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주는 마음 산책, 미술관 투어

웃고, 울며, 영감과 위로를 받은 작품과 작가들을 기록하다.

by 제니
“똑같은 것을 대해도 어떤 사람은 거기서 많은 것을 깨닫고 얻어내지만, 어떤 사람은 한두 가지밖에 얻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를 능력 차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우리는 어떤 대상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는 게 아니라 그것에 의해 촉발된 자기 안의 무엇인가를 뽑아내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풍요롭게 해 줄 대상을 찾지 말고, 나 스스로가 풍요로운 사람이 되려고 항상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의 능력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자 풍요로운 인생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_by 니체 <즐거운 학문> 中


미술관 데이트를 경험하며


매 달 2번의 미술관 데이트를 계획했고, 불규칙 하나 그러려고 노력해왔다.
갭이어 기간 동안에는 ‘직관의 힘’을 따르기로 했다. 언제, 어디를 갈지 정하기보다는, 그날그날 끌리는 날에, 생체리듬에 따라 가고 싶은 곳을 정해 무턱대고 찾아갔다. 어떤 날은 기분이 우울해서, 어떤 날은 기분이 좋아서, 또 어떤 날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등…. 그날그날만의 제각각 이유들에 어울리는 장소와 작품을 찾아다녔다.


‘찾아다녔다’라는 말이 힌트를 주는 게, 미술관 데이트를 하고 난 뒤에는 뭔가 그럴듯한 해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는 힌트, 느낌, 아이디어를 얻고 작가와의 동일시되는 경험을 통해 감정의 해소, 정화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


때론 작가의 말에 감동받기도 했고, 압도하는 느낌의 작품을 통해 내면의 위로를 받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작가의 도록을 구입해 집에 와서도 그 작가에 대해 지식을 넓혀갔고, 강렬한 느낌을 준 작품의 포스터나 엽서 등을 구입해 내 공간으로 작가를 데리고 오기도 했다.


혼자여서 즐거웠고, 혼자여서 충만했고, 혼자여서 고독했다.


내면의 강한 울림과 목마름을 채워준 나의 버킷리스트 6번, 미술관 투어는 ‘갭이어 프로젝트’ 이후에도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4월


#[예술의 전당]_자코메티전, 압도당하다


▷사진설명: 드디어 가게 된 '알베르토 자코메티 전' 기대 이상으로 많은 생각과 깊은 감동, 살아있는 감사함을 얻고 귀가했다. (이 에너지가 하루만 가라 제발~)



워킹맘 갭이어 프로젝트’를 4월부터 대략 시작해 오늘 첫 ‘미술관 데이트’를 했다. 곧 전시 마감이 되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전. 예전부터 보고 싶었으나 그 날이 오늘이었다.


쌀쌀한 날씨지만 아들 등원 후 게으름을 물리치고 일단 집을 나섰다. 3호선 남부터미널에서 걸어서 아이스라떼 한 잔 테이크아웃 한 뒤, 11시 30분에 김찬용 도슨트 해설을 기다리며 입장권을 끊었다. 차분하면서도 유머감각 돋는 도슨트분의 설명으로 일단 사전 지식을 좀 쌓고 다시 천천히 감상을 했다. 사실 얼마 전까지 자코메티가 누군지도 몰랐다. 결혼 이후 미술, 예술 등에도 관심이 더욱 생겨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는데 자코메티도 누군가의 소개로 알게 된 것 같다. (요즘은 어떻게 알게 된지도 모르게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신기하면서도 두렵기도 하다. 길들여지는 것 같아서)


작년에 르꼬르뷔지에 건축전을 본 예술의 전당에 거의 1년 만에 다시 와본다. 같은 장소, 다른 전시. 아들 유치원 보내고, 남편 출근시키고 첫 자유를 누리러 왔다. 그런데 웬걸. 이미 예술의 전당에는 매우 많은 인파가 몰렸다. (도슨트 말에 의하며 작품 막바지에 이르러서 그런다고 한다.)


영어 유치원인지 초등 저학년인지 모를 아이들도 줄지어 보이고, 40대 이상 중, 고등학교 학부형으로 보이는 럭셔리 사모님들도 보이고, 간간히 양복 입은 남자분 들 몇 명, 학생 몇 명, 나처럼 혼자 온 여성 몇 명이 보였다.

