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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Jul 22. 2023

[M]8. 새끼들 대신 이빨을 가져갔다.

주사를 맞고 정신을 잃었다. 이 감각을 안다. 이건 잠이 드는 것과는 다르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고 아무런 꿈도 꾸지 않지만 깨고 나면 미친 듯이 아프고 뱃속에 내 새끼들이 사라진다. 그런데 이 여자가 나를 데려간 곳이 딱 그런 냄새가 나는 곳이다. 그리고 나에게 정신을 잃는 주사를 놨다.


“제발. 당신까지 그러는 거야. 내 뱃속엔 아무것도 없어. 제발. 나한테 그러지 마. 정말이야.” 내가 사정을 했지만 얼마 못 가 나는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때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다. 흐릿한 눈앞에 그 여자 얼굴이 보였다. 내 입에는 하얀 김이 나는 게 씌워져 있다. 여자는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 꿈이 아니다. 내 이름도 계속 불러준다. 나는 심지어 여자의 무릎에 누워있다. 여자는 나를 두고 가지 않았다. 내 정신이 다 돌아오고 나자 여자는 다를 다시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자의 집으로. 여자의 침대가 있는 방으로. 내가 매일 누워서 자는 그 자리로. 그리고 한참 동안 내 앞에 누워서 계속 나를 보고 있다. 내 뱃속에 새끼들이 없는 걸 알면 화를 낼 줄 알았는데 화가 난 거 같지는 않다. 그보단 내 이빨이 이상해졌다. 혀로 이빨이랑 잇몸을 만져보니 몇 개가 없어졌다. 너무 아파서 그 자리를 피해 사료를 씹었었는데 그 자리에 이빨이 없다. 새끼들 말고 내 이빨을 가져갔나 보다. 이상하다. 그건 쓸데도 없을 텐데. 어쨌든 며칠 동안은 그 자리가 불편했지만 곧 괜찮아졌다. 자리가 비어서 불편한 건 지금까지 아팠던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여자가 계속 나만 보고 있었으니까 용서해 줄 수 있다. 푸들 꼬맹이가 아무리 애교를 떨어도 나만 보고 있다. 이건 좋은 일이다. 저 꼬맹이만 따돌릴 수 있으면 조금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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