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에서 스물셋
대학에 입학했을적 첫인상이 차가워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내심 그 말이 꼭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땐 시크하다는 말이 한창 유행이었고,
저도 원서 전공책을 품에 안고 다니는 새내기이고 싶었으니까요.
제가 신입생이던 그 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라는 카피에 설레었고,
어딜가도 <벚꽃엔딩>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설익고 뾰족했던 제 20대 초반을 말랑하게 당도 깊게 만들어 준 사람이 있었어요.
입학과 동시에 미팅도 소개팅도 열심히 나갔지만,
정작 오랜 연인이 될 R을 만난 건 채 중간고사가 시작되기도 전이었어요.
만나는 내내 "너 때문에 소개팅, 미팅을 내 계획만큼 못했다."며 볼멘 소리를 하곤 했습니다.
당시엔 정말 진심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냥 웃음이나요.
그런 건 마음만 먹으면, 한트럭도 채울 수 있는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관계는 정말 너무나도 귀하다는걸 그땐 몰랐습니다.
그 후 같이 보낸 시간과 그 나날들을 통해, 그리고 이별 후 저는 그 소중함을 천천히 배워나갔습니다.
대학동기와 막걸리를 마시러 신촌 뒷골목을 걷고 있을때, 어떤 남학생이 저희에게 다가왔습니다.
연세대학교 농구동아리에서 일일주점을 하고 있으니 방문해달라는 이야기였어요.
그다지 흥미로운 제안은 아니었지만, 옆에 있던 친구가 농구를 좋아했어요. 게다가 연대에 꼭 가고싶었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갔죠.
신촌의 보통 술집들이 그렇듯 어둡고 눅눅하고 지하에 있는 가게였습니다.
자의로는 찾아가지 않을 법한 그런 가게이니 오히려 대관으로는 딱이었습니다.
셋이 앉아있으니 R이 아는 체를 하며 다가와 앉았고 잠시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일어났습니다.
머리가 작아 몰랐는데 일어서보니 키가 크고 훤칠하더라고요.
그렇지만 그 당시에 제가 좋아했던 세련된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조던 후드에 커다란 나이키 백팩을 둘러멘, 오히려 투박하고 순수해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첫 생일에,
스타일을 바꿔주겠다며 당시 거금의 옷을 샀던 저.
평소 그의 스타일과 전혀 다른 어색할 만큼 딱 붙는 옷을 입고 이도저도 못하던 그가 생각납니다.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말해주고 싶어요.
꾸밈없는 네 스타일 사실은 정말 멋졌다고.
언제나 당당한 네 성격과 꼭 닮아 있었다고.
그리고 패션 과도기를 겪던, 우스꽝스럽던 제 모습부터 돌아보겠습니다.
처음에는 R을 그냥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모두 친구하기로 한거니까, 오빠라고 부르지도 않겠다던 제 객기에도 허허 웃으며 받아주던 성격 좋은 옆학교 친구.
그러다 우연한 대화에서 R의 이름이 툭 나왔습니다.
대학동기의 친구가 같은과에 재학중인데 그 과에서 R이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한 과에서도 유명할만큼, 지금 생각하면 그는 누가봐도 멋있는 남학생이었어요.
당시 유행했던 '훈남'이라는 말과도 참 잘 어울리는.
그걸 인정해주면 내가 작아보일까봐.
저는 제 입으론 절대 그런 칭찬을 하지 않았지만요.
20대 전반에 걸친 제 고질적인 문제는 '쿨병'이었습니다.
근데 "가장 인기가 많다"라는 말 한마디에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사실은, 그전부터였던 거 같아요.
여행으로 갔던 제주에서, 그에게 줄 작은 무언가를 사왔던 기억.
스티커사진을 오려 제 얼굴까지 붙여 줬었죠.
말로는 친구라고 했지만, 저는 R을 먼저 좋아했음이 분명합니다.
"친구"에게 그런 행동을 할리는 없으니까요.
교내 트랙을 걷다가 왜 나에게 아직 사귀자고 하지 않냐고 물으니 당황하던 그가 생각납니다.
지가 친구로 지내자고 그렇게 해놓고.. 참, 저도 예나 지금이나 자기멋대로인 성격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연애로 우리는,
나의 대학교 1학년부터 졸업반까지. 그의 입대와 제대까지 온전히 함께 했어요.
실제로 저는 대학에 164cm로 입학해 2cm가량 컸는데 진정으로 함께 커간 셈입니다.
대학 첫 영어수업에서 막막한 에세이 과제를 받았을때도, 곁에는 영어 과제도 함께해주고,
토익책도 토플책도 사주며 "너는 꼭 교수가 될거같다"고 북돋아주던 그가 있었습니다.
키 얘기가 나와 말인데, 그 친구의 키는 185cm였습니다. 소파에 다리가 한참 삐져나온 채로 불편하게 잠들어 있던 R.
그게 제 첫 외박, 첫여행에 대한 기억입니다.
같은 침대를 쓰기엔 어리다고 생각했던 저.
정작 잠을 설친 것도 저였고, 그 말을 들은 그는 아무렇지 않게 소파에서 아침까지 쿨쿨자더라고요.
그후 그는 입대했고, 훈련소에 있는 동안 위해 매일 같이 편지를 썼어요.
논산시 연무읍 죽평리로 시작하던 그 주소는 아마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우리 사이를 가로 막는듯 했던 2년 간의 복무기간은
돌아보면 오히려 연애의 황금기였습니다.
그의 부대는 서울에 있었고,
그가 한가하던 시기는 오로지 복무중이었으니까요.
멋지게 입혀놔도 짧은 머리덕에 태가 안난다 생각했던저는, 그가 학교로 돌아오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리라 했습니다.
고무신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도 분명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간과한 사실 하나.
그는 너무나도 공사가 다망하다는 점 입니다.
얄밉게도, 하는 일마다 모두 생산적이고 훌륭했어요.
그러니 "가지말라"는 말조차 쉽게 꺼낼 수 없었습니다.
바로 옆학교에 다니니까 공강 시간 맞춰 밥이라도 먹고 싶었어요.
후문으로 가면 몇분 걸리지도 않았던 그 짧은 거리가 오히려 애석했습니다.
어쩜 그리 수업 전후로 그리 공부할게 많으신지...
그 후로 저는 앞으로 너무 성실하거나 야망이 가득한 사람은 만나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 영어가 네이티브인 그가 이젠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베이징에 교환학생을 가겠다는거 아니에요? 저는 그를 기다린걸 후회했습니다.
그 사람은 얄미울 정도로 발전만을 꿰했어요. 늘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했어요.
저는 그냥, 영화 한 편 보고 맥주 한 잔하며 잠시 멈춰 있어도 좋은, 그런 저녁을 원했고요.
내 마음이 떠나가는 것도 모르면서 중국어는 배워서 어디에 쓰려는건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