작품을 보고, 해설을 보며(사실, 잘 알지 못하는 작품의 경우 디스플레이된 해설은 꽤나 큰 영향을 미친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1) 지금의 나 또한 누군가의 헌신


도슨트가 자코메티의 동생 디에고가 평생 헌신한 조력자라고 설명해줬다. 누군가의 헌신이 위대함을 만드는데 2018년 4월 10일 화요일, 오전 11시 30분에 이 자리에서 작품을 볼 수 있는 나 또한 ‘누군가의 헌신’으로 이 자리에 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잔잔해졌다.


거저 받고 나 스스로 됐다고 여겨왔지만, 실상은 많은 이들의 도움과 헌신, 배려와 사랑으로 내가 존재하리라.



2) 예술가의 여자들

예술가에게 있어서 ‘영감’은 중요한 요소 같다. 미술 작품이나 조각 등에 영감을 준 뮤즈들이 자주, 여러 명 등장하는 걸 보면, 예술 세계랑 ‘평범한 일상’과는 조금 반대 개념이 아닐까 한다. 뭔가를 창작한다는 게 쉽지 않고, 매번 다르게 해야 한다는 강박 속 ‘새로움’을 추구하는 건 어쩜 당연한지도.


나 또한, 마음속으로 예술가를 꿈꾸며 뭔가 한 건이라도 해보려고 안달 난 ‘자극 추구자’, ‘도전 중독자’ 일지도 모른다. 나의 뮤즈는 ‘새로운 경험’, ‘아이템’등.


두 번째 부인 이자벨은 남자를 삼키는 여자로 묘사돼 수많은 예술가를 사로잡은 사람이라 한다. 작품 속 사진에서 보니 매우 빼어난 초미녀는 아닌 듯했으나, 사람에게 중요한 건 역시 ‘매력’이라 다시 생각됐다. 네 번째 뮤즈가 예쁘긴 했다. 세 번째 뮤즈이자 아내가 바로 ‘아네트 자코메티’인데 22살 차이라고 한다. 말년에 속 좀 썩었겠지만 실속 있고 똑똑한 여자인 듯. 특별하고 싶었던 아네트. 자코메티가 “결혼은 항복이다.”라고 말했다는데 빵 터졌다. 묘한 동질감이랄까 ㅎㅎ



3) 상처로 얼룩진 사람들
자코메티는 상처 받은 20세기를 버텨낸 '시선'에 매료됐다고 한다. 마지막 도전인 로타르 3의 모델이 된 잘 나가는 사진작가였으나 곤두박질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작품을 보는데 뭔가 훅 올라온다. 눈빛 속에서 절망과 비애가 너무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눈 속에서 본 것은 그 남자일까 나일까. 미술의 힘이 이런 걸까. 나 같은 초보자도 훅훅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걸 보니 말이다.


“인간은 어느 날 갑자기 살아있는 게임을 이유 없이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욕망이 너의 눈을 가려 삶을 이끌었다면, 인생은 생각보다 허망하고 덧없는 '꿈'이었음을 탄식하리라,”

_by 자코메티



4) 걷어낼수록 본질을 볼 수 있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 보자마자 빠져드는 사람이 있다. 자코메티 또한 그러한데, 조각이나 예술성 등에 대한 평론을 비전문가인 내가 할 순 없지만 그의 ‘사상’과 ‘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요즘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과 유사한, ‘동시성’이 느껴졌달까. 미술가라면 사물을 타인들이 보낸 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보는 대로’ 표현해야 한다고 그가 선언했다.


나는 매우 소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다르게 살고 싶다’는 무의식적 욕망이 있었다. 나만의 세계관과 소신으로, 휩쓸리지 않고 내 ‘기준’으로 살고 싶다는 처절한 몸부림. 너무나 평범해 잘 드러나지 않는 존재감으로도, 내 내면에는 그러한 울림이 가득했다.


Lead D’ont follow’라는 예전 버그하우스 글귀를 참 좋아라 했고, 뭔가 ‘다름’, 일종의 ‘특별함’을 추구했다. 그런 나였기에 그의 생각에 젖어들 수밖에 없었다. 분명 내 안에 나도 모르는 ‘예술가성’이 잠들어 있을 것이라 여기며, ‘내가 보는 것’을 잘 느끼고 표현해야겠다는 확신을 다시 한번 얻었다.


5) 생명이란 외로운 것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감정은 ‘숙연함’, ‘초월’, ‘한계’, ‘인간’, ‘고독’, ‘애쓴다’, ‘처절함’, ‘응시’, ‘바로 서기’, ’찬란함’, ’ 서글픔’, ‘외로움’ 등이다 그 ‘외로움’에 대해 자코메티는 살아있는 것이라 말했다. 생명이란 본래 외로운 것. 그게 유한한 인간인가 보다.


