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것을 삼재라 부르기로 했다
『 삼재 : 인간이 9년 주기로 맞이하는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를 일컫는 단어. 9년이 지나가는 시점부터 3년간 별의별 재난을 겪게 된다고 하며 이를 삼재팔난이라고 별도로 부른다. 』
어쩌면 나의 삼재속 사랑은 확신이 없었기에, 그 만큼 나를 아프게 했는지도 모른다.
사랑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자신의 모든 걸 내어 줄 수 있는 감정, 또는 그런 관계나 사람을 뜻하는 단어.
내뱉기만 해도 설레고, 여전히도 가슴이 벅찬 단어.
그 사랑에 부정을 더해야 했던 모든 순간에 나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갔을까.
사랑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을 다시금 내어줄 수 있다는 것.
사랑에 여러 차례 무너지고 상처받는 시간이 흘러가기를 반복하며 어쩌면 나의 남은 생에 진심으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올 수는 있을런지.
내가 사랑을 속삭이던 수많은 시간속에서 과연 나 자신은 누군가로부터 온마음 다했던 사랑을 받은 적이 있었을까.
괜시리 차오르는 외로움에 비관적 의문문을 던진다.
찾았는가. 온마음을 다해 사랑받았다 여겨지던 순간을,
삼재가 시작되고 두 번째 해의 칠석날.
견우와 직녀는 1년에 단 한 번 만나 기쁨에 겨워 사랑을 나눈다는 그날 오후.
그들은 서로의 만남이 여전히도 기쁘고 슬펐을까.
하늘에는 구멍이 뚫린 듯이 장대 같은 비가 쏟아졌다.
그리고 나의 할머니는 그 거센 비속을 홀로 걸어가셨다.
엄마에게서 걸려온 할머니의 부고전화는 마음의준비를 했었음에도 어째서 늘 슬픔은 나의 예감보다 빨리 다가오는지. 마음의 준비란 언제되는 것인지.
부랴부랴 하던 일을 직장동료에게 넘기고 아빠와 함께 할머니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차 안은 장대 같은 비가 우리의 차 지붕을 거세게 내리치는 소리와,
그 오디오를 배게 삼아 숨죽여 울음을 삼키는 아빠의 눈물이 심장깊이 넘어가는 얕은 정적뿐이었다.
아빠의 심장깊이 삼켜내고 있는 저 눈물의 소리는
미처 인사하지 못했던 죄송스러움의 소리인가, 엄마를 잃었다는 아들의 소리 없는 대성통곡의 삼킴이었을까.
도착한 장례식장엔 친척들 모두가 와계셨고,
우린 통곡의 소리와 슬픔이 나뒹구는 공기 속 알 수 없는 표정을 각각이 지닌 이들과 함께 3일을 보냈다.
3일을 내리 장대 같은 비가 내리더이,
할머니의 유골함을 안식하고 나오는 길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 일곱 빛깔의 아름다운 빛이 하늘에 짙게 깔리는 것을 보고 참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당신의 빈자리가 더욱이 느껴지는 그날의 정오였다.
어릴 적 부모님의 맞벌이로 나의 모든 유년기는 할머니와 함께했다.
그녀는 매 순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봐주었고, 그렇게 받은 사랑들은 매번 차고 넘칠 만큼 컸기에 사랑에 목마르던 내가 마르지 않는 샘물로 무럭무럭 차오르게 된셈이었다.
고작 몇 해를 사랑에 치여놓고는,
나는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였으니, 이또한 못난건이 어디있을까. 나의 시간들에 반성해야만 하는 시간만이 길을이룰뿐이었다.
그 감정들에 너무도 젖어있어 버렸기에,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불운한 운을 갖고 태어난 아이라 생각하는 시간에도 여전히도 나를 사랑하고 있던 이가 있었음을 몰랐다.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에 보답하겠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왜들 그리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기다려주지 않는 것인가.
내 사랑은 매번 늦게 도착했고,
나의 마음을 깨달아 전하기엔 그녀는 너무도 멀리 떠나 있었다.
늘 후회 없는 인생을 살겠노라 다짐하며 살아감에도
사람인생이라는 것이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어서
그날 모든 순간마다 나는 후회를 삼키고 또 같은 다짐을 뱉어냈다.
유일무이하게 나의 부재를 걱정하던 이.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나를 조건 없이도 사랑해 주고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사랑으로 채워주던 나의 사랑아.
언젠간 보답하겠다는 말과 마음을 뒤로하고, 그 모든 다짐을 실현시키겠다는 핑계들로,
당신의 안부를 묻는 날보다 추측하는 날이 많아졌기에,
내가 나이를 먹어감에 당연 할머니도 연세가 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뻔하고 당연한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원망했다.
부디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억만 번의 고통도 감내할 수 있겠다는, 이젠 더 이상 부질없는 생각만이.
그녀가 나를 기다려주지 못한 것은 어쩌면 내가 삼재였기에
모든 재난 속에 당신도 포함이 된 것은 아닐까 하며 나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변명거리를 찾았다.
해주지 못한 것들과 보답하지 못한 사랑에 대한 너무도 무거운 죄책감에 도망가고 싶었다.
당신이 해주던 사랑가득했던 음식과,
주름이 만개했던 손등을 만지며 눈을 맞추고 웃음을 짓는, 밤새 당신이 나를 바라보며 내일아침 날 향해 주려했던 서랍 가득 모아둔 사랑까지.
난 이제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그리 닿지 못할 것들을 그리고 모으며,
깊이 사무쳤던 그리움과 슬픔들만이 아주 짙게 나의 새벽을 채워갔다.
할머니
그리고 사랑.
수많은 사랑들 중에서 내가 잃고 나서 진심으로 슬퍼해야 하는 사랑은 당신을 잃은 슬픔이었다는 것을.
아주 오랜 시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사랑해 주던 이었기에.당신이라는 자체가 나에게 있어서 사랑의 존재가 아니었을까?
잃고 나서야 알게 되는 부질없는 나의 사랑은,
효력 없는 특약사항과도 같았다.
그녀는 지금 어디쯤에 자리하여 나를 바라봐주곤 있을까.
전하지 못한 나의 사랑이, 결코 닿을 수 없는 너무도 먼 곳에 당신은 자리하고 있을까.
무척 이도 당신을 그리다 꿈속 가득 당신 웃음으로
채워지는 날엔 나는 또 행복하다며 못난이인형처럼 함박웃음 짓고 있을 뿐이다.
오늘밤 나 당신생각을 꽤나 많이했다.
잠든새벽 동트기전 잠시 들르시라 닫지못한 창문과함께 빛바랜 하늘까지 모두 내마음같다.
[ 삼재팔난 ː 칠석날 ] 완결