀던 조가 놀라서 물었다.

  “모두가 정말 친절하고 또 그게 너무 좋아서요. 참을 수가 없어요” 

네트는 흐느끼며 말하느라 기침을 했고 결국에 숨이 찼다. 

  “이리 와라, 얘야. 침대에 누워 쉬어야겠다. 너무 고단해서 그래. 그리고 여기는 너한테 너무 시끄럽구나.” 

조는 부드럽게 달래며 네트가 혼자 조용히 울도록 자신의 응접실로 데리고 갔다. 

  그러고 나서 힘들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달라고 네트를 얼렀다. 그녀는 자신에게 낯설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귀를 기울였다.

  “얘야, 너는 이제 아버지와 어머니를 얻었단다. 그리고 여기가 네 집이야. 이제 슬펐던 지난 시간은 잊어버리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게 될 거야. 우리가 도울 수 있다면 네가 다시는 고통스럽게 살지 않을 거라 확신해. 바라건대, 너와 비슷한 소년들이 유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이 학교를 세운 거란다. 여기에서 너희들은 서로 도와가며 훌륭한 남자가 되는 방법을 배우지. 너는 원하는 만큼 음악을 배울 수 있어. 대신 우선 튼튼해져야 해. 이제 보모 아주머니에게로 가서 목욕하고 잠을 자자꾸나. 내일은 나와 함께 멋진 계획을 좀 세워보자.”

  네트는 조의 손을 꽉 잡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신 고마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조는 네트를 통통한 여자가 있는 큰 방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얼굴이 동그랗고 활기가 넘쳐 해님 같아 보이는 보모가 있었다. 쓰고 있는 모자의 주름 장식은 꼭 햇살처럼 보였다. 

  “이분은 험멜 아주머니야. 시원하게 목욕을 시켜주고 이발도 해주실 거야. 로브가 말한 대로 전부 다 편안하게 해 주실 거다. 저 안이 욕실이야. 우리는 토요일 밤마다 큰아이들이 노래를 끝내기 전에 어린아이들을 모두 씻기고 침대로 보낸단다. 그런데 지금은 너와 로브가 같이 씻을 거야.”

  조는 이렇게 말하면서 로브의 옷을 홱 벗기더니 유아 방과 연결된 작은 욕실에 있는 긴 욕조 안으로 아이를 텀벙 집어넣었다. 

  욕조가 두 개 있었다. 그 옆으로 발 씻는 대야, 세면대, 물 뿌리는 호스 등 청결에 관련한 도구들이 모두 있었다. 네트는 곧 다른 욕조에서 목욕을 즐겼다. 네트는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두 사람이 하는 행동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어린아이 네다섯 명을 문질러 닦고 깨끗한 잠옷을 입힌 후 침대에 눕혔다. 당연히 아이들은 목욕하는 동안 신나게 뛰며 소란을 피워 모두 한바탕 폭소를 터뜨렸다. 결국, 침대에 눕고서야 아이들은 시끌벅적했던 소동을 멈추었다. 

  그때쯤 네트는 목욕을 끝내고 담요를 두른 채 난로 옆으로 갔다. 보모 아주머니가 네트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동안 다른 소년의 무리가 목욕탕에 와서 문을 닫았다. 아이들은 파티하는 어린 고래 떼처럼 요란하게 물장구쳤다.

  “네트는 여기서 자는 게 낫겠어요. 그래야 밤에 기침이 심해서 힘들어하면 아주머니가 아마 씨 차를 잘 마실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으니까요” 

조는 활기 넘치는 새끼오리를 데리고 다니는 어미 오리처럼 정신없이 다니면서 부탁했다.

  험멜은 그 의견에 찬성했다. 그녀는 네트에게 플란넬 잠옷을 입힌 후 따뜻하고 달콤한 음료수를 주고 나서 방에 있는 작은 침대 세 개 중 하나를 골라 네트를 눕혔다. 네트는 이불에 둘둘 감겨 미라처럼 누워서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생각했다. 청결은 그 자체만으로도 새롭고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네트는 플란넬 가운에서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안락함을 느꼈다. ‘맛있는 음료수’ 한 모금을 마시자 친절한 말 한마디에 외로운 마음이 사그라들 듯 기침이 사르르 가라앉았다. 누군가 자신을 보살핀다는 느낌으로 집 잃은 네트에게 평범한 방이 천국처럼 보였다. 아늑한 꿈같았다. 네트는 눈을 떴을 때 모든 게 사라질까 봐 몇 번이고 눈을 감았다 떴다. 너무 기뻐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런데 사실 네트가 아무리 애를 썼어도 잘 수 없었을 것이다. 잠시 후 플럼필드의 독특한 행사 중 하나가 시작되어 깜짝 놀라고 감탄했기 때문이다. 

