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된 뒤, 엄마와 함께하는 ‘호캉스’

'엄마'라는 이름 그 자체에는 '힘'이 있다.

by 제니
“기다린다는 것은 견딘다는 뜻이고 견딘다는 것은 '혼자' 견딘다는 뜻임을 그때 또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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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견디며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그런 나를 '혼자' 바라보며 견디고 기다렸던 것이다."

_by 김탁환 ‘엄마의´골목’ 中


20180721_135059.jpg ▷사진설명: 가끔은 일상에서의 탈출이 필요하다.



겹치는 캐릭터를 가진 모녀


마지막 버킷리스트는 바로 <엄마와 함께하는 호캉스>다.
57년 닭띠인 엄마와 나는, 어찌 보면 비슷해서 싸우고, 비슷해서 캐릭터가 겹친다. 아빠는 받아주는 스타일이고 엄마와 나는 자기주장이 있고, 요구하고 제시하는 스타일이라 서로의 요구가 충돌될 때는 쉽게 양보되지 않는다.


예전부터 엄마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었다.
“진짜 엄마 딸 관계 아니고 우리가 회사에서 만났으면 나는 벌써 사표 냈을 거야.”라고.
그럼 엄마도 똑같이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런 사이다 나와 엄마의 관계는.



그런데 또 웃긴 게 서로 책임감이 강하고 상대를 생각하긴 엄청 생각하며, 많은 것을 해준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이란, 엄마는 본인을 받아줄 ‘따뜻한 딸내미’를 원해왔고, 나 또한 혈기 많고 피곤한 나를 따뜻하게 받아줄 ‘따뜻하고 이상적인 엄마’를 원해왔다.



그런 이유들로 우리는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고받았다. 세 자매 중 둘째인 엄마와 다른 첫째 이모와, 막내 이모를 빗대며, 엄마는 정말 독특하다고 말해왔고, 엄마 또한 ‘엄마 친구 딸’들과 나를 비교하며 별종 취급하기도 했다.


내가 아들을 낳고, 지금까지 키우는 과정을 겪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집마다 각자의 스토리와 희로애락이 있다


우리 집 또한 그러한데, 청소년기 시절 아빠의 업종변경으로 인해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잦은 이사와 전학, 경제적 어려움이 그러한데 그 시절 엄마와의 추억은 좋은 기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이 더 많이 남아있다.


좋지 않은 표정, 비교적 말 잘 듣고 알아서 척척척 착한 딸이었던 나는 엄마의 감정의 쓰레받기가 되는 일도 많았다. 어떤 날은 이유를 알 듯도, 어떤 날은 엄마가 화가 나서, 어떤 날은 그냥 얻어걸려서 그랬다고 나름 추측했다. 그런 저런 이유로 마음속으로 엄마를 미워했는지도 모르겠다. 큰 걸 바라지 않고, 그저 진취적으로 일 하는 나에게 ‘따뜻한 지지와 응원’을 바랐던 게 다인데 그 당시엔 그러지 못했다.


사춘기부터 대학 입학 전까지는 엄마와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엄마는 “네가, 대학 가더니 완전히 변했다.” 는 말을 자주 했다.


사실, 내가 변했다기보다는 집안 분위기상 할 말을 일기에 적고 하지 않았던 예전과 달리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뿐이다. 대학시절은, 엄마와 가장 사이가 안 좋은 시기였던 것 같다. 이 당시 아마 엄마가 가장 힘든 시기였을 거다. 집안의 대소사를 잘 공유해주지 않았기에 우리 집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냥 좀 어렵겠거니 생각만 하고 있었다. 엄마는 아마 내가 젤 필요한 시기였을텐데, 나는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느라 너무 바쁘고 즐겁게 보낸 시기다.


엄마가 조금 더 표현을 잘했다면 내가 약간이라도 눈치챌 수 있었을 텐데, 나 또한 그런 감이 없어 그저 엄마가 툭하면 나에게 짜증을 내고 비난하고, 부딪힌다고만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원망하고. 분해하며, 짜증 내며, 빨리 독립을 하겠다 굳은 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와 인사조차 나눌 시간이 없이 바쁘게 지내며 엄마 도움은 전혀 필요 없다고 말해온 나는, 취업 이후 전세가 역전됐다.




짧은 어학연수 뒤 긴 부적응의 시간


뉴질랜드 어학연수 6개월 다녀온 뒤, 마지막 4학년을 부적응의 시기로 보내 나는 길게 방황했다. 남들처럼 엄청난 반항은 아니지만, 마음을 잡지 못했다.


높은 이상과 불만족스러운 현실의 갭 속에서 나는 더 방황했다. 그러다 취업한 첫 회사를 다니면서부터 나는 엄마와 서서히 절친이 되어갔다. 당시 내 기대치보다는 낮은 회사에 일단 취업했기에 나는 그 회사를 2년 여간 다닐 동안 마음을 주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결혼 시기가 닥쳐서 썩 마음에는 안 들지만, 더 나쁜 사람들도 있으니 적당한 사람이니 일단 결혼하고(안정을 위해) 살면서 더 좋은 사람이 있으면 이혼 후 재혼하겠다는 마음이었다. 물론, 내 일에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나는 처음 맞는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열정만으로도 충분했던 대학 시절과는 달리 회사에서는 열정을 낼수록 지적을 받고 상의 부족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처음에는 친한 친구들에게 회사생활의 고충과 상사의 뒷담화를 했다.


