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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 Oct 01. 2019

우리는 모두 '충분한 사랑'을 받은 존재다.

비록 내 기준에 못 미칠지라도 의심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요즘 나의 사랑의 대상은 <아들>이다.

이제 제법 말도 통하고 컸기에, 올 겨울에는 11월 경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서 장식을 할 계획을 세웠다.

작년까지는 전구 등 간소하게만 했는데 아들이 벌써 여섯 살이 되었으니 다 같이 트리를 꾸미면 참 행복할 것 같은 느낌이다.


여전히 애용 중인 당근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계신 분이 올린 크리스마스 장식품 몇 개와 스티커를 직거래했다.

아들을 생각하며 고르고, 예약하고, 직거래하는 번거로움도 마다하며 소품을 집으로 가져왔다.

아직 가을도 잘 못 느끼는데 미리 크리스마스인 건가..ㅎㅎ 생각만 해도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온다.

이런 게 사랑인가?


그런데 아이러니가 또 있다.

나는 아들을 정말 사랑하는데 그럼에도 잘 안 되는 게 있다.

내 사랑의 방식은 얘기하고, 내 행동을 성숙해나가며, 공부하고, 편지 써주고, 아들의 생활에 관심 갖고 물어봐 주는 거다. 내 사랑 방식이 음식이었다면 아들은 좀 더 컸을까?


여전히 불규칙하게 식사를 준비한다. 시간이 되면 직접 하고, 안 되면 반찬가게에서 사기도 한다. 요즘에는 죄책감을 내려놓고 스스로 타협한 게 아침에 밥이 없으면 시리얼을 먹이거나 고구마를 먹인다. 그 전에는 엄마가 돼서 끼니 하나 못 챙긴다 스스로 자책했었다. 부족한 엄마라며@.@

그렇다고 내가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관계에서의 갈등은 대부분이 <사랑을 주고받는 방식>의 차이로 인해 발생한다.

아들이 나와 비슷한 성향이라면 '세세한 소통과 관심과 정성 어린 선물'이면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것이며, 기대하는 사랑 방식이 '밥'이라면 언제나 부족하다고 생각하겠다.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의 취향,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다 해도 절묘히 그것을 주는 것은 어렵다.


우리 모두는, 내가 좋아는 것을 잘하기도 하기에 주고 싶어 지는 거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고 잘했다면 시키지 않아도 줬겠지.

내 밥 차려 먹기도 여전히 힘든 나에겐, 밥을 주는 것에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


내가 돈이 만다면 돈으로 해결했겠지.

좋은 옷, 영어 유치원, 교구, 등... 가장 쉽고 잘할 수 있으니 그것을 했겠다.


내가 미술을 잘했더라며, 매일매일 피카소 주니어를 만들 부푼 꿈을 꿨겠다.


그러나 '내가' 잘하는 것은 '어제보다 나은 엄마'로 아이를 위해 '성장'하는 것이기에 시간, 비용, 노력을 들여 책을 읽고, 교육을 받고, 정리하고 쓰고 곱씹고 적용하는 거다.



이런 마음을 품고 있자니, 나 또한 우리 부모님에게 지금까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아왔는가 생각이 든다.

철부지 어린애 시절(여전히?)에는 내가 원한 방식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했던 날도 있겠다. 맞다. 맞고. 그런데, 그렇다고 우리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 부모님들 또한 온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을 내어주고 계신 거다. 그들이 잘하고 좋아하고 줄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고 가슴을 활짝 피고 '자신감'을 좀 가져도 된다. 부족하다고 징징거리는 것은 이제 그만 멈추고 하늘을 봐보자. 내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아온 존재인지 눈을 감고 느껴보자.


당신은 그런 존귀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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