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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Apr 02. 2024

아빠와 나의 어색한 첫 돌봄의 시간

침대에서 30분 정도 미적거리다가 겨우 일어났다.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로 대충 옷도 꿰어 입었다. 지금 산책을 다녀와야 약속한 미팅 일정을 맞출 수 있다. 그래도 오늘은 뽀송이에게 재촉당하기 전에 일어났다는 데 묘한 기쁨을 느끼며 이제 막 현관문을 나서려는 참이었다.


전화기가 울렸다. 엄마다.


아빠가 밤새 설사를 하고 많이 지치신 거 같으니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라는 이야기였다. 엄마는 바로 어제 병원에 입원하셨다. 허리 아픈 것을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버티다가 정형외과에서 응급처치만 하고 또 버티기를 반복하며 몇 년을 보내셨다. 계속 참다가 디스크가 터지면 빼박 수술이라고 자식들이 겁을 주길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그럼 오히려 더 발끈해서 입을 막아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더 이상 본인이 힘들어서 안 되겠을 때가 돼서야 검사를 받고 집중치료를 위해 입원한 것이다. 의사 말로는 기본 2주를 잡는다는데 더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겨우겨우 입원해서 하루를 자고 엄마는 아빠가 병이 났다는 걸 알리러 내게 전화를 거셨다.


아빠가 어느 정도 상태일지 몰라서 그대로 부모님 집으로 차를 몰고 갔다. 다행히도 우리는 서로 1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아빠가 집을 나서기 전에 마주칠 수 있었다. 역시나 아빠는 혼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내가 운전도 못 할 줄 아냐? 병원 갔다가 일 보러로 가야 돼. 그냥 수액 좀 맞는 건데 뭘 따라와! 내가 환자냐?"


아빠는 충청도 사투리로 느긋하게 끄는 말투를 쓰고 있었지만 눈빛은 단호했다. 내 차를 얼른 지나쳐서 자기 차 운전석 옆에 서서는 손에 쥔 차키를 뺏기지 않으려는 듯이 꼭 쥐고 계셨다. 나는 몇 번이나 말려보다가 운전할 수 있다는 게 확실하다는 다짐을 받고 보내드렸다. 저 고집은 내가 안다. 내가 딱 그런 사람이니까. 나는 아빠를 가장 많이 닮은 자식이다.


불안하지만 그대로 보내드리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돌아오려면 세 시간은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닭장에 사료를 넣어주고 뽀송이랑 뒷산을 좀 걷고 마당에 풀을 뽑았다. 두 건의 일정을 양해를 얻어 내일로 미뤘다. 그러는 사이 엄마랑 남동생에게서 번갈아가며 전화가 왔다. 다들 아빠가 혼자 병원에 갔다는 데서 조용히 짧은 숨을 들이켜는 게 느껴졌다. 그 차키를 뺏어서 타지 그랬냐고 한마디를 더 하고 싶겠지만 그게 소용없음을 아니까 괜한 소리로 기분 상하게 할 필요 없다 싶어 말을 삼키는. 대략 그 정도의 감정들이 지나갔으리라. 나도 딱히 더 설명하지 않았다. 늦은 아침까지 먹고 설거지를 하고 강아지들에게 특식을 줬다. 오늘 밤은 집에 들어오지 못할 테니 맛있는 거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강아지들이 알턱은 없다. 지금은 맛있는 걸 먹어서 좋고 오늘 밤은 내내 영문도 모른채 나를 기다리리라.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 세탁기를 돌리고 간단히 청소를 하고 있자 아빠가 돌아오셨다. 손에는 자신이 먹을 죽까지 손수 사들고서. 지친 목소리지만 아까보다는 표정이 밝다. 내가 빨래를 널거라니까 이번에는 자신의 빨래도 어디 있는지 알려주셨다. 마음이 꽤 풀어지신 모양이다. 내가 빨래를 해놓겠다고 힘주어 대답하고 나니까 이제야 들어가신다. 지금은 입맛이 없어 죽은 먹지 않겠다고 하셨다. 나는 아빠가 쉬시는 동안 부엌 식탁에 내가 가져온 일감을 널어놓았다. 1시간 정도 지나니 아빠는 죽을 드시겠다며 내려오셔서 내가 타주는 따뜻한 차도 마시고 뉴스에 나오는 정치 이야기도 하고 그 이야기에 맞춘 내 변죽을 듣고 만족해서 다시 쉬러 올라가셨다. 그러면서 이제 가봐도 된다고 했지만 오늘밤은 여기서 잔다니 또 더 이상 가라고 하지 않았다. 아빠의 공간에 내가 들어와 있는 걸 받아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기신 게다.