"나는 날마다 진화하고, 밤이면 내가 아침보다 더 나아졌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매일 다르게 보게 되고, 또한 더없이 풍요롭게 보게 되죠.
내 눈엔 세상이 날마다 더 특별하고 더 흥미로워요"

_by 알베르토 자코메티 '죽음에 관한 성찰'인터뷰 중/ 1962년 안토니오 델 구에르지소


"나는 내가 매일매일 진전을 이룬다고 믿습니다."

_by 자코메티


그 성실함으로 후대에도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 거겠지. 나이가 들수록 비교, 경쟁보다는 ‘자기와의 약속’ ,’ 매일의 작은 진보’가 더 큰 힘을 준다. 하루하루 작은 성취가 중요한 때이다.



6) 형태가 아닌 기운을 그리는 예술가
즉, 인물 자체의 형태를 표현하기보다는 곧 그 인물을 둘러싼 특별한 '분위기'나 '기운'을 묘사하는 작업이었다. 고 작품에서 나와있는데 내가 꽂힌 단어는 ‘분위기’, ‘기운’이다.


어떤 존재나 형태를 그대로 표현하기보단 떠오르는 이미지, 단어, 추상적인 모호함이 더 끌린다. 나는 어떤 ‘분위기’, ‘기운’을 사람들에게 보일 것인가, 나는 타인의 어떤 분위기와 기운을 느낄 것인가.



7) 내면의 힘
자코메티는 피카소에게 압도당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고 성공과 그 사람 인격 자체는 별개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부분을 보면서 떠오르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20대는 야망의 화신으로 ‘성공’을 추구했으나 30대 중반이 넘어서니 추구해야 할 것이 ‘인격’이며, 고매하고 높은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그처럼 대단할 수 없다. 물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으랴, 찾고 찾고 또 찾으면 흠이 당연히 보일 것이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의 공간, 인격, 성품’을 갖춘 사람들을 마주하자면 압도당하는 건 사실이다. 가벼운 내면을 가리기 위해 외면에 많은 투자를 하는 사람들 속 반짝반짝 빛이 나는 그들, 참으로 탐나고 닮고 싶기 때문이다.


자코메티와 피카소의 에피소드가 참 많았는데, 자코메티가 피카소를 두고 “그 친구는 예술가가 아닌 그냥 천재요”라고 말했던 부분과/ 열정과 욕망으로 채웠던 피카소 vs. 성찰과 반성으로 비웠던 자코메티 문구가 아주 대비됐다.


아직도 내 안에 가득한 열정과 욕망을, 이제는 성찰과 반성으로 비워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비울수록 커진다는데, 나는 아직도 무슨 욕심이 그리 많은지 이것저것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여전히.



8) 걸어가는 사람_보는 내내 압도당하다
장치 효과의 힘이 큰데, 마지막 부스 쪽 유명한 작품인 ‘걸어가는 사람’을 보는데 암막이 커진 어두운 공간 속 거대한 조각상, 눈과 시선을 먼저 보라고 친절히 쓰여있는 글귀를 따라 나도 조각과 시선을 맞추고 본다. 그리고 느낀다. 위아래, 좌우를 보며 앞, 뒤, 옆을 전체적으로 본다. 배경음악 또한 예술인데 마치 타종 울리는 절에 온 듯한 징 소리, 어두움, 청동조각, 삼 박자가 고루 어우러져 순간적으로 눈물이 핑 돌았다. 뻥치는 게 아닌, 내 인생 최초로 느껴지는 묘한 감정이었다.


동시대를 살면서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묘한 연대감. 누구에게나 삶은 살아갈수록 벅차고 견뎌야 할 그런 것임을 서른여섯이 되어서야 실감한다. 이상적으로 추구하던 ‘행복’과 ‘즐거움’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것이 바로 삶이라는 것. 그리고 어깨에 많은 짐들을 지고 꾸준히,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 것임을.


때론 감당할 수 없는 큰 슬픔에 다리가 접히고, 어금니를 꽉 깨물어야 할 만큼 극심한 고통이 찾아오겠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시선을 마주하고 걸어 나가야 함을 느낀다. 보이는 건 좋아 보여도 인생은 누구에게나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리움미술관]_오늘은 내가 한남동 사모님

▷사진설명_리움 미술관을 가다. 근,현대의 작품들이 두루두루 있기에 안 가본 분들은 가볼 만 하다



‘갭이어 프로젝트’의 버킷리스트 6번의 <미술관 데이트>를 실행하기 위해 아들 등원시킨 후 갑자기 옷을 갈아입고, 혼수로 받은 유일한 샤넬백을 들고 무작정 나왔다.


