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에서 열여덟
제 첫 연애는 중학생 때였어요.
영국 작가 돌리 앨더튼에게 MSN이 있었다면, 제게는 버디버디가 있었습니다.
일찍이 버디버디로 사귀었던 몇몇을 제외하면, 실제로 얼굴을 보고 사귄 건 T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그를, 제 첫 연애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중2 때 우리 학교로 전학을 온 T.
교환교수로 가신 아빠를 따라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했습니다. 빅뱅 스타일이 전국을 강타하던 때, 그 친구는 슬림한 핏의 카라티의 깃을 세워 입었어요.
지금 보면 다소 유난했지만, 중학생 제 눈에는 댄디맨처럼 보였죠.
첫 데이트로 간 영화관에서
제가 자막이 안 보이는 자리에 앉자 T가 저와 자리를 바꿔줬어요.
자막을 안 봐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구나.. 뭐 그런 거.
그 순간부터 그 친구가 다르게 느껴졌어요.
전 그렇게 영어 잘하는 사람을 처음 봤거든요.
T는 전학 오자마자 몇 여학생들의 관심을 샀고, 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단지, 저는 그들보다 조금 더 빨랐을 뿐이었어요.
쉬는 시간 뒷문에 서있던 그 애에게 수학 익힘책을 빌려달라고 말을 건 기억이 납니다.
모르는 사이였으니, 내가 누구인지 적은 작은 쪽지를 끼워뒀어요.
이때도 그랬듯, 지금까지 모든 연애의 시작은 제가 항상 주도했어요. 가만히 기다린 적은 없었어요.
우리는 첫 연애임에도
단 한 번도 헤어지지 않고 3년을 만났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은 흐리지만
T와의 관계에서 남은 건 이상적인 연애관을 세워나간 일이에요.
연애가 무엇인지에 대한 '감각'을 얻었어요.
누군가 나를 아끼고 배려해 주는 모습을
처음 경험하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구나—를 배웠습니다.
그때부터 제 취향도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감 있고, 세련되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에게 끌리기 시작했어요.
미국에 대한 동경은 점점 깊어졌고, 그 문화에 익숙한 것조차 괜히 멋져 보였어요.
크리스마스엔 아웃백을 가고, 당시 한국에 처음 들어왔던 타코벨도 먹었습니다.
아마 해외 경험에서 오는, 특유의 자유롭고 세련된 분위기를 동경했던 것 같아요.
추울 땐 옷을 벗어주고,
문을 항상 잡아주고,
하루도 안 빼먹고 집을 매일 데려다주던
열여섯 그 친구.
지금 생각해도 꽤 근사한 남자친구였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센스 있던 그 친구가
크리스마스에 선물해 준 미스 디올 블루밍 부케는 제 첫 향수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그런 플로럴 한 향기를 쓰지 않지만
그 아이에게 열일곱 살의 저는 그런 향기가 어울리는 사람이었을까— 궁금해요.
제 아이가 첫 연애를 한다면, 그런 친구를 만나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면, 나를 이렇게 소중히 여겨 줄 수 있구나, '
그런 사랑의 감각을 처음 알려 주는 사람 말이에요.
좋은 기억으로 남아준 첫 연애 덕분에,
첫 단추를 잘 꿸 수 있어 T에게 참 고맙습니다.
3년을 만나 고등학교 2학년이 된 T가 자기에게 목표가 생겼다며 이별을 고했습니다.
첫 연애였기에, 저는 헤어짐을 상상해 본 적도 없었는데요. T는 연세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헤어져야 하는 이유로는 와닿지 않았지만,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던 저는 그를 응원하기로 했습니다.
동시에 나 또한 열심히 해 이화여대에 가겠노라 다짐했어요.
그리고 다시 신촌에서 만날 우리를 생각하니,
이별도 슬프지 않았습니다.
…T에게 연락이 오기 전까지요.
사실은, 우리 관계에 권태를 느꼈었노라 말했어요.
물론 고등학생이 "권태"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을 거예요. 특히나 T는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내서인지 어휘력이 그렇게 좋지 않았거든요.
‘긴가민가’를 ‘민가민가’라고 했던 귀여운 말실수가 기억나요.
아무튼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그 말이 꼭 굳이 제게 상처를 주려는 것처럼 여겨졌거든요.
그럴 줄은 몰랐다는 생각에 저는 처음으로 사랑에 배신을 느꼈습니다.
그런 거라면 차라리 말하지 말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제가 알고 있던 제 남자친구 같지 않았어요.
헤어지고 난 후, 저는 복수라도 하듯
목표한 대학에 꼭 붙고 말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눈 밑에 점을 찍지는 않았지만, 마음만큼은 못지않았습니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특정 학교를 목표로 한 적이 없었어요.
저희 엄마는 "서울에 있으면 서울대"라고 늘 말씀하셨거든요.
그래서 서울에 있는 대학이면 다 좋겠거니 했어요.
그런 제가 T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 친구에게 차이지 않았더라면.
아마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열정을 불태웠던 10대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비록 그 목표가 "연세대 다니는 멋진 오빠랑 사귀기"였을지언정 요.
다소 유치했지만 그만큼 간절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부모님도, 선생님도 하지 못하셨던 역할을 사랑이 해주었습니다.
첫 이별은 많이 힘들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대입이라는 목표가 있어서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 시절에 읽었던 한 문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처음 사랑을 잃은 마음은 마치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의 마음과 같다."
속절없던 제 슬픔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 그래서 이렇게 아프구나. 그제야 마음을 놓고 슬퍼했던 기억이 납니다.
T를 믿고 좋아했던 만큼, 제 스스로를 밀어세웠던 수험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목표하던 대학교에 붙었고 처음으로 이뤄낸 성취는 달콤했습니다.
모든 게 떠나도 내가 이룬 것은 내 곁에 있다는 걸 어렴풋이 배웠어요.
그리고 그 친구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신촌에서 만날 수 없었어요.
세련되고 스마트하다고 느꼈던 모습은,
10대의 기준이었을까요.
아니면, 제가 더 이상 그를 좋아하지 않아서일까요.
어른이 된 그 친구는 내가 상상했던 만큼 멋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꿈꾸던 이상적인 모습과 달랐고요.
그때, 저는 그 친구도 저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가 더 이상 내가 바라보던 모습이 아니었을 때,
그제야 제 첫 연애를 놓아줄 수 있었습니다.
제 성장의 기록이 목적이니만큼 사진을 하나씩 첨부해보려 합니다. 가능하다면, 그 시절 함께했던 상대가 찍어준 사진으로요. 다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