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임 에세이
책 서두에 - [[우리는 늘 삶의 정답이 무엇인지 묻고 찾으며 일상을 지내왔다. 정답이 있는 세계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늘 수많은 시험을 치며 ‘명확한 세상을 경험했다. 시인의 의도도, 정의도, 삶의 가치와 의미 모두 오지 선다 객관식 속에 있었다. 하나는 옳았고 나머지 넷은 틀렸다. 우리는 정답을 맞혀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고, 세상은 그렇게 늘 우리에게 정답을 선택하고 정답대로 살아가기를 종용한다.]]
대한민국 성인들 누구나가 4지선다, 혹은 5지선다 정답 고르기에 익숙하다, 어느 날 시험 문제가 답 없음으로 나오면 적지 않게 당황스럽고 주관적인 자기의 의견을 써내는 일에도 항상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된다.
그래서 군대에 입대하더라도 맨 앞과 끝에 서지 말고 중간에 서라고 하고, 조직 위계 질서에서도 너무 튀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톱니 바퀴처럼 돌아 가는 산업사회를 거쳐, 근대화가 되고, 현대가 되고, 인터넷 세상이 되어서도 사람들은 정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네이버에 물어본다 혹은 구글에 질문을 던져 보았거나이다.
하지만 사실 인생과 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씨줄과 날줄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누구 나의 정답이 나의 정답이 아닌 경우가 너무나도 많은 경우에 사회에 나가 첫 사회 생활인들은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마치 연애에 대한 스킬을 완벽히 익히는 책자를 한 10외 정독을 하고 나갔는데 해당하는 조크나, 질문지가 없어서 그럴 때 대처하는 방식을 모르듯이.
저자는 명랑 하기도 하고, 길이 없으면 돌아가거나 심지어 만들어서라도 생각 하는 창 발적 소유자 인듯하다. 워킹 맘의 바쁜 일정에서도 재판과 변론을 준비하는 변호사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하면 평범한 일상속에서
제대로 된 정답을 찾는 일이 이다지도 어려운지가 사실 질문의 출발 점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늘 상 어린 시절 위인전을 보며 읽으며 훌륭한 사람의 이미지에 선몽처럼 그러한 선구자가 나라를 이끈 다는 환상에 혹은 동화되어 살지 않았을까 싶다. 계몽기나 저멀리 봉건 군주제 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상은 늘상 영웅이 구한 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들이 그렇다. 슈퍼맨과 슈퍼우먼 , 그리고 아이언맨,
이야기 속에, 삼국지의 영웅들이 전쟁이 나서고 그렇게 많이 나오고 또한 그렇게 많이 죽는 다. 열국지 같은 경우는 왕의목숨은 거의 파리 목숨과 다를 것 없는 춘춘 전국 시대의 일을 논한다. 일반 사람은 고사하고, 왕들의 전쟁에서 보통 사람도 아닌 왕들이 그렇게 죽어 나가니,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너무 심각하게 정세를 논하고, 영웅 제일 주의를 외칠 일만도 아닌 듯
하대라는 말에 공감한다.
도심지를 가다 보면, " 도를 믿어 보라는 " 사람들의 권유를 받기도 하고, 때때로 너의 죄를 다짜고짜 회개하라는 신도? 님들을 만나서 설교를 듣게 되기도 한다. 일반 보통 평범한 사람들이 무슨 죄가 많길래 늘 상 나의 죄를 회개하고 광고하여야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몇 해전인가, 오바마 이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서 기자 회견을 한적이 있고, 특정 시간을 할애해서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 한 기회를 여러 번 주었지만, 제대로 된 질문을 할 기회였지만 역시 기회는 없었다. 어쩌면 학습된 카테고리 내에서만 가이드 질문을 던지는 혹은 예외적인 사항을 훈련받지 못한 우리들의 및 낯 일지도 모른다.
살아 가는 수많은 순간 순간 들에 우리는 자신만의 프레임을 씌우고 정답을 찾았던 적은 없었을까, 혹은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이러한 범주 내에 들어야 나의 정답 안이지 라고 특정함을 내세운 심리적 차별을 한적은 없었을까, 저자는 이러한 정답 찾기에서 탈피해서 오히려 거꾸로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 사회로 접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엉뚱 하게도 해본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은 알면서도 우리는 정답을 갈구하기도 한다. 때때로 어떤 질문지를 세상에 내가 혹은 다른 사람이 내놓았는지도 모른 체 헤 메이기도 한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때이지도 모른다, 내가 하려는 일 혹은 궁금한 것 그리고 진정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질문을 하는 것이지가 올바른 혹은 근접한 답신에 필요한 바탕이 아닐까?
아래, 저자의 책 쓰기 의도를 다시 한번 피력하며 오늘의 단상을 마치기로 한다. Written by E HAN
작가는 목소리를 높인다. “이제부터 내가 찾아야 할 것은 정확한 답이 아니라 정확한 질문 ”이었다고,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스스로 묻고 답해야 했다”라고 이야기하며 “질문하는 세계 ”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우리는 각각의 ‘보통 ’이며 ‘다양성 ’있는 이 세계에 질문하는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 가 그 안에 거주하는 나들에게 질문하는 ‘더 나은’ 풍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