그래 오늘 갈 곳은 ‘리움 미술관’이다. 한남동이 가까워 노선을 찾아본 뒤 버스를 타고 한강진역 블루스퀘어에서 내렸다. 표지판을 따라서 올라가니 목적지가 보인다. ‘리움 미술관’은 한 14년 전 대학생 시절 절친과 겨울에 온 기억이 난다. 어그부츠가 유행이던 그때 어그부츠에 갈색 골덴치마를 입었던 모습이 희미하게 그려졌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꿈 많던 싱그러운 소녀는 이제 약간 억척스러움이 절로 생긴 5세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내 맘속 ‘소녀’는 그대로인데 말이다.

선글라스를 끼고, 우아하게 걷고 싶었으나 다리가 아팠다. 도슨트 시간이 10시 30분이라 허겁지겁 달려왔는데 다행히 아직 시작 전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직장인 미술 동호회 분들과 함께 투어를 시작했다. 고 미술관부터 시작해 현대미술을 쭉 둘러봤다.


엉겁결에 조선시대의 백자부터 시작해 김홍도 등 화가의 작품, 불교미술을 거쳐 현대미술로 이동했다. 백자를 보며 느낀 건, 우아하고 절제미의 균형이 대단히 아름답다는 점이다. 오늘 챙겨 온 책이 <우아함의 기술>이라는 책인데 이것도 동시성의 법칙인지 뭔가 잘 맞아떨어진다.


현대미술을 설명하는 도슨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술은 현실 부정 때 정신에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맞는 것 같다. 이미 지금 충분히 살만한 사람들은 즐겁게 여흥을 즐기느라 정신이 없겠지. 현실이 고통스럽고 원치 않는 상황에서 각자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가 탐닉하기 시작한다. 때론 예술이 되기도 하고, 심리치유 명상과 같은 내면에 집중하기도 한다. 나는 요즘 둘 다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이런 시간들은 정반합을 유지하며 점점 성장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힘이 있기에 그저 묵묵히 이 시간을 견디면 된다. 언젠간, 예술 따윈 개나 주라지 하며 룰루랄라 신나게 취해 살 날도 멀지 않았음을. 이런 고요한 내적 시간을 충분히 즐기자.


사람 없는 미술관 도슨트 투어는 만원의 행복을 주기에 충분했다.

▷사진설명_올프리마, 내부 인테리어, 의자패턴, 맛있는 라떼와 취향저격 음악까지 모두 마음에 든다. 단, 머니머니해도 money가 좀 있어야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도슨트 투어를 마치기 12시 30분 경이되었다. 나는 2시 50분 신데렐라이기에, 이 한남동 사모님 놀이를 마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리움 미술관 바로 앞 ‘올프리마’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햇살이 눈부실 정도로 강렬한 이날은 테라스에 앉기 딱 좋은 날이다. 혼자 오기도 했고 햇빛도 좋아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유명하다는 오렌지 라떼와 오픈 샌드위치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독서를 했다. 우아한 척 책을 보고 있는데 뒷목이 후끈거렸다. 태양이 너무 강렬히 뒷목을 태우고 있었는데 선크림도 안 바르고 나왔기에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허나, 나는 오늘 일일 한남동 사모님이 아니겠는가. 사실 진짜 한남동 사모님들은 운동복에 개를 데리고 돌아다니겠지. 알게 뭐람. 내가 사는 동네도 아니고 현실 속 나는 2시 50분 신데렐라 인걸.


라떼를 마시고 있는데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혼자서 웃었다. 아침에 등원 전쟁을 벌이며 대충 물세수만 하고 겨우 유치원을 데려다주는 나인데,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블랙 정장 원피스에 스타킹을 신고, 풀 메이크업에 백을 들고 힐을 신고 나왔으니 말이다. 목적지도, 약속도 없는 그저 나를 위한 시간을 이렇게 아름답게 치장하고 나오니 왠지 대접받는 느낌이다.

출근하지 않는 이상 망가져도 욕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옷과 모습으로 있기에 이런 기분은 거의 두 달 만이다. 아직 내가 ‘여성’으로서 존재한다는 안도감과, 꾸밀수록 예뻐진다는 사실,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 나를 바라볼 때의 뿌듯한 기분이 드는 걸 보니 ‘책 속’ 이야기가 맞다.