그 또한 한계가 있기에 어느 시점 이후 이러한 힘겨움을 말할 사람이 ‘엄마’밖에 없었다.


엄마가 표현하진 않았지만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나는 엄마에게 전혀 나를(관심과 시간)을 내어주지 않았지만, 엄마는 내가 SOS를 칠 때마다 열 일을 마다하고 달려와줬다. 그렇게 수원역에서 영화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대화하다 또 싸우기도 했지만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앞에서 밝혔듯이, 캐릭터가 겹치다 보니 가끔씩 갈등의 상황들도 있었지만 그 전과 비교해서는 모녀관계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 첫 사회생활로 정말 내면이 힘들었던 그 2년여 시간 동안 애인도 없고, 일터에도 부적응하고(남들 보기에는 무척이나 과장급 주임으로 열심히 일을 했지만) 나는 건어물녀처럼 집에만 있고, 엄마랑 많은 대화를 했다.

그렇게 이직을 하고, 연애와 결혼을 하고 잠시 독립했었다. 애 낳기 전까지 말이다.




아이 낳고 가장 큰 도움이 돼준 '엄마'


처음 길음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으나 임신 후 친정(수원)에서 가까운 사당으로 이사를 갔다. 출산 후 1년 정도는 주 1회 엄마가 집으로 와서 애기를 봐주고 도와줬다. 그때 나는 육아휴직 중이었고 집에 갇혀 있느라 정말 극심한 산후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때마다 왕복 3시간 이상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항상 양손 무겁게 음식을 싸오고, 집에 오면 청소와 설거지, 요리를 해주고, 애기까지 봐준 게 바로 엄마다.



엄마가 오면 나는 다시 초등학생처럼 신문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 돌 이후 도저히 안 되겠어서 친정 근처(걸어서 10분 거리)로 이사 간 뒤 재취업 후 2년여 동안 아들 등 하원을 담당하며 나를 도와줬다.


그런데, 놀라운 건 엄마는 일이 있다. 본인의 일도 무척이나 많은데 강인한 책임감으로, 나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나를 사랑하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손주까지 봐주신 거다.



근처에 산 그 시절 큰 도움을 받았으나, 겹치는 캐릭터와 강한 말투, 다른 육아방식 등으로 인해 서로 상처를 주기도 했다. 매우 고마웠지만, 그만큼 힘들기도 한 그 시절.


사실, 엄마에게는 고마운 게 참 많지만 예전을 생각하면 서운한 것도 많다. 그래서 대화를 하다가 ‘과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역시나 늘 한결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아직도 완벽히 서로를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취업 이후 10년,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대화를 나눴다.


갭이어 프로젝트를 하려고 했을 때 생각났던 버킷리스트 중 <엄마와 호캉스>는 그런 이유들로 생각이 났다. 많은 도움을 주고받고 했지만, 모녀끼리 다정히 여행을 간 경험도 전무하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 오붓하게 호캉스를 가서 스파 및 마사지도 하며 알콩달콩 모녀 데이트를 기대하며…



*호캉스

휴가를 국내 호텔에서 즐기는 것을 말한다. 호텔(hotel)과 바캉스(vacance)의 합성어이다.
진정한 휴가는 여행이 아니라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휴가를 호텔에서 보내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_by [네이버 지식백과] 호캉스 (한경 경제용어사전, 한국경제신문/한경닷컴 )



아들이 딸린, 모녀 호캉스


계획은 야심 차게 세웠으나 현실은 현실이었다.

일을 하고 있는 엄마와 휴일을 맞추고, 유치원을 다니는 아들 등 하원을 하고 있기에 날짜 잡기가 쉽지 않았다. 개천절을 낀 11/2~3 (화, 수)로 조선호텔로 숙박을 정하고 화요일 3시 체크인 때는 아들 하원 후 같이 데리고 가고, 퇴근하는 아빠가 집으로 데려가 개천절 휴일에는 돌보기로 했다. 계획했던 단독 모녀 1박 2일 호캉스는 아니었지만, 변경된 일정으로 버킷리스트를 진행했다.


가끔은 우리 아들이 부럽기도 하다. 아직 5세밖에 안 된 녀석이 호텔도 몇 번 가보고 뷔페나 호텔 수영장도 이용해보니 말이다. 내가 호텔을 처음 간 건 신혼여행 때인데 말이다. 카카오 택시를 불러서 조선호텔 앞에서 내리는데 가장 신난 건 ‘아들’이었다. 엄마랑은 약속시간에 조선호텔에서 만나기로 했고 딸, 손자, 엄마 삼대가 함께 체크인을 하러 갔다.


