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끈을 묶어주다.

내 운동화 끈은 스스로 묶자.

by 제니

오늘은 여름 날씨처럼 무더운 날이었다.


에너지 넘치는 아들과는 이럴 때 야외로 나가야 한다.

지난주 갔던 동일한 동선을 아들과 함께 갔다. 버스를 타고 내려서 수원화성을 지나 팔달산에 올랐다.


그러다 아들의 운동화 끈이 풀어졌다.

나는 허리를 굽혀 아들의 운동화 끈을 촘촘히 묶어줬다.


생각해보니 누군가가 내 운동화 끈을 늘 묶어줬었다.

어릴 때는 그 대상이 아빠였고, 커서는 남자 친구 및 남편으로 대상이 바뀌었다.


누군가 내 운동화 끈을 묶어주는 건 나에게는 당연한 행동으로 느껴졌다.

물론, 내가 할 수도 있는 행위이지만 익숙한 그 행위는 내게 사랑받고 보호받는 느낌을 줬다.


응석받이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애정결핍뿐만 아니라 애정 과잉(과보호)도 독립적인 삶에 지장을 준다.


더 이상 보호받기를 바라지 않는 마흔이 되자.

아들을 지키기 위해선 아줌마는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 은 차이가 크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다정히 내 풀린 운동화 끈을 자상하게 묶어주는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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