우아한 여성의 팁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와 화장 및 단장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달라진다는 그 말. 세상에는 못생긴 여자는 없다, 다만 게으른 여자만 있는 법이라는 그 말을.


등, 하원 밖에 나갈 일이 없는 이런 시간이라도 좀 더 부지런히 나를 가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계를 보니 2시가 넘었다. 서둘러 일어나 총총걸음으로 버스를 타러 간다.


나는 이제 변신하러 간다. 에코 백을 들고 반팔 셔츠와 편한 바지를 입는 하원 룩으로~~~ 고고고!





5월


#[D뮤지엄]_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사진설명_당당한 아름다움.


오늘, 아들이 처음으로 이천으로 소풍을 가는 날이라 4시 20분까지 유치원으로 복귀하는 일정이었다. 평소 2시 50분 신데렐라였지만, 오늘 1시간 30분이 더 주어졌다는 생각에 뭐라도 해야만 했다.



10~12시까지 하남으로 운전연수를 다녀온 뒤 급하게 옷을 갈아 입고 문 밖을 나왔다. 원래 목적지는 부암동 ‘환기미술관’이었으나 (5/6일까지 김환기, 색채의 미학이 전시된다고 해서 가보고 싶었다.) 차가 밀려 시간 여유가 없을 것 같아 급히 ‘한남동’으로 목적지를 바꾸고 110A번 버스를 탔다.


블루스퀘어 한강진역 정거장에서 내린 뒤 그저 걸었다. 그 길은 싱그러운 녹색이 어찌나 화려하고 빛나는지, 운동화를 신고 있었으면 남산 둘레길로 빠질 뻔했다. 정처 없이 쭉 걷다가 어느 음식점에 들어가 혼밥을 했다. ‘수란을 얹은 김치 베이컨 볶음밥’을 시켰다. 마침 식사 시간이라 혼밥 족은 나밖에 없었다. 얼굴 두꺼운 아줌마라고 자부하지만, 빨리 먹고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수란은 내 눈에는 계란 후라이로 보였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이태원 쪽으로 걸었다. 멋 낸다고 조금 높은 굽을 신었더니 다리가 조금 아파온다. 하지만, 오늘 이 구역 ‘미친년’은 나인걸 하고 씩씩하게 걷는다. 걷다 보며 생각이 난다. 오늘은 ‘경력단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단절’이라 하면 뭔가 수동적 느낌을 주는데 ‘갭이어’는 능동적이다. 스스로 선택해서 ‘주어진 시간’인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처럼, 현실을 부정하거나 비관하기보단, 주어진 현실 속 가장 좋은 모습으로 마중하면 좋겠다.



이 나라, 시스템, 제도를 바꿀 수 없다는 내 마음, 관점, 시간 사용 등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바꿔야 한다. 그 또한 자녀 유무, 자녀 수, 경제적 상황, 나이, 성향, 미래계획 등 여러 가지 요소를 복합적으로 시뮬레이션해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 ‘수용’이라는 게 참 힘들고 어려운 게, 어떤 현실을 마주할 때면 일단 ‘부정’하고 ‘원망’하고 싶어 진다. 00할 수 없게 만드는 ‘외부요인’에 집중하게 되면,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고 입 꼬리는 내려가고 사람들은 서서히 피할 것이다. 우리 다음 세대에는 바뀌길 소망하면서 지금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상황’을 만들어 ‘다른 관점’으로 스스로 선택하면 되는 거다.


갭이어 프로젝트를 한답시고 뭔가 쓰는 나를 보고 남편은 뭐하나 싶었을 거다.

사실, ‘육아’라는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 ‘엄마’라는 보편적 이름에 숟가락이라도 얹기 위해

‘약간의 도리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집으로 기어들어 왔는지도 모른다.



처음 한 달, 그리고 지금도 가끔은 휘청거리지만, 서서히 변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동안 나는 못 할 것 같다고 스스로 생각한 3대 과제인, 육아/살림/운전을 정복해 나가다 보니, 자신감이 생긴다. 사회생활 속 좋게 말하면 다듬어진 거고, 나쁘게 말하면 위축된 내 자아가, 본연의 ‘나’로 조금씩 회복되는 느낌이다.



다른 업종의 여러 회사를 경험하다 보니 ‘나’라는 사람의 호불호는 ‘상사’나 ‘책임자’의 성향에 따라서 다르게 평가받는 걸 느꼈다. 누군가의 성향이 ‘활력 있고 감정을 숨기지 않고 열의를 가지고 책임감 있고 진정성 있게 하는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이 평가자에 있을 경우 나는 ‘칭찬받고’ 흡족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대상이 된다. 반면에 차분하고, 지적이며, 신뢰를 주는 안정감 있는 모습을 선호하는 평가자의 눈에는 고장 난 기계처럼 ‘고쳐야 할’ 투성이의 존재가 된다.



