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맛있는 시금치가 욕을 먹지.
명절.
어릴 때는 좋았던 명절이 왜 그렇게 싫어졌는지 이제야 알겠다. 그 '입'들이 문제다.
눈이 너무 많이 온다고 하니, 아이를 집에 두고 갈까 고민하다가 수도권은 작은 눈발만 날리기에 같이 갔다.
날씨도 그렇고 해외 여행객이 많아서 그런지 차가 막히지 않는 경부고속도로. 멋지다.
그런데 하필 충청도가 폭설이다.
정말 흰 눈이 펑펑 쏟아졌다. 계속 내렸다.
앉아서 얻어먹기만 하는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눈이 많이 오니께 저 아랠랑 내려가지 말어. 위험햐."
"대전 이런덴 가지 말어. 위험햐."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폭우에도 폭설에도, 이번 명절에도. 시가는 위험하니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건만. 위험해도 천천히 조심히 가자며 달려왔건만. 친정은 가지 말란다. 눈 오는 천안은 시가라 안 위험하고, 대전은 친정이라 위험한 거구나.
이러니 시금치가 욕을 먹는다.
그 입이 문제다.
두 손은 놀고, 양반다리 하고 앉은 다리는 세울 줄도 모르고, 그 입은 쉴 새 없이 먹고 그렇게 떠드느라 바쁘다.
아들! 나중에 아무리 가깝게 살아도, 우리 날 궂은날엔 만나지 말자. 귀찮기도 하고 위험하잖아.
엄마는 진정성 있는 걸 좋아하는 거 알지?
맘은 집에 두고 몸만 오는 그런 거 하지 말자.
마음이랑 몸이 같이 움직일 수 있게
사람은 그렇게 투명하게 살아야 탈이 없단다.
입만 웃으면서 강요하는 눈빛으로. 유교도 불교도 아닌 연설 여럿 남자 어른들에게 듣느라 고생 많았어! 너희들 세대엔 아마도 없을 일들이지만, 어르신들이 의지하며 지내는 무언가도 그들에겐 필요한 거란다.
'너희들은 안 듣고 싶겠지만, 그래도 할아버지들은 지키고 싶은 전통이니 들어주면 좋겠구나.'라고 시작했더라면.
'너희들은 아니겠지만, 할아버지들도 엄마 아버지가 그립거든. 그래서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싶구나'라고 시작했더라면.
'날 궂은데 와줘서 고맙다. 보고 싶어서 오지 말란 소릴 못했구나. 친정 부모님도 그러할 테지. 조심히 다녀가렴' 했더라면.
그놈의 입이, 아니. 꼬인 마음이 문제구나.
우리는 좀 다르게,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