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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den Dec 07. 2024

[ 삼재팔난 ː 통증의 차이_1장 ]

우린 그것을 삼재라 부르기로 했다.

 『 삼재 : 인간이 9년 주기로 맞이하는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를 일컫는 단어. 9년이 지나가는시점부터 3년간 별의별 재난을 겪게 된다고 하며 이를 삼재팔난이라고 별도로 부른다. 』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척도가 존재했던 것일까?

열손가락 모두 깨물어 아프지 않던 손가락은 없었다.

물론 가락지마다 제 각기 다른 강도의 통증을 나타내었다. 

부모의 열손가락중 나는 어떤 통증을 주던 손가락이었을까.




우리 집은 딸만 둘이다. 내 아래로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으니 이 집 안에서 난 맏이이자 언니라는 타이틀을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자란 셈이었다.

맏이 그리고 언니라는 그 타이틀이 너무나도 싫었다.


유난히도 다른 친구들의 아버지에 비해 나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신 분이셨다.

그랬기에 나의 타이틀은 오히려 작고 사소한 실수마저도 용납되지 못했고 어떻게 해서든 짚고 넘어가야만 했던 목에걸린 생선의 가시와 같이 여겨지게 되었다.


거인보다 더 큰 거인이 있다면 아마 내 인생에서는 아버지일 거라 단정 지으며 살았다.

당신의 곁에서 존경심도, 사랑도 아닌 공포심과 서글픔만이 내 마음을 칭칭 휘감은 채.


하지만 아버지의 그런 가부장적이고 억 센 성격도 나이가 드시면서 점차 이전과는 달리 한 풀 꺾이는 듯했고,

조금 더 달라진 것이 있자면 나도 아버지의 시간과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를 바라보며 함께 흘러온 시간 때문이었을까.

지금의 나에게서 간혹 아버지의 옛 모습이 비치어졌다.

그리고 그 해의 여름, 한 풀 꺾인 듯 여전히 과거의 시간에 살고 계신 나의 아버지와

자꾸만 아버지의 옛 모습을 닮아가던 나는 유난스럽게도 자주 다투고 부딪혔다.


어릴 적엔 아무 말도 못 하던 내가 이제는 그런 아버지와 다투기까지 한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했지만

모르고 매번 혼나던 어린 시절의 나도, 아버지를 닮아버린 지금의 모습도 어느 것 하나 달갑지 않았다.


-

마음이 무너지고, 생각처럼 모든 게 풀리지 않는 매 순간과 사랑하던 이가 나의 곁을 떠나던 날까지도.

삶을 살아가는 법에 대해 여즉 요령이 없던 나에게 있어서

불편하고 불안한 기억들로부터 도망치는 법은 무작정 육체를 못살게 구는 것뿐이었다.


알면서도 행했다.

그리고 무자비한 행동에는 늘 대가를 치르게 되는 법이었다.

엉망이 되어버린 육체, 그 육체를 감당하고 서있기엔 한 없이 흔들리는 정신. 아득히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

정확하고 또렷이 기억하지 못하는 언어들이지만 단 하나 확실했던 것은 그 순간마저도 아버지의 나를 향한 구구절절했던 충고와 조언들이었다는 것. 어쩌면 당연히도 틀린 말들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옳은 말씀들이었다는것을 알기에 그 사실이 되려 나를 더욱 아프게 했다.


반복되어 가던 아버지와의 다툼과 무너져버린 육체와 정신에 결국 벼랑 끝으로 몰린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제야 아버지와 나의 시작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를 진심으로 미워하는 마음부터 시작했어야 했다고 말이다.


30년 가까이를 아버지를 이해해 보려 아무리 노력해도 전혀 되지 않았다.

혹여 처음부터 나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던 마음이었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에게 아버지란 한없이 미웁고 - 서러운 영역의 사람이었지 않았을까?


아주 잠시오랫동안은 아버지를 미워하고 싶었다. 미워해야만 했다.

지금 보이는 이 벼랑의 끝이 두렵게만 느껴지는 까닭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진심을 다해 당신을 미워하는 순간이 오게 될까 두렵다.

그러니 지금은 최선을 다해 당신을 미워하고 싶다.


그리하여 언젠가 온 마음 다해 나 아버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 삼재팔난 ː 통증의 차이 _1장 ]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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