  물놀이가 순간적으로 잠잠하더니 갑자기 여기저기로 베개가 날아다녔다. 하얀 도깨비들이 침대 밖으로 뛰어나와 소동을 일으키고 베개를 던졌다. 위층 응접실 아래에 있는 방 몇 군데에서 전투가 치열했다. 쫓기는 전사가 은신처를 찾아 들어오느라 유아 방까지 전투에 휩싸였다. 아무도 이 난리법석을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누구도 금지하거나 놀라지도 않았다. 보모는 수건을 널러 갔고 조는 가장 완벽한 질서가 지배하는 듯 고요하게 깨끗한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는 방으로 들어온 당돌한 소년을 밖으로 쫓아내면서 그 아이가 자기에게 장난스럽게 던진 베개로 그를 공격했다.

  “다치지 않을까요?” 

실컷 웃으면서 누워있는 네트가 궁금해했다.

  “오, 얘야 아니란다! 우리는 토요일 밤에 항상 베개 싸움을 한 번 하도록 허락해. 내일이면 달라진단다. 아이들은 목욕하고 난 뒤에 더 열이 나거든. 나도 베개 싸움을 좋아한단다.” 

조는 대답하고 다시 양말 열두 켤레를 바쁘게 갰다. 

  “와, 정말 멋진 학교다!” 

지켜보던 네트는 별안간 탄성을 질렀다. 

  “좀 이상한 학교지.” 

조가 소리 내어 웃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규칙을 너무 많이 정하거나 공부를 많이 시켜서 아이들을 비참하게 하고 싶지 않아. 나도 처음에는 잠옷 파티를 못 하게 했어. 하지만 웬걸, 소용이 없었단다. 스프링 달린 인형들을 상자 안에 눌러놓는 일보다 저 소년들을 침대에 눕혀 놓는 게 더 힘들었지 뭐니. 그래서 우리는 합의를 했지. 매주 토요일 밤 십오 분 동안 베개 싸움을 할 수 있게 허락한 거야. 그리고 그날 외에는 정한 시간에 제대로 취침하기로 약속했어. 약속대로 그 규칙을 한 번 시도해 보았더니 아주 잘 지켜지더구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즐거운 놀이도 없는 거지. 대신 약속을 잘 지키면 나는 그저 거울을 돌려놓고 램프를 안전한 장소로 옮긴 다음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만큼 소동을 부리도록 허락하는 거야.”

  “정말 훌륭한 계획이에요.” 

네트가 감탄했다. 그리고 그 전투에 끼고 싶었지만, 첫날밤이라 부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네트는 누워서 구경했다. 그 광경은 확실히 생동감이 넘쳤다. 

  토미 뱅스는 공격 부대를 이끌었다. 데미는 보기에도 끈덕진 용기로 자신의 방을 방어했다. 자신에게 날라 온 베개를 재빨리 뒤에다 모았다. 결국, 상대편의 탄약이 바닥났고 그들은 데미에게 돌진하여 자신들의 무기를 되찾으려고 했다. 가벼운 사고가 몇 번 있었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커다란 눈송이 같은 베개를 하늘로 휘두르면서 아주 쾌활하게 '퍽퍽' 치고받았다. 얼마 후 조가 손목시계를 보고 소리쳤다.

  “소년들, 싸움 종료. 사람 스프링 인형들, 모두 잠자리에 들 시간이야. 그렇지 않으면 벌칙을 받을 거다!” 

  “벌칙이 뭔데요?” 

아주 독특하면서도 공공심 강한 조 선생님의 말씀을 어기는 악동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몹시 궁금해 몸을 일으켜 앉으면서 네트가 물었다. 

  “다음 놀이 시간을 잃지. 나는 아이들에게 정리하라고 오 분을 줘. 그러고 나서 전등을 끄고 정리된 상태를 기다려. 아이들은 훌륭하게도 약속을 지킨단다.” 

조가 대답했다.

  확실히 전투는 시작할 때만큼이나 갑자기 끝났다. 데미가 퇴각하는 적에게 일곱 번째 베개를 던지자 아이들은 다음 전투를 예고하는 한두 마디 경고의 말과 마지막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게 질서 정연했다. 가끔 낄낄거리는 웃음소리와 참을 수 없는 속삭임이 들렸을 뿐, 아무도 토요일 밤 놀이 후 찾아온 고요를 깨뜨리지 않았다. 조는 네트의 볼에 입을 맞추고 아이가 플럼필드 생활의 행복한 꿈을 꾸도록 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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