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이르시길 40세에 이르면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고 했다. 이런 글을 볼 때마다 인간은 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연장되고 몸은 편해졌지만 정신적인 성숙은 전혀 이루지 못 한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만 그런가 싶기도 하고......
보통의 부모님들처럼 우리 부모님도 자식들이 공무원이나 선생님이 되길 바랐다. 그렇다고 특별히 강요한건 아니지만 조금 기대했고 속으로 많이 아쉬워하셨다. 세상 일에 치이던 어느 날 동생에게 푸념하 듯 '그때 아빠가 하라고 할 때 공무원 시험공부나 할 걸 그랬나 봐'라고 했더니 바로 돌아온 대답이 '그래, 언니 그때 했으면 될 수도 있었겠지. 그리고 지금 아마 울면서 출근하고 있을걸'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는 그런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없다. 맞다. 나는 같은 일을 오래 반복하지 못하는 특이체질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면 참 순하게 생겼다. 어떻게 보면 만만하게도 생겼다. 대부분의 일에 욕심이 없는데 관심이 많다. 그래서 얌전히 성실하게 잡음 없이 일하게 생겼는데 꼭 한 번씩 사고를 친다. 다른 거 다 뺏겨도 괜찮은데 꼭 하나 죽어도 양보 못 하고 죽기 살기로 고집을 부리는 일이 있다. 웬만한 욕심쟁이 이기주의자 다 받아주는데 식당 점원이나 편의점에서 젊은 아르바이트생에게 반말짓거리 하는 사람하고는 다음부터 눈도 안 마주치다가 서서히 손절한다. 이런 성격으로 공무원 조직에서 상명하복 하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동생 말대로 아침마다 울며 출근하거나 중간에 누구 들이받고 퇴사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흑화 해서 내가 제일 높은 자리 올라가서 다 뒤집어 버리겠다고 설쳤을지도.
한 분야에 오래 있으면 10년. 그 외엔 궁금하면 꼭 해봐야 하는 성격 상 여러 일을 거쳤다. 물론 나도 속으로 불안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이게 맞나? 이 일을 하게 되면 그전에 하던 일은 다 헛짓이 되는 거 아닐까? 그럼 인생을 낭비한 게 되는 걸까?
확실히 (만) 37세부터 어른들 말을 수긍하기 시작했던 거 같다. 그때 결혼했거든. 세상에 내가 결혼이란 걸 할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가족 포함 단 1명이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결혼 선언을 하면서 나는 세상 일에 '장담'이란 걸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받아들였다. 주변에서는 다들 축하보다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할 듯한 자세여서 한동안 내가 멀쩡하다는 걸 설명하느라 진을 뺏다.
그 후엔 시의원을 하면서 그동안 내가 거쳐온 직업과 경험들을 죄 다 꺼내서 쓰는 경험을 하게 됐다. 배우면 언젠가는 써먹는다는 어른들 말이 맞았다. 오히려 지방에서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본 경험이 나를 박학다식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그렇게 40대가 되니까 한 가지는 조금 나아졌다. 크게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 것이다. 세상 일에 통달하여 흔들림이 없는 정도까지는 불가능하고 그저 '지금, 전혀, 이해는 안되지만 지금, 당장, 내 눈에 안 보이는 이면이 있겠지' 정도는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세상이 꼭 '1 + 1 = 2'의 법칙으로만 흘러가지는 않고, 사실 이 '1'도 내 수준이 부족해서 1.0002 이거나 0.999934 인 차이점을 못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1'이 '1'인지조차 모르는데 답이 '2'가 되지 않는다고 화내면 무엇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