이럴 때 아마 여동생이 봤다면 잔소리를 한바탕 퍼부었을 것이다. 그 애라면 억지로 차키를 뺏거나 하다못해 조수석에라도 앉아서 병원에 따라갔을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괜찮냐며 옆에 앉아 종알종알 아기 대하듯 돌볼 것이다. 그건 그 애라서 가능하다. 그게 그 애의 진심이라 아빠가 받아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아는 아빠는 자신이 아픈 것을 치부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마치 스스로 정글 한복판에 홀로 놓여 있는 듯 자신이 약하다는 걸 들키면 당장이라도 맹수의 공격을 받기라도 할 것처럼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프면 아무도 모르게 병원에 가고 치료를 받고 조용히 집에 들어와 아무도 모르 게 회복하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나 역시 코로나 주사를 맞고 후유증으로 며칠을 아팠을 때 남편을 낚시라도 가라고 내보냈다. 앓는 건 내가 감당할 내 몫일뿐이니 자꾸 걱정하고 말을 거는 가족이 있으면 나는 맘껏 아플 수가 없다. 이건 엄마랑 여동생은 죽어도 이해 못 할 성격이다.


그런 우리가 유일하게 다르게 대하는 인간이 있다. 배우자. 아빠는 엄마가 없으면 기가 죽은 것처럼 행동하시곤 했다. 엄마가 좀 아프기라도 할라치면 아빠가 먼저 앓아눕는 일도 다반사였다. 심지어는 맹장 수술한 엄마의 병원 침대에 아빠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누워계신 걸 보고 우리가 놀린 일도 있다. 엄마는 그 옆 소파에 앉아서 그저 혀를 찼다. 엄마는 아빠가 유일하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상대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에게는 그냥 부인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다. 그게 어떤 건지 깨달은 건 나도 결혼이란 걸 하고 나서다. 결혼을 끔찍하게도 싫어했던 내가 남편과 처음 만난 날 알았다. '이 사람 아니면 나는 정말 평생 결혼을 안 하겠구나!'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허술한 인간인지를 보여주는 데 일말의 망설임이 없을 때가 유일하게 남편과 둘이 있을 때다. 남편은 가끔 세상에서 네가 이런 사람인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놀라워하기도 하고 또 조금 뿌듯해하기도 한다. 어쨌든 나도 아빠처럼 남편이 일이 있어 집을 비운 날이면 기운이 없어지고 우울했다. 그렇다고 옆에 있을 때 종일 붙어 다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내 신체의 일부니 함께 호흡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그걸 깨닫고 나서 나는 엄마가 없으면 병이 나는 아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빠의 영역에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기 위해 나는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결국 한 집에서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마 저녁때가 되면 아빠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내려와서 아까 사 온 죽을 같이 먹고 함께 뉴스를 보며 잠깐 농담을 하고 주어진 일을 다 마쳤다는 표정으로 침실로 들어가실 것이다. 오늘 병원에 갔던 얘기는 엄마와 동생들에게 돌아가며 또 설명을 하고 잔소리를 들어야 할 테니 우리끼리는 굳이 주제로 올리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합의와 함께.


그렇게 우리는 남들이 보면 너무나 어색한 그러나 우리끼리는 편안한 첫 돌봄의 시간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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