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울며, 영감과 위로를 받은 작품과 작가들을 기록하다.
“똑같은 것을 대해도 어떤 사람은 거기서 많은 것을 깨닫고 얻어내지만, 어떤 사람은 한두 가지밖에 얻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를 능력 차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우리는 어떤 대상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는 게 아니라 그것에 의해 촉발된 자기 안의 무엇인가를 뽑아내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풍요롭게 해 줄 대상을 찾지 말고, 나 스스로가 풍요로운 사람이 되려고 항상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의 능력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자 풍요로운 인생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_by 니체 <즐거운 학문> 中
‘찾아다녔다’라는 말이 힌트를 주는 게, 미술관 데이트를 하고 난 뒤에는 뭔가 그럴듯한 해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는 힌트, 느낌, 아이디어를 얻고 작가와의 동일시되는 경험을 통해 감정의 해소, 정화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
혼자여서 즐거웠고, 혼자여서 충만했고, 혼자여서 고독했다.
거저 받고 나 스스로 됐다고 여겨왔지만, 실상은 많은 이들의 도움과 헌신, 배려와 사랑으로 내가 존재하리라.
나 또한, 마음속으로 예술가를 꿈꾸며 뭔가 한 건이라도 해보려고 안달 난 ‘자극 추구자’, ‘도전 중독자’ 일지도 모른다. 나의 뮤즈는 ‘새로운 경험’, ‘아이템’등.
“인간은 어느 날 갑자기 살아있는 게임을 이유 없이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욕망이 너의 눈을 가려 삶을 이끌었다면, 인생은 생각보다 허망하고 덧없는 '꿈'이었음을 탄식하리라,”
_by 자코메티
나는 매우 소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다르게 살고 싶다’는 무의식적 욕망이 있었다. 나만의 세계관과 소신으로, 휩쓸리지 않고 내 ‘기준’으로 살고 싶다는 처절한 몸부림. 너무나 평범해 잘 드러나지 않는 존재감으로도, 내 내면에는 그러한 울림이 가득했다.
"나는 날마다 진화하고, 밤이면 내가 아침보다 더 나아졌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매일 다르게 보게 되고, 또한 더없이 풍요롭게 보게 되죠.
내 눈엔 세상이 날마다 더 특별하고 더 흥미로워요"
_by 알베르토 자코메티 '죽음에 관한 성찰'인터뷰 중/ 1962년 안토니오 델 구에르지소
"나는 내가 매일매일 진전을 이룬다고 믿습니다."
_by 자코메티
어떤 존재나 형태를 그대로 표현하기보단 떠오르는 이미지, 단어, 추상적인 모호함이 더 끌린다. 나는 어떤 ‘분위기’, ‘기운’을 사람들에게 보일 것인가, 나는 타인의 어떤 분위기와 기운을 느낄 것인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의 공간, 인격, 성품’을 갖춘 사람들을 마주하자면 압도당하는 건 사실이다. 가벼운 내면을 가리기 위해 외면에 많은 투자를 하는 사람들 속 반짝반짝 빛이 나는 그들, 참으로 탐나고 닮고 싶기 때문이다.
동시대를 살면서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묘한 연대감. 누구에게나 삶은 살아갈수록 벅차고 견뎌야 할 그런 것임을 서른여섯이 되어서야 실감한다. 이상적으로 추구하던 ‘행복’과 ‘즐거움’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것이 바로 삶이라는 것. 그리고 어깨에 많은 짐들을 지고 꾸준히,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 것임을.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꿈 많던 싱그러운 소녀는 이제 약간 억척스러움이 절로 생긴 5세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내 맘속 ‘소녀’는 그대로인데 말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이런 시간들은 정반합을 유지하며 점점 성장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힘이 있기에 그저 묵묵히 이 시간을 견디면 된다. 언젠간, 예술 따윈 개나 주라지 하며 룰루랄라 신나게 취해 살 날도 멀지 않았음을. 이런 고요한 내적 시간을 충분히 즐기자.
허나, 나는 오늘 일일 한남동 사모님이 아니겠는가. 사실 진짜 한남동 사모님들은 운동복에 개를 데리고 돌아다니겠지. 알게 뭐람. 내가 사는 동네도 아니고 현실 속 나는 2시 50분 신데렐라 인걸.