체크인을 하고 저녁식사 전까지 수영을 하기 위해 준비 후 수영장으로 갔다. 역시나 제일 신난 아들은 소리소리 지르며 '어푸어푸, 엄마엄마, 나랑 놀자' 말하며 한껏 흥분했다. 엄마도 좋아하는 눈치라 안심이 됐다. 수영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5시가 좀 넘어 숙소로 돌아온 뒤 샤워를 하고 아들도 씻기고 남편에게 바통터치할 준비를 했다.


아들에게는, 이번 여행은 같은 성별끼리 노는 거라 엄마는 할머니랑 자고, 아들은 집에서 아빠랑 자고 다음날 놀 거라고 이야기를 하니 아들은 울음을 터트리며 말한다.


“싫어, 싫어. 나도 여기서 저녁 먹고 호텔에서 잘 거야, 나도 여기서 잘 거야….. 가기 싫어…”


아뿔싸, 몇 번 와본 경험이 있는 아들은 당연히 자기도 저녁 먹고 잘 걸로 예상했나 보다.
6시 30분경 호텔 로비에서 남편에게 아들을 인계한 후 대성통곡하는 아들을 뒤로한 채 엄마와 저녁을 먹으러 뷔페로 갔다. 엄마랑 단 둘이 뷔페를 온 건 처음이라 신기했다. 엄마는 분위기와 음식 모두 마음에 들어 한 눈치다. 배불리 먹으며 울면서 간 아들이 내심 걸려 영상통화를 하고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배가 너무 불러 산책을 나왔다. 원래 계획은 사우나 및 피트니스였으나 7시 30분경에 나온 우리는 명동을 배회하며 아이쇼핑만 하다가 10시가 넘어서 다시 숙소로 갔다. 엄마랑 나랑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은근히 물건 사는데 우유부단하다는 거다. 사고 바꾸기도 잘하고, 누군가에게 물어야 안심하고 사는 것도 똑같다.


호텔로 돌아오기 전 편의점에서 음료수와 과자를 산 뒤 숙소로 올라갔다. 그리고 집에서 준비해 간 화투를 꺼냈다. 엄마와 둘이서 화투를 친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민화투를 쳤는데 경쟁이 붙어 새벽 4시까지 잠 안 자고 게임을 했다. 옛날이야기서부터, 아빠와 연애하고 결혼한 이야기, 그간 몰랐던 집안의 히스토리 등…. 수다 떨고, 화투 치고, 먹고 그렇게 놀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조식을 먹기 위해 피곤한 몸으로 기상 후 전날 저녁에 갔던 그 뷔페를 다시 갔다. 이미 전날 저녁에 먹은 것과 야식이 소화가 안 돼 배가 부른 상태였으나, 아침이기에 또 먹었다.


배가 너무 불러 엄마와 피트니스에서 1시간 정도 운동을 했다. 엄마랑 둘이 헬스장에서 운동한 건 또 처음이었다. 우린 가까이 살았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조차 그간 함께하지 못했던 게 아이러니다.


그렇게 운동하고 짐을 싸 체크아웃을 했다. 그리고 패키지에 들어있는 점심을 먹기 위해 또 갔다. 사실, 패키지만 아니었으면 점심은 패스하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스파게티 코스로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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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들과 로비에서 대기중인 할무니(왼쪽)/ 맛있는 음식들(가운데)/ 운동중인 엄마(오른쪽)


사실, 중식 먹은 곳 음식이 정말 맛있는 곳인데 이미 포화상태였기에 먹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를 느끼며 먹었다. 그리고 많이 남겼다. 평소 같으면 아까워서 다 먹었을 텐데 배는 더 이상 음식을 넣을 수가 없었다.

ㅎㅎ 이런 웃픈 상황을 엄마와 이야기하며 화투 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 호캉스를 서서히 마무리했다.


나의 버킷리스트를 위해 엄마 또한 일하다 시간을 낸 거라 마음이 분주했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행복해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시간들을 함께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방식의 차이로 부딪히는, 친밀하면서도 투탁 거리는 이런 게 모녀관계겠지.



'엄마'라는 이름은 참으로 위대하다.

‘엄마’가 된 뒤 예전의 엄마 모습을 그려본다.

그 당시 ‘불만과 섭섭함’이었던 어떤 사건을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다르게 다가온다.

가끔 엄마가 소리 지르거나 혼낼 때 일기장에 적으며 곱씹었는데, 아들을 키워보니 버리지 않은 것에도 감사해야 함을 느낀다.

화내고 난 뒤 더 늦게까지 자책하며 후회할 사람은 ‘엄마’라는 사실도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됐다.

수 만 번 화내고, 수만 번 미안해하는 게 바로 ‘엄마’들 아니겠는가.


엄마는, 나와의 호캉스가 어땠는지 궁금하다.
나의 진심이 잘 전달됐기를 바라며, 나의 마지막 버킷리스트틑 마무리한다.
(휴일에도 아들 보느라 고생한 남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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