그런 여러 잣대와 기준에 ‘나’를 맞추려 애를 쓸수록 ‘본연의 나’와 멀어지기에 내면의 갈등은 커져만 간다. 평가자의 스타일에 따라 달리 평가받는 나. 그건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호감을 얻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하던 행동들을 멈췄다.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이 ‘지금의 나’다. 그것이 잘 드러날 때 나는 가장 빛난다. 되고자 하는 롤모델의 모습을 연습하고 따라 하며 만들어진 그 어떤 모습보다도.


지난 10년(햇수로, 이직 중 텀, 중간 육아휴직 등 빼고)의 사회생활은 그것을 더욱 상기시켜줬다. 또한 조직에서 선호하는 인재가 반드시 옳으냐, 그것도 NO라는 답을 얻었다. 그것은 ‘조직 안에’ 있을 때 선호되는 유형인 거지, 그런 사람들이 옳고 그름의 기준은 아니다. 다양한 시대, 여러 개성이 모여 어우러질 때 시너지가 나는 법이지 획일적, 일률적으로 짜인 기준 안에, 바른 정답을 내는 게 다는 아닐 것이다.



나는 때론 엉뚱한 답변으로 ‘오답’ 아닌 ‘오답’을 써 내 혼이 났지만,

내 머릿속에는 암기로 달달 외운 틀에 박힌 뻔한 답은 없다.

비록 그 모습이 조직 속 그 누군가 에겐 빨간펜으로 엑스를 그을 모습으로 비치겠지만.



여러 생각들을 하며, 평일 낮 이태원을 배회하는데, 생각만큼 즐겁지는 않았다. 그건 내가 ‘가정’을 이뤘기 때문일 것이다. 뒤늦은 사춘기를 탓하며 ‘자체 갭이어’를 갖고 있지만, 유유히 배회하는 그 거리에서 문득 떠오르는 두 얼굴들, 남편 그리고 아들이다.


세상은 점점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지만, 더욱이 중요한 것은 ‘연합’, ‘하나 됨’이다. 그것의 시초가 바로 ‘가정’이다. 내가 지금의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건 역설적이게도 ‘가족’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간다.


“내가 누리고 있는, 비록 경력이 단절된 것이라 소리 지르고, 비난하고, 원망했던 그 상황이 참으로 감사하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것이구나.


나를 찾겠다고 나왔는데, ‘나’는 없어지고 ‘우리’로 채워진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여러 곳에서. 내가 ‘나’로 의미가 있기 위해선 ‘타자’가 필요하다.


책에서 본 내용이 마음속 깊이 다가온다. 이번 ‘갭이어 프로젝트’가 끝나면 ‘타인에게 행복주기 프로젝트’를 새롭게 시작하는 건 어떨까. 고마운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 전투적으로 싸워온 한 살 터울의 오빠,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많은 지인들.


‘함께’함의 가치는 군중 속에서 보다 ‘혼자’ 있어봐야 그 귀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다리가 아파 110A버스를 타고 다시 한남동으로 내려온다. 아직 2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기에 D뮤지엄으로 향한다.


우아하게 보이고 싶어 반팔 티셔츠에 스카프를 걸쳤다. 사진을 찍고 보니 나이 먹은 걸스가우트 가 거기 서 있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찍었다. 나이를 의식하지는 않지만, 하하호호 깔깔 거리며 전시를 구경하는 20대 초중 반의 싱그러운 얼굴은 앨범 속 안에 있다.


뭐든 ‘때’가 있구나. ‘찰나’, 지나가는 것, ‘시간’, 돌아오지 않는 것, 지금 이 시간도 얼마나 소중하고 귀할까. 5년, 10년 뒤 지금 이 사진을 보며 나는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때 참 싱그럽고 젊었구나.”

[전시 메모]

ㅡ세상의 나쁜 날씨는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날씨만 있을 뿐. 인생도, 감정도 그러하겠지.

