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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달걀 Sep 23. 2017

아이가 아프다

“엄마, 날씨가 너무 갑자기 추워졌어.”


그래. 새벽에 오들오들 떨며 추웠지. 이제 제법 가을다운가보다, 생각했다. 아이는 춥다고 옷을 주섬주섬 끼어입고 태권도 학원에 갔다고 말했다. 사무실은 더웠다. 혹시 아프니? 하고 물었을 때 아이는 아니라고 답했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일을 했다. 내가 느끼는 더위는 통유리로 모여 들어오는 햇볕 때문일거라고만 생각했다. 얼음을 넣은 레몬밤 티를 쪽쪽 빨아대며 일을 하는 동안, 아이는 오들오들 떨며 외로운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퇴근 후 내가 맞은 아이 얼굴은 창백했다. 누가봐도 아파요 라고 써 있는 얼굴인데.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다른 핑계를 대며 눈물을 글썽였다.


“엄마, 추운데 선생님이 에어컨을 안꺼.”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미련한 에미 같으니라고.

아플 것 같았을 때 체온 체크라도 부탁을 드렸어야했다. 내가 당장 달려올 수 없으니 누구에게라도 부탁을 했었어야 했다. 결국 아이는 밤새 끙끙 앓았다. 아구창이 생겨서 입이 아프다고 하던 말이 그제야 떠올랐다. 머리를 벽돌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굽신대며 회사에 사정을 읊고 연차를 냈다. 마라톤 회의가 다음주까지 있거늘. 면목이 없다. 남편은 당연히 내가 쉬겠거니 여기며 어떠한 질문도 없다. 애 아픈데 실갱이 말자. 일단 저 열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생각만 하자.

 아침에 먹은 약이 체온을 잠시 떨어뜨려줬다. 학교에 가서 운동회 연습은 꼭 해야 한다는 고지식한 아들래미는 조금이라도 추우면 바로 집에 오겠노라며 그 몸으로 학교를 갔다. 공원에서 아침운동을 하는 금요일이다. 나는, 집에서 아이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먹먹한 가슴으로 서 있다. 처음이었다. 아이가 수업시간에 뛰는 모습을 처음 엿보았다. 놀러온 이모마냥 그 기분을 스스로에게 설명하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다. 내가 그런 엄마라니......


모처럼 평일 날, 아이의 아침 시간에 내가 있었다. 엄마가 양치 도와주니 아침에도 입 안이 개운하다고 말하는 아들의 눈을 보면서 또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음이 울컥 했다. 집에 오면 밥 하기에 정신이 없었고, 먹이고나면 그대로 뻗는게 내 일상이었지. 해주는 것도 없이 이만큼 자라버린 아이에게 독립을 강조하며 너무 빨리 놓아버린 것들이 자책감으로 다가오면, 그제서야 오늘을 바라보고 또 한 번, 미래를 고민하게 된다.



언젠가는 그리워하게 될 오늘을, 또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다독인다. ‘다들 그렇게 열심히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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