출근하지 않는 이상 망가져도 욕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옷과 모습으로 있기에 이런 기분은 거의 두 달 만이다. 아직 내가 ‘여성’으로서 존재한다는 안도감과, 꾸밀수록 예뻐진다는 사실,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 나를 바라볼 때의 뿌듯한 기분이 드는 걸 보니 ‘책 속’ 이야기가 맞다.
‘단절’이라 하면 뭔가 수동적 느낌을 주는데 ‘갭이어’는 능동적이다. 스스로 선택해서 ‘주어진 시간’인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처럼, 현실을 부정하거나 비관하기보단, 주어진 현실 속 가장 좋은 모습으로 마중하면 좋겠다.
갭이어 프로젝트를 한답시고 뭔가 쓰는 나를 보고 남편은 뭐하나 싶었을 거다.
사실, ‘육아’라는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 ‘엄마’라는 보편적 이름에 숟가락이라도 얹기 위해
‘약간의 도리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집으로 기어들어 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이 ‘지금의 나’다. 그것이 잘 드러날 때 나는 가장 빛난다. 되고자 하는 롤모델의 모습을 연습하고 따라 하며 만들어진 그 어떤 모습보다도.
나는 때론 엉뚱한 답변으로 ‘오답’ 아닌 ‘오답’을 써 내 혼이 났지만,
내 머릿속에는 암기로 달달 외운 틀에 박힌 뻔한 답은 없다.
비록 그 모습이 조직 속 그 누군가 에겐 빨간펜으로 엑스를 그을 모습으로 비치겠지만.
나를 찾겠다고 나왔는데, ‘나’는 없어지고 ‘우리’로 채워진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여러 곳에서. 내가 ‘나’로 의미가 있기 위해선 ‘타자’가 필요하다.
‘함께’함의 가치는 군중 속에서 보다 ‘혼자’ 있어봐야 그 귀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다.
뭐든 ‘때’가 있구나. ‘찰나’, 지나가는 것, ‘시간’, 돌아오지 않는 것, 지금 이 시간도 얼마나 소중하고 귀할까. 5년, 10년 뒤 지금 이 사진을 보며 나는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때 참 싱그럽고 젊었구나.”
[전시 메모]
ㅡ세상의 나쁜 날씨는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날씨만 있을 뿐. 인생도, 감정도 그러하겠지.
ㅡ오늘 날씨는 어떠한가, 오늘 감정은 어떠한가. 날씨에 맞게 옷을 입고 목적지를 정하는 것처럼 우리네 감정 날씨에 따라 계획을 달리 해야겠다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좌우 앞뒤를 돌아보고 다름을 받아들일 것 ‘한계’를 뛰어넘고 ‘편견’을 극복할 것
한국의 수필가 겸 미술평론가. 1930년대부터 문학활동을 하였고 1936년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과 결혼하였다. 이상이 폐결핵으로 사망한 이후 서양화가 김환기와 재혼하였으며 김환기 사후 남편의 유작을 돌보며 환기미술관을 설립하였다. 수필집 《파리》, 《우리끼리의 얘기》등을 남겼다.
-by [네이버 지식백과] 김향안 [金鄕岸] (두산백과)
"사람은 꿈을 가진 채 무덤에 들어간다."
_by 1970 김환기
"작가가 늘 조심할 것은 상식적인 안목에 붙잡히는 것이다.
늘 새로운 눈으로, 처음 뜨는 눈으로 작품을 대할 것이다."
_by 김환기
"일이 잘 가는 셈. 자신을 가질 수 있는 공부를 하라. 그리고 자신을 가져라. 용감하라.
_by 김환기, 1968년 1월 25일
지금까지, 아니 35년을 <나만의 반점>이라 울부짖고 산 세월이 많은데, 이제야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반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모두에게 ‘저마다의 반점’이 있다는 사실을 지각한 순간 나는 ‘해방’되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삶이 무한하다 여긴다
모든건 정해진 수만큼 일어난다
극히 소수에 불과하지만
어린 시절의 오후를
얼마나 더 기억하게 될까?
어떤 오후는 당신의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날일 것이다
네다섯 번은 더 될지도 모른다
그보다 적을 수도 있겠지
꽉 찬 보름달을
얼마나 더 보게 될까?
어쩌면 스무 번,
모든 게 무한한 듯 보일지라도
ㅡ폴 보울스 (1910~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