ㅡ오늘 날씨는 어떠한가, 오늘 감정은 어떠한가. 날씨에 맞게 옷을 입고 목적지를 정하는 것처럼 우리네 감정 날씨에 따라 계획을 달리 해야겠다




#[국립현대미술관_덕수궁관]_내가 사랑한 미술관



오늘은 <미술관 데이트>를 할 겸 남편과 데이트도 하는 1석2조를 위해 장소를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잡았다. 시청 쪽에 직장이 있는 남편과 점심을 먹은 뒤 덕수궁 돌담길과 서울시립미술관을 산책했다. 평일 점심, 아이 없이 둘이 식사와 산책을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미술관 주간이어서 덕수궁 입장료 1,000원을 내면 미술관 입장료는 free였다. 요즘 관심 있는 근대미술의 작품들도 전시됐다고 들어 기대감을 가지고 들어갔다. 도슨트도 있었지만 그냥 혼자 유유자적하며 감상하고 싶었다. 자료집을 보고, 작품 앞에 서서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느낌을 마음속으담고, 작가의 의도도 생각해봤다.



약 100여 년 전에도 신여성, 쿨가이들이 존재했으며 대단한 작품을 남긴 분들이 많음에 놀라울 따름이다. 서양미술이나 현대미술 등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우리나라 근대미술도 눈여겨봐야겠다. 특히 김환기, 이응노 등의 작가에 관심이 가진다. 작품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같은 년도에 그려진 서로 다른 2개의 그림이었다.


▷사진설명_왼쪽 그림은 1934년, 오른쪽 그림은 1935년.


1934년도와 1935년도에 그려진 작품으로 이 그림을 멀리서 보며 동시대를 살아도 ‘어떻게’ 사는가는 그들이 살아온 환경에 따라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동시대를 다른 환경에서 산 그들은 서로의 삶을 일반화하며 각각의 ‘우주’로 삼겠지. 이 그림을 통해서도 많은 생각이 든다.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좌우 앞뒤를 돌아보고 다름을 받아들일 것 ‘한계’를 뛰어넘고 ‘편견’을 극복할 것




7월


#[환기미술관]


▷사진설명_김환기 작품이 계속 화제라, 드디어 가본 환기미술관. 이 때 전시중인 작품이 많지 않았고, 생각보다 김환기 작가의 작품은 많지 않아 조금은 실망했다.



어느덧 나까지 알아버린 작가, 김환기


왠지, 언젠가는 한 번 가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날을 고르다 선택된 7월 4일. 유난히 해가 좋은 여름날, 무작정 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김환기 작가의 작품도 인상적이지만 사실 더 끌리는 건 그의 배우자였던 김향안과의 스토리일지도 모른다. 이상과 김환기를 함께한 여자. 여자가 궁금했었다. 어떤 사상과 스토리가 있었을지 궁금했고 정확히는 모르나 부잣집 딸이었던 것 같다. 사랑의 열정으로 아무 계산 없이 온몸을 불사를 수 있는 건, 부잣집 딸들이 가능한 일이다. 어느 정도 ‘가난’이나 ‘고생’을 경험해본 이에게는 그런 무모함은 사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수필가 겸 미술평론가. 1930년대부터 문학활동을 하였고 1936년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과 결혼하였다. 이상이 폐결핵으로 사망한 이후 서양화가 김환기와 재혼하였으며 김환기 사후 남편의 유작을 돌보며 환기미술관을 설립하였다. 수필집 《파리》, 《우리끼리의 얘기》등을 남겼다.

-by [네이버 지식백과] 김향안 [金鄕岸] (두산백과)


내가 간 날은 전시 작품이 많지 않아 김환기 작가의 작품은 기본 작품 정도만 전시돼 있었다. 산턱이라 습한지 왕모기 두 세 방만 물려서 나왔다 전시가 없을 때 가면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 가게 된다면 특별전 등 전시가 많을 때 가기를 개인적으로 추천한다~


"사람은 꿈을 가진 채 무덤에 들어간다."

_by 1970 김환기
"작가가 늘 조심할 것은 상식적인 안목에 붙잡히는 것이다.
늘 새로운 눈으로, 처음 뜨는 눈으로 작품을 대할 것이다."

_by 김환기
"일이 잘 가는 셈. 자신을 가질 수 있는 공부를 하라. 그리고 자신을 가져라. 용감하라.

_by 김환기, 1968년 1월 25일





8월


#[본태뮤지엄]_jeju



맑은 하늘, 새소리, 구름이 인상적이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1) 자연 2) 작품 3) 건축이다.
인터넷 평에서 건축은 볼만한데 작품은 볼 게 없다고 해 큰 기대 안 했는데 참 좋다. 간혹 너무 좋다고 한 평도 있는데 아는 만큼 보이는 건가.


5~1 역순으로 보라는 안내에 따라 관람했다. 사진 촬영되는 곳은 3,4관.


