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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재팔난 ː 번아웃_1장 ]

우린 그것을 삼재라 부르기로 했다

by Soden Jan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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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재 : 인간이 9년 주기로 맞이하는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를 일컫는 단어. 9년이 지나가는 시점부터 3년간 별의별 재난을 겪게 된다고 하며 이를 삼재팔난이라고 별도로 부른다. 』



단순히 태어났기 때문에 살았다.

그것조차 내가 원하고 의도한 삶이 아니라 여겼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살아지게 된 이 삶에 최선을 다했다.






번아웃(burn out)

burn과 out 이 결합한 단어로, 용어 그대로  '완전히 타버리다' 로써 해석된다.

업무로 인한 과부하, 목표에 대한 불만족스러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갈등 및 개인적 문제 등 다양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신체적 / 정신적으로 스스로가 지친 상태를 의미한다.


3년 전 처음 번아웃이 나를 찾아왔었다.

모두에게 늘 그렇듯 처음이란 항상 낯설고, 어렵고, 모르는 것들 투성이이기에 난 스스로에게 번아웃이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단순 스트레스과중일뿐이라고 여겼었다.


앞선 내 이야기를 모두 읽었던 독자들은 알 테지만 평생을 바라보았던 사람과의 갑작스러운 이별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정한 내 울타리인지를 알 수 없는 가족의 품을 경험하는 순간도,

잦은 커리어적 변화에 이 따라오는 거주지이동, 정을 온전히 줄 수 없던 인간관계까지.


지금을 살아가는 내 삶은 사고와 같았다.

그러니 이러한 감정과 제한되어 가는 체력의 한계가 수반되어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여겼다.


그럼에도 나 스스로가 이번만큼은 단순 스트레스 과중이 아니라 판단하게 된 건 사소한 일상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일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정확히 짚자면 일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억지적 미소를 자꾸만 지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얼굴에서는 경련이 일기시작했다.

죽을 것만 같았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만 달려왔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면 무엇인가 결과물이 보여야 한다 생각하던 나는 뻔한 결과론자였기에 극도로 낙담하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빨리 시작한 사회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여지껏 텅텅 비어 있는 통장잔고와 불분명한 거주지, 함께 미래를 그릴이 가 없다는 결과는 나를 벼랑으로 몰고 갔다.


난 그 길로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약 두어 달가량을 집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깨어있는 매일 매 순간이 현실인지 지옥인지 알 길이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비추는 햇살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늘은 도대체 무엇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지,

그렇다고 누군갈 만나고 연락하고 싶은 마음은 더욱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반나절 넘게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


일도 하지 않고 그 누구도 만나지 않는 소위 히키코모리의 시간을 살다 보니 과거를 곱씹게만 되었다.

예전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난 스스로가 참 열정 넘치고 오뚝이 같다고 생각했다. 주변인 모두들 커리어를 여러 번 바꾸었던 나를 향해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도 그렇게 도전하는 것도 참 대단하다고 해주었는데.


과거를 끄집어내어 되새김질 할 때면 늘 현재의 나와 비교하게 되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한 나로 살고 있잖아.

그 사실을 인지할 때마다 수백수천 번이고 나는 나를 벼랑으로 밀었다.


벼랑에서 자꾸만 떨어지는 것도 반복되면 그 고통에서 나름 무뎌지기도 하나보다.

기억은 잊히지 않아도 고통은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잠시 고통이 줄어든 틈을타 스스로에게 의문을 제기했다.

' 넌 네가 왜 이러는 건지 궁금하지 않아? 이게 정말 단순 스트레스 과중이라고 생각해? '


알고 싶었다. 내가 정말 왜 이러는 건지.

그리고 참 오랜만에 생긴 의문점이 내심 반갑기도 했다.

문제점을 찾는다는 것이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닐지어도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이건 변화의 시작이라고.


노트북을 켜고 내 증상을 하나하나 다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 매사에 의욕이 없다.

- 한번 우울한 감정에 빠지기 시작하면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

- 잠을 잘 타이밍을 놓치거나 간혹 잠에 들기 어려운 밤이 잦다.

-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지나간 일들을 자꾸만 후회한다.


각종 사이트의 글들과 답변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 번아웃 / 우울증 / 만성피로증후군

+ 가까운 정신과전문의와 상담할 것을 권해드립니다.


단정 짓기도 어려운 내 정신건강을 검색 몇 번에 날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확정 지어주었다.

그리고 난 잠깐사이에 정신이 전혀 건강하지 않은 20대가 되었다.


아닐 거야라는 생각을 했어야 하는 것이 맞았을까?

저 답변들을 보며,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라는 글을 보며 나는 반박을 하는 것이 건강한 것이었을까.

이 모든 문장들에 수렴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은 옳지 못했던 것일까.


난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이렇게 된 것이라면,

살아가고 있는 내 삶에 다른 이들보다 더욱이 진심이었기 때문에 탈이 크게 난 것뿐이라고.


적어도 넘어지기 전에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오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 그럴수밖에 없었다면서, 긴 긴밤 나는 나를 그렇게 다독여야만 했다.




[ 삼재팔난 ː 번아웃_1장 ]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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