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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 Sep 03. 2019

나는 독서실로 출근한다.

오늘은 2일째. 지정석인 내 자리가 있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프리랜서는 장소가 변변찮다.

집에서 하기에는 집중이 잘 안되고 그렇다고 공유오피스인 위워크라도 가려고 하면 월 3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아직은 수입이 없는 프리랜서이기에 고민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곳이 단지 내 독서실이다.


월 4만 원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일단 9월 한 달 정기권을 끊고 어제부터 출근 중이다. 아들 등원 후 집으로 돌아가서 집안일하는 게 아닌, 등원 후 나 또한 어딘가로 출근하는 발걸음이 어찌나 가볍던지.

인간은 참 이상하다. 회사 다닐 때는 가기 싫을 때가 많았는데 막상 갈 곳이 없어지니 지하에 있는 독서실 내 자리에도 한없이 기쁘다.


오늘은 슬리퍼, 무릎담요 등을 챙겨서 왔다. 자리에 앉아서 마음에 드는 문구를 포스트잇에 써서 붙였다.

뭔가 훈훈하고 뿌듯하다. 그냥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에 안도감이 든다.

그동안 루틴 하게 무의미하게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집안일하다, 작업하다, 산만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고요한 집중의 공간에 들어서니 산 정상에 오른 느낌이다.


[사진설명] _독서실 내 자리에 붙인 문구. 말이 길어지지 않으려면 연습을 통해 실력을 쌓아야 한다.



어제저녁에 조국 기자간담회를 봤다. 한때 샤프한 여기자를 꿈꿨었기에 몇몇 여기자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다음 조국의 언변이 귀에 들어왔다. 말은 청산유수처럼 잘 하더라. 어떠한 공격에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줄줄줄....하긴, 그러니 지금 저 자리에 있는 거겠지?


나는 조국에 대한 호불호는 없다.

그렇게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름대로 실력을 쌓아왔을 것도 사실이겠고 정직하지 않다고 한다면 지금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은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올까? 모름지기 인간은 흠 보다는 장점을 봐줘야 하는 법. 20대에는 장관, 차관 이름까지 달달 외웠던 난데, 통일부 장관의 이름을 모른다고 하는 구 남친을 벌레 보듯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경악했던 난데, 지금은 정치에 별 관심이 없어졌다. 내 코가 석자라서 그런가?


그냥 쭉 보면서 느낀 것은 "그래서 어쩌라고?"였다. 요즘 굉장히 시니컬해져서 그런 건지, 솔직해지고자 해서 그런 건지 표현이 날 것 같다. 예전에는 조금 더 세련되고 있어 보이게 쓰고 싶었는데 그냥 느낌적인 느낌으로 쓰고 싶다 요즘. [솔직해진다]는 단어의 내 정의는 뭐냐면 [곱씹어 보지 않고 내 느낌을 적절하게 표현하기]다. 


조국 후보자의 발언을 각 뉴스에서 찬, 반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해석하며 토론하는 프로그램도 봤다. 거기서 인상적이 었던 것은, 반대의견을 내는 전문가라고 하는 양반이 말끝마다 "흙수저 들을 좌절시키는 것 아니냐"는 식의 발언을 했다. 굳이 '흙수저'라는 단어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꼬리표를 붙여서 표현해야 할까? 가뜩이나 이 사회에 많은 흙수저들이 알아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아픈데 한 대 더 맞으라는 식으로 박탈감을 심어줘야 했는지 의문이다.


지금의 대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반대하는 것은 정답이다.

조국 후보자가 강남좌파에 자격없는 아버지이지만 해야할 일이라며 검찰개혁을 부르짖는 것도 정답이다,

조국 후보자의 도덕성의 이유로 법무부 장관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정답이다.


모두 각자의 틀과 입장에서 해석하면 모든 게 정답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장시간 시청을 한 뒤 느껴지는 것은 <무기력>, <어이없음>, <박탈감>, <좌절감>의 감정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겠는가 나의 부모님이 의사가 아니고, 학원장이 아니고, 재단 이사장이 아닌 것을. 나의 조부모들도 그러한 위치가 아니었던 것을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원망하고 한탄해봤자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허본좌 허경영 님을 소환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를 믿을 수도 없는 게 현실 아니던가.

요즘, 좌절스러운 일들을 많이 겪으며 나는 '어른'이 되어 가는 중이다.


서른여섯까지만 해도 불공평한 세상을 탓하며, 공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분개했다. 뭐 큰 정치권 싸움이 아니라 가정 내, 조직 내, 관계 내에서 벌어지는 공평하지 않은 처사들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하고 있다. 그러한 것들에 일일이 반응하며, 왜 나와 쟤를 똑같이 대해주지 않느냐고 언성을 높여봤자 내 꼴만 우스워지는 법.

어쩌겠는가 그러고 싶다는데, 나는 내 살길 찾으면 그만인 거다.


이 나라가 잘 돌아가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막막한 현실 속에서 작은 나를 지키기 위해 불공평한 세상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되,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나에게 도움되는 방향으로 내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조국 사태에 대한 찬, 반 의견, 허탈함과 공허함은 오늘의 안주거리로 끝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내 환경, 부모, 나 자신을 원망하지 않기 위해서.


조국은 조국이고 나는 나란 말이지~~

나는, 독서실에서 나의 꿈의 도화지를 조금씩 그려나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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