4관은 <피안으로 가는 길의 동반자>가 전시 중인데 많지 않은 작품들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상여와 꼭두(저승 가는 길 외롭지 않게, 이승에서 누린 것이나 누리지 못한 것들을 장식하며, 꼭두각시가 '꼭두'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故노회찬 의원의 죽음도 그렇고 삶과 죽음, 겸허해진다.


조선시대 역시 신분제 사회라 모든 게 차이 났지만, 저승길만은 사랑으로 잘 가게 하는 마음만은 같았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노란 꼭두는 형제인데 왼쪽 울상은 동생이고 오른쪽 웃음상은 형이라고 한다. 유산 배분을 안 하고 돌아가셔서 장자상속 시대였던 당시 유산 전체를 받는 형과 동생의 모양이 다르다는 게 웃프다.




#[예술의 전당]_니키드생팔전_미즈다컬렉션



■유독, 세대를 뛰어넘어 여성 관람객이 많았던 전시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 갈등과 부적응은 나만 겪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음. 작가가 경험한 신경쇠약 까지는 아니더라도 내면의 침체와 하강이 반복되고 있다. 여성의 불안정한 내면과 양면성이 잘 표현됨.


■억압과 분노는 어떻게 표출되는가. 작가는 작품을 통해 표출했는데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해소하는가.


■시대가,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역할은 마녀가 됐다가 요부가 됐다가 성모 마리아가 됐다가 엄마와 아내가 된다. 이러니 신경쇠약이 안 오면 이상하지.


■미혼일 때는 몰랐다. (자화상)이라는 작품 속 작가의 부정적 자기 인식이 남 같지 않았다. Why??
싸워야 할 대상은 과연 외부의 적인가 내부의 적인가.


■그럼에도 관계와 우정 속 치유와 회복해나가는 모습에 대리만족을 함.


■도록과 포스터도 구매. 현실 타협 속 나를 지키는 소극적 방법.


■(종교의 속박은 가부장적이며 그 자체가 억압)이라는 '대성당' 작품 설명이 나를 강타했다. 지금까지 평등하고 가정적인 아빠 밑에서 자랐다고 생각했으나 늘 내면 갈등이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종교적 속박)때문이었구나. 두 가치의 충돌 속 치열한 싸움. 아, 그래서였구나.
도록을 산 뒤 요코의 일대기도 흥미로웠다. 비슷한 에너지에 끌린다고 하는데 이 전시가 그래서 내 흥미를 자극했구나.



<검은 반점>이라는 그림책을 발견하곤 끌리듯 구매했다.
우리 안의 검은 반점을 알게 되고, 엄마에게도 있음을 알게 된다. 같은 반점을 가진 사람에게 끌려서 결혼을 하고, 이유 없이 싫어지기도 한다. 그 반점은 나의 일부이기도, 전부이기도 하다. 그러다 우연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고유한 ‘반점’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는 이야기.



그림과 글이 나에게 울림을 줬다.


지금까지, 아니 35년을 <나만의 반점>이라 울부짖고 산 세월이 많은데, 이제야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반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면서 생각난 또 다른 책은 <엄마는 페미니트스>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검은 반점을 연상시킨 내용은 <차이>에 대한 내용이었다. ‘자신의 기준이나 경험을 절대로 일반화하지 말라고 가르쳐’라는 이 문장. 얼마나 오랜 세월은 ‘나만의 기준과 경험’을 잣대로 판단하고 행동해왔던가. 그다음, 내가 물려받은 수치심을 대물림 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 <해방>이라는 말이 반가웠다.


모두에게 ‘저마다의 반점’이 있다는 사실을 지각한 순간 나는 ‘해방’되었다.






9월


#[piknic]_류이치 사카모토 LIFE, L I F E



■새로운 자극, 소리와 화면에만 집중하는 신선함


■촬영 금지로 얻은 작품에 온전히 집중


■시간이 많다면 루프탑 등 빛을 맞고 시간 보내도 좋겠다. 난 아들 하원으로 서둘러 왔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삶이 무한하다 여긴다
모든건 정해진 수만큼 일어난다
극히 소수에 불과하지만
어린 시절의 오후를
얼마나 더 기억하게 될까?
어떤 오후는 당신의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날일 것이다
네다섯 번은 더 될지도 모른다
그보다 적을 수도 있겠지
꽉 찬 보름달을
얼마나 더 보게 될까?
어쩌면 스무 번,
모든 게 무한한 듯 보일지라도


ㅡ폴 보